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꿈처럼

출산 기록

by 뚜솔윤베씨

출산 가방을 싸면서 생각했다. 둘째를 낳고 가장 고요한 순간 글을 쓰겠다고. 그때만 해도 그 '고요함'이 빨리 찾아올 줄 알았다. 솔이를 낳던 때를 떠올려 보면 회복도 빨랐고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기쁨뿐이었다. 아마 그래서 솔이를 낳고 고개를 돌리자마자 '이 정도 라면 둘째도 낳겠는데?'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리석은 지고.



둘째 아이의 태명은 뚜뚜다. 오늘은 뚜뚜를 낳은 지 딱 일주일 되는 날이다. 일주일 전 솔이랑 블록놀이를 하다 잠시 침대에 누운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진통이 시작되었고 여섯 번째 인지 일곱 번째 진통 주기를 재다가 너무 고통스러워 엉엉 울고 말았다. 그때 참지 말걸. 솔이 때는 그런 가진통을 하루 온종일 겪다가 병원에 간 뒤로도 9시간 반을 진통하다가 낳았는데, 뚜뚜의 진통은 채 한 시간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 길로 옷을 입고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울부짖으며 옷을 입다 보니, 솔이한테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집을 나온 게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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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 시작한 지 한 시간 반 만에 병원에 도착했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진통이 시작되어 차마 걸을 수가 없었다. 주차장 기둥을 붙잡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데 간호사분들이 휠체어를 끌고 나왔다. 나는 무슨 정신에선지 걸어가겠다고 말하고 어그적 어그적 기다시피 병원으로 들어갔다. 아마 솔이 때는 멀쩡히 들어가 서류 작성하고 무통을 맞고도 9시간 반을 보냈으니 이번에도 '이렇게' 아프지만 애가 나오려면 멀었다 싶었나 보다. 그놈의 한 번 해 본 게 뭐라고 뭐든 갖다 붙이다 보니, 이 글을 쓰기까지 더 오래 걸린 것 같다.



내진 결과 자궁문은 30프로 열렸고 (그날 오전 진료 때랑 똑같았다) 잘 맞춰왔다며, 오늘 안에 낳겠다는 말을 뒤로하고 간호사는 나가버렸다. 무서운 분만실에 나만 남겨둔 채 다들 어디론가 가버렸는데, 들어올 때랑 또 달라진 진통에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이 고통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몰라 몸서리쳤다.



무통 주사를 맞고 한 숨 돌리나 싶었는데, 무통 주사 맞은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양수가 터졌고 양수가 터진 지 20분 만에 나는 둘째 뚜뚜를 낳았다. 병원에 온 지 1시간 40분 만에 내 배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꺼져버렸다.



양수가 터지고 분만실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곧 아기가 나올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간호사들은 자궁 문도 다 안 열렸고, 진행도 그다지 빠르지 않다고 했지만 나는 사지가 떨렸다. 내 몸인데 나도 어쩔 수 없는 움직임에 살려달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아이가 나오고 있음을 느꼈다. 곧 분만 준비가 되었고 의사가 와서 뭐라 뭐라 많은 말들을 했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나를 혼냈다. 내 몸을 휘젓고 찢으며.




그 와중에도 마스크를 껴야 한다며 잔소리하던 간호사도 생각난다. 그렇게 마스크를 낀 채 몇 번의 힘주기를 했고 채 열리지 않은 자궁문을 열고, 좁은 구멍을 스스로 찢으며 둘째를 낳았다. 4킬로 뚜뚜. 우렁찬 둘째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탯줄을 자르는 남편의 상기된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매정하던 의사와 간호사들도 옅은 미소를 띠며 잘했다고 나를 다독였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솔이를 낳던 순간은 환희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나는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기쁨도 환희도 감동도 없는 그런 출산. 너무나 고통스러워 눈물도 나오지 않는 고통 그 자체의 출산. 내 몸은 이미 내 몸이 아닌 것 같았다. 뚜뚜를 낳으며 내 몸은 너무 많이 찢어졌고, 너무 많이 뒤틀려버려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회복실 침대에 옮겨지고 두 시간을 꼼짝없이 누워있는데 터져버린 풍선처럼 너덜거리는 나 자신이 가여워 눈을 뜨지 못했다.




남편은 양가 어른들, 가족들, 친구들과 기쁨을 나누는데 눈을 감고 있으면서도 소리 없는 남편의 미소가 느껴서 너무 싫었다. 모든 게 다 싫었다. 심지어 그 고통 속에서 나와 분리된 뚜뚜는 꼴도 보기 싫었다. 그냥 다 싫었다. 이불속에서 꺼져가고 있는 내 사지가 아직도 덜덜 떨리고 있는 기분. 자기가 낳은 자식이 꼴도 보기 싫다니, 매정하고 독하다고 하겠지만 정말 그랬다. 어쩌겠는가 그것이 또다시 엄마가 된 기분이었는 걸.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드디어 글을 적을 수 있을 만큼의 고요가 찾아왔고 내 삶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매정하고 독한 엄마에서 모든 걸 다 잊고 기쁨과 환희만 기억하는 망각의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내 몸에 남아있는 고통의 흔적들을 매 순간 마주하며, 창 밖을 바라본다. 모든 것은 지나가겠지, 마치 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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