1인 미용실에 가 본 적 있어요?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나는 일 년에 두 번 정도 파마와 커트를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한 해 동안의 머리 스타일이 다음 해에도 비슷하게 유지된다. 파마해서 길렀다가, 다시 자르고 파마하고. 오후 세시 반이면 거리를 거닐었다는 칸트의 년간 미용실 버전 같기도 하다. 그 패턴이 벌써 3년째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여름에 짧은 머리에 파마, 겨울에 긴 머리에 파마를 한다. 인생이 무수한 인생의 반복이라지만 내 인생만 똑같지 남들은 그렇지 않기도 하다.


3년째 다니고 있는 이 미용실은 서울에 와서 귀하게 찾은 '그나마 머리를 괜찮게 하는 집' 이였다. 동네 아파트 상가에 있는 모든 미용실을 다니며 이것저것 시도해 봤지만 결국엔 마음에 안 들어 미용실 문을 나서자마자 고무줄로 질끈 묶어버리는 일이 잦았다. 그 와중에 남편이 찾은 이곳이 나의 단골가게가 된 지 3년째. 3인 가족이었을 때 첫 방문을 했고 임신하고도 출산하고도 둘째가 세 돌이 가까워지는 지금까지 나는 줄곧 이곳만 간다.


그렇다고 이곳의 실력이 그렇게 뛰어난가? 그건 또 아니다. 사실 말하자면 점점 더 형편없어지고 있기는 하다. 처음 나를 맡았던 디자이너가 승진을 하고, 코로나를 지나며 정직원이 줄고 인턴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십만 원이 넘는 파마머리를 예약하고 가면 정작 내 디자이너는 상담할 때만 얼굴을 마주하고 나머지 자르고 말고 말리고 하는 일들은 다른 사람 손에 맡겨졌었다. 처음에는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그 경험도 반복되다 보니 점점 익숙해서, 마음속으로는 왜 이러지 하면서도 미용실 갈 때가 되면 어김없이 그 디자이너를 찾아 예약을 하곤 했다.






지난 주말 차에서 '허니, 나 이번 주에는 진짜 머리 좀 해야 할 거 같아' 라며 운을 띈 대화에서 남편은 나와 똑같은 마음을 말했다. 결국 그 디자이너한테 예약해도 다른 사람들이 다 하잖아, 그래서 싫다나 뭐라나. 그래서인가 남편은 나와 단골가게가 같았다가 어느 순간 여기저기 유목민처럼 다른 샵을 찾아다녔다. 그것도 카카오헤어로.


세상에나, 나는 카카오톡 말고는 카카오와 거리가 멀다. 카카오뱅크도 안 하고 카카오 맵, 티, 카카오 헤어도 잘 모른다. 나처럼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저절로 생기지 않고 그저 익숙하고 편안함을 쫓는 변화회피형은 카카오헤어가 있어도 안 쓴다. 그런데 남편이 내 말을 듣더니 '그럼 1인샵에 가봐'라고 말한다. 가격대는 조금 더 비싸도 꼼꼼하고 다른 사람 손 많이 안 거치니 좋다고 말했다. 솔깃?



그렇지만 쉽지 않다. 남편의 설득으로 카카오헤어 어플을 깔고 1인 샵을 검색하면서도 내 마음은 이미 내 단골가게 디자이너 이름을 찾고 있었다. 다행히 카카오헤어에서 내 단골 디자이너 이름을 못 찾았고, 고민고민 하다가 결국 생애 처음으로 1인샵을 예약. 두둥. 어제 다녀왔다.








남편은 정말이지 내 인생의 지렁이 같은 존재다. 나와 정 반대되는 성향으로 내 인생을 이리저리 휘젓고 뒤집고 결국 숨 쉴 공간을 만드는 동반자다. 남편 덕분에 일인샵에 앉으니 감회가 새롭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한 디자이너가 내 머리를 봐준다. 사실 실력은 비슷비슷한데 그래도 정성이 조금 더 들어간 느낌이랄까. 그리고 마침 그 샵이 부부가 하는 공간이라 그런지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런데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다가, 옆에 있는 가격표를 보다가, 건강한 화분들을 보다가, 다시 한번 거울 속에 나를 마주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엄마랑 미용실에 간 적이 있던가? 있던가? 정말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리고 깨달았다. 엄마는 단 한 번도 나를 미용실에 데려가지 않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 아빠의 외도가 시작되었고 6학년 때쯤 엄마가 못 견디고 집을 나갔다. 너무 막장 드라마의 한 줄 같이 느껴지는데 나는 지난 일들을 이제는 담담하게 기록할 수 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까지 미용실 안 가고 그냥 시골에서 긴 머리로 크다가 처음 중학교에 가며 머리를 잘라야 했는데, 그때 엄마가 안 계셨다. 그래서 아빠랑 오빠랑 동생이랑 같이 갔었고, 그 이후로는 친구들과 같이 다녔다. 언젠가 친구와 함께 갔을 때 숱을 치는 칼이 너무 무뎌서 머리카락이 정말 아팠는데도 아무 말도 못 하고 꾹 참고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엄마와 같이 살게 되면서도 엄마는 일 하느라 낮엔 늘 없었고 그래서 혼자서 미용실에 다녔다. 잘 잘라도 못 잘라도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잘라주는 대로 다녔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서 파마를 하고 염색을 할 때도 대체로 그랬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미용실에 가면 마음이 저절로 무거워진다. 다른 따라와 엄마들은 어떤 경험을 하는지 몰라서일까? 아니면 그냥 혼자라서 그런가. 1인 미용실에 앉아 거울을 바라보는데 그 생각이 스친다.


그리고 솔이가 처음으로 긴 머리를 똑 단바로 자르던 날, 파마하다가 무섭다고 엉엉 운 날, 앞머리를 몽실이 언니처럼 싹둑 자른 날, 지난날들이 떠올라 웃음 짓는다. 그 일들도 나의 단골가게에서였었는데. 배신하고 1인 샵에 앉아있네?






그냥 문득 이 글을 적으며 이런 생각을 한다. 부모의 부재를 경험해 보았고, 가정의 불화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기도 해 봤다. 나는 부모와 가정, 그리고 남편 와 아내, 부모와 자식이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경험을 통해 배운 사람이 된 것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지난날 나의 경험이 없었다면, 과연 나는 솔이를 생각하며 웃음 지을 수 있었을까. : )



그리고 늘 새롭게 재미난 경험들을 내 삶에 가져다주는 남편에게 또 한 번 고마움을 느낀다. 참, 남편이 머리 잘랐다고 (이번에도 자르고 파마, 그리고 참 앞머리도 냈다) 머리띠 두 개랑 예쁜 곱창 두 개를 사주었다. 귀여운 지렁이. 시골에 내려가 있는 솔이가 오면 이 머리띠도 곱창도 다 뺏기겠지만 생각만 해도 너무 행복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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