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몫이나 축에 들지 못함
[ 열외 : 1.죽 늘어선 줄의 바깥, 2. 어떤 몫이나 축에 들지 못함 ]
지난가을 처음 수영을 시작했을 때 우리 반에서 진짜 생초보는 나와 20대 아가씨 둘뿐이었다. 몇 달 전에 만들어진 특강반에서 다들 몇 달 치만큼의 친목 도모가 형성된 상태였고 또 역으로 나와 그 아가씨는 생초보라는 풍선껌 같은 얇디얇은 동병상련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열외를 담당했었다.
하지만 가을이 지나고 겨울 한가운데쯤 왔을 때 그 아가씨는 소리 없이 사라졌고 나는 물 안팎으로 친목이라고는 없이 혈혈단신 열심히 열외의 역할을 해 왔다.
그러고 보니 그 사이 같은 반 사람들끼리 차도 한 잔씩 마시고 오리발 공구도 하고 뭐 몇몇 교집합을 찾는 시도가 있었지만 그 아가씨는 대화에 잘 끼지 못했고 나 역시 대화에 끼지도 빠지지도 못하면서 어정쩡하게 카톡 친구가 되고야 말았다. 어쩌다 보니 수영장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친구들이 줄줄이 늘어났지만 그 어느 누구와도 친하지도 잘 어울리지도 않는 그런 상황에서 _
차라리 아무도 모르고 다닐 때가 심적으로는 더 태평히 수영을 할 수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모르는 사이도 아는 사이도 아닌 사이에서 뜻 맞는 사람들끼리, 그것도 여자들끼리 삼삼오오 무리를 지으면 열외들은 정말 힘이 빠진달까? 뭐랄까 적절하지 않은 패배감이 느껴진다. 자의적인지 타의적인지 구분할 수 없는 고립감을 느낄 때면 수영을 배운다는 가장 우선적인 목표에만 매달려야 하는 간절함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그 20대 아가씨처럼 수영이 별로인지 내가 별로인지 뭐 그런 쓸데없는 생각들 때문에 수영장 재등록을 안 하게 되니까.
나는 사람들이랑 친하지 않아도, 수영장에서 인생 친구를 만들거나 일상을 나눌 이웃을 만들지 못해도 수영을 꼭 계속하고 싶었다. 그게 첫 마음이자 유일한 이유였으니 좀 외롭더라도, 열외가 되더라도 성격 탓이려니 하고 (입은 좀 튀어나와있었겠지만) 묵묵히 조용히 매일 수영장에 갔다.
그런데 나도 재등록의 갈림길에서 멈칫하는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 가령 잦은 회식으로 인해 (나는 초대받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라인을 넘어 커지고 잦아지던 어느 날, 고급반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삼삼오오 친목을 도모하던 사람들이 속닥속닥 거리자 소리의 전달 속도의 순서대로 기체보다 빠르게 액체 즉, 물속으로 떠 빨리 '고급반 선생님이 어제 회식하고 술병 나서 수업을 쨌다'라는 말이 내 귀에 닿았다. 아뿔싸_ 친목의 규모가 한 라인이 아니라 수영장 전체였구나. 흠. 그리고 그걸 다들 쉬쉬하는데 나는 말할 사람도 없으면서 입이 씰룩인다.
두 번째, 이건 정말 마지막 이유였는데 우리 반 선생님은 싹싹한데 박력이 있는 스타일이라 회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또 티칭 실력도 좋아서 실력이 되는데도 중급반에 남아있으려는 회원들이 생길 정도로 잘 가르치고 꼼꼼했다. 하지만 담백하게 티칭을 이어가던 시기가 지나고 회원들과 친목을 도모하고 회식을 하고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선생님의 연애사가 자주 수영 중급반의 주제로 오르는 게 문제였다. 그걸 공유하고 있는 선두그룹들이나 회원들은 즐거운 화제거리겠지만 나와 같은 열 바깥의 회원은 따라 웃기도 뭐하고 무시하자니 너무 말이 많고, 속에서 짜증이 부그리 부르리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선생님이 여자친구랑 헤어졌고 그날은 수영장에 있는 대여섯 라인에서 힘내라 힘내라부터 시작해 뭐만 하면 여자친구랑 헤어져서 그렇다니 놀려대는데 그 친목 도모가 수업의 절반을 넘었다. 그렇다. 넘었다. 이건 이미 선을 넘은 것이다.
나는 오리발을 신게 되는 첫 영광을 하루만 누리고 수영장을 바꿨다. 내 인생의 오리발을 찾아 떠난 첫 여정에서 접배평자까지 다 배웠다는 홀가분한 마음만 가지고 뒤돌아섰다. 선생님의 이별을 같이 아파해주지 못하는 나의 차가운 마음을 가지고, 같이 휘파람 불고 괜찮아 괜찮아! 응원할 힘이 없는 나의 메마른 가슴을 가지고, 실로 주차와 드라이기 전쟁이라는 하급 수영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내가 만약 사람들과 같이 잘 어울리고 친목 도모의 열외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그 라인에서 오리발을 차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열외라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왕 짜증이 난 김에 수영장도 옮겨보고 새로운 티칭도 받아보고 낯선 환경에 적응도 해보자는 '지극히' 떠나는 자의 이유로 새로운 수영장의 신규 등록을 새벽 6시에 광클로 성공시켰다. 새로운 마음으로 수영 일지를 쓰겠다는 굳은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