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 사랑스럽다 ] : 생김새나 행동이 사랑을 느낄 만큼 귀여운 데가 있다.
이렇게 쌓아두기만 해서는 언젠가 다 잊고 말겠지 하는 생각으로, 두 아이를 재우고 다시 식탁에 앉았다. 오늘은 윤솔이의 사랑스러움을 기록하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사랑스럽다, 지난주 목요일 인근 아파트 단지에 요가원 전단지를 붙이고 올라오면서 며칠 전 찍은 윤솔이의 사진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사랑스럽기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앞니 두 개가 다 빠져서 잇몸이 저렇게나 튼튼했었나 싶게 늘 함박웃음을 짓는 솔이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딱 이 말이 떠오른다. [ 사랑스럽다 ]
사랑스러운 윤솔이는 지난주 유치원을 졸업했다. 들어갈 때는 한글도 못 읽었는데 졸업할 때는 나의 힐링 도서 ' 나무처럼 살아간다 '도 함께 읽는다. 뭐랄까 지난 3년 간의 윤솔이를 돌아보면, 그 자연스럽고 힘 있는 성장에 묵직한 감동이 밀려온다. 유치원 원장 선생님의 말씀처럼 매일 규칙적으로 등하원을 했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코로나 첫 해 입학생으로 3년 동안 하루도 예외 없이 답답한 마스크를 끼고 묵묵히 질서와 약속을 지키며 생활했고, 그럼에도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준 모든 것이 너무 고맙고 대견하다.
솔이가 유치원 졸업식 공연에서 ' 나의 처음 사랑'이라는 노래를 수화로 불러주는데 코끝이 얼마나 맵던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혹여나 나의 부족함이 솔이에게 닿지는 않을까, 나의 작은 실수가 솔이 마음에 상처를 내진 않을까, 내 욕심이 솔이를 힘들게 하진 않을까 지난 3년은 나 역시 그렇게 자라온 듯한데 그 시간들을 생각해 보면 미안한 일들이 더 많은데 솔이는 늘 고맙다고, 늘 사랑한다고 말해주니 그 노래를 듣고 울지 않을 엄마가 어디 있을까. 정작 그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은 아무도 울지 않았는데 카메라를 들고 있는 엄마들은 웃으면서 울고 있다.
애써 눈물을 훔치고 엄마를 발견한 솔이를 보며 머리 위로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우리 대견한 솔이, 멋진 우리 윤솔이.
졸업식이 끝나고 어제 오후 솔이가 직접 고른 꽃다발을 들고 가 꼭 안아주었다. 솔이는 부끄러운 건지 아랫입술로 앞니 빠진 잇몸을 감싸고는 배시시 웃어댄다. 품에 안으니 처음 유치원에 입학하던 그 꼬맹이가 맞는데, 쪼그맣고 보드랍고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꼬맹이, 벌써 졸업을 하고 초등학교에 간다니 다시 한번 울컥한다. 기특해라, 기특해라.
졸업식 장에서 학사모 사진도 찍고 헤어지기 아쉬운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담임 선생님과 꼭 안으며 작별 인사도 나누었다. 담임 선생님이 솔이를 꼭 안고 정말이지 올 한 해는 솔이에게 가장 고마웠다며 속닥속닥 귓속말을 하시며 우시는데, 그 모습을 보니 덩달아 나도 눈물이 나온다. 누가 보면 내가 졸업하는 줄 알겠다. 정작 주인공인 솔이는 눈물 한 방울 없이 어색하게 웃고만 있는데 딸 졸업이라고 오랜만에 빼입고 구두까지 신고 한 껏 멋 부리고 와서는 내가 눈물바다다. 그러고도 모자라 도대체 뭘 찍는 건지 유치원 곳곳에 솔이를 세워두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게 다 추억이지 혼자 중얼거리며.
한 참을 유치원에서 서성이다 다 울었다 싶을 때쯤 솔이랑 운동장으로 나왔다. 다섯 살 때 라푼젤에 빠져있어서 긴 머리 늘어뜨리고, 빼딱 구두 신고, 바닥에 끌리는 치마를 입고 운동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축구공을 차던 솔이가 스쳐 지나간다. (그 때나 지금이나 운동 신경 하나는 와따)
지금 와서 그때의 동영상들을 돌려보면 발음도 부정확해서 귀엽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는데 왜 그때는 그걸 몰랐을까. 이 귀여운 순간이 길지 않다는 걸 모르고 다 큰 애처럼 대하기도 하고 욕심을 부리기도 했을까. 그때의 서투르고 어설픈 나도 스쳐 지나간다.
이곳은 너와 나의 '그때'가 있는 곳이구나 ( 엄마 감성 무한질주, 밤 12시 넘어 글 쓰고 있음 )
주차장으로 걸어오며 아까 담임 선생님이랑 이야기할 때 아쉽고 슬프지 않았냐고 하니, 솔이가 말한다.
'근데 선생님 입냄새가 너무 심했어.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땀 냄새랑 입 냄새 때문에 숨을 참고 있었어'......
아차차 너는 사랑스러운 여덟 살이었지, 엄마처럼 감성 터지는 30대 후반이 아니었지 : ) 솔이 말에 푸핫 웃으며 남아있던 눈물들이 쏙 들어간다.
짓궂은 이 녀석, 부끄러웠구나!
솔이는 그렇게 졸업식을 마치고 다음 주부터 다시 유치원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등원한다. 초등 입학 전까지 계속 등원을 하다가 2월 마지막 날에 진짜 졸업을 하고 돌아온다. 그날은 가족끼리 작은 파티를 해야겠다. 진짜 끝. 디 엔드. 올 오벌.
+ 사랑스러움 하나 더 추가.
지난 주말 아침, 윤성이는 아직 자고 있고 허니는 책상에 앉아서 회사 일, 나는 출근 준비하며 화장, 솔이는 딸기 먹으며 티브이를 보는데 솔이가 딸기를 바닥에 흘렸다. 그걸 보고 김허니가 물티슈를 가져오면서 '물을 흘렸는데 물티슈를 가져오다니'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한 마디 거들었다. 맞다고 우리 이제 물티슈 쓰는 거 진짜 줄여야 한다고. 이건 재활용도 안되고 환경오염을 얼마나 시키는데, 우리 진짜 물티슈 줄이자.
몇 주 전, 너무 추워서 세탁기가 어는 바람에 일주일 넘게 빨래를 못했던 때를 생각하며 이렇게 환경이 극변화 하는 건 다 우리의 책임이라고, 우리 윤윤이 들 살 미래에 물이라도 없으면 어떡하냐고 공기도 사서 마셔야 되는 거 아니냐고, 우리라도 지구를 아끼고 지구를 지켜야 한다고, 물티슈 사놓은 것만 다 쓰고 이제 주문 알 할 거라고 아주 단호하게 에어퍼프를 얼굴에 두드리며 남편에게 말하는데
우리 둘 사이에 있던 솔이가, 티브이에 눈을 고정한 채 딸기를 몇 입씩 베어 물며 아주 무심히 한 마디 던진다.
' 근데, 셋째 낳으면 물티슈 필요하지 않아? '
김허니, 나 둘 다 [ 입틀막 ] : 입을 틀어막다를 줄여 이르는 말. 놀라서 벌어진 입을 막을 정도로 벅차오를 때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