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모든 순간이 소중할까?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드디어 혼자다. 며칠 째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솔이도 둘째도 잠들었고, 친정엄마도 솔이 옆으로 남편도 둘째 옆으로 갔다. 불 꺼진 거실에 드디어 혼자다.


얼마 전 솔이 귀지를 파주며 들었던 감정을 꼭 기록하고 싶었는데 도통 시간이 나질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감정을 잊을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 시간만을 기다렸다. 월요일에 스쳤던 이야기를 금요일 저녁에 기록한다. 정말이지 다행이다.



콧물이 흘러 간 솔이 소아과 병원에서 귀지가 너무 많아 귀 보개를 쓸 수가 없었다. 솔이가 무서워하는 바람에 일단 다음 진료 때 귀는 보기로 하고 집에 왔는데 솔이가 나에게 귀지를 파달라고 했다. 아기 면봉으로. 버둥거리는 둘째 옆에 솔이가 누워 어깨를 한껏 추켜올린다. 엄마가 못 미덥긴 하지만 병원은 더 무서우니 어쩔 수 없이 누워 끙끙거리는 솔이가 귀엽다. 면봉이 귓속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귀에 살짝 닿기만 해도 고래 소리를 내며 자지러진다. 귀여운 것.


누가 들으면 '저 집 애 잡네' 싶을 정도로 난리를 치면서도 왕건이 귀지가 나올 때마다 얼마나 신기해하고 좋아하는지 귀여운 것. 그 모습을 보는데 그게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귀지를 다 파고 귀를 쓰담쓰담해주며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엄마가 어릴 때 엄마의 아빠가 귀를 다 파면 꼭 이렇게 해주셨다?'



나는 솔이에게 나의 아빠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다. 이야기하지 않는다. 예전에 돌아가셨다고만 말해뒀고 가끔 남편과 솔이가 너무 다정스러울 때는 '너는 그런 아빠 있어서 좋겠다' 농담 같은 진담을 건네기도 한다. 솔이가 아무리 옛날이야기를 해 달라고 해도 늘 나의 유년시절엔 아빠가 빠져있는데 갑자기 솔이 귀를 파다가 아빠가 튀어나와 버렸다.



솔이는 그냥 듣고 지나갔지만 정작 그 말을 한 나는 온종일 생각에 잠긴다. 월요일에 들었던 그 감정이 이 글을 적는 금요일 밤 다시 떠오른다. 추운 겨울 이불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으면 따뜻한 손으로 귀지도 파주고 머리칼도 빗어주셨다. 오이를 썰면서 칼 쓰는 방법도 알려주셨고 붓글씨도 가르쳐주셨다. 집에서 탕수육도 만들어 주셨고 계곡에 놀러 가서 꽁치찌개도 끓여주셨다. 운동회 때 팔을 휘저으며 달리기도 했고 밤늦게 다른 집 아파트에 우편물을 넣고 오면 잘했다고 칭찬도 해주셨다. 아빠 이름 대고 호떡가게 가서 실컷 먹으라고 하셔서 그러기도 했다. 진짜 맛있는 호떡집이었는데.



그리고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아빠이다.

무슨 아침 드라마처럼, 아빠는 엄마를 두고 바람을 폈고 그 일로 오랫동안 집이 불화했다. 내가 하도 어릴 때 여서 엄마가 냉장고 앞에서 엉엉 우시길래 어떻게 알았는지 바람난 여자 집에 전화를 걸어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화냥년아' 소리치고 끊어버리기도 했다. 무슨 장난 전화하듯이. 그렇게 몇 년은 집이 집 같지가 않았다. 그 시절엔 남편이 바람을 피우거나 아내를 때리거나 하면, 잘못한 사람은 오히려 큰소릴 치고 아내들은 집을 나가거나 사람들의 이야깃거리나 되는 정도였다. 김희애처럼 가위를 남편 가슴에 꽂아버리거나 남편을 달리는 트럭 앞에 세우는 그런 사이다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집도 다를 게 없었다. 자식을 셋이나 낳고도, 그렇게 분한 일을 당했는데도 엄마는 늘 힘이 없었다. 쉽게 이혼도 안돼서 엄마는 내가 보기에도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이 꽤나 길었고 내가 고등학생 때 다행히(?) 아빠가 나를 미친 듯이 두들켜 패는 바람에 모든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엄마 인생에서도 내 인생에서도 아빠를 도려낼 수 있었다. 이혼 도장 꾹.



시간이 흘러 결혼식을 앞두고, 왜 그랬을까? 아빠 팔짱 끼고 수줍은 얼굴로 식장에 들어가고 싶어서였을까? 혼주석에 엄마 혼자 두기 싫어서였을까? 안 그래도 부잣집에 화목하기까지 한 시댁을 보는데 기죽기 싫어서였을까? 나는 아빠에게 연락을 했다. 결혼식에 와주실 수 있냐고. 아빠는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사람에게 미안하다며 (그때 그 화냥년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곤란해하셨는데 나는 그때 깨달았다. 내가 아빠를 도려낸 게 아니라 아빠 인생에서 지워진 건 나라는 것을. 후벼 파인 게 나다.


그때 많이 울고 또 솔이를 낳고 많이 울었다. 나는 솔이를 가만히 바라만 보아도 너무 예쁘고 귀해서 눈물이 다 나는데, 아빠도 분명 나의 그런 시간을 함께 했을 텐데 어떻게 자식이 자식을 낳았다는데 연락 한 통 없을까. 생각하며 많이 울었다. 어리석은 지고. 후벼 파였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나는 그랬다. 아빠 그게 뭐라고 그 끈을 스스로 놓지 못하는 걸까.



하지만 자식에게 부모의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부모가 어떤 사람이던 자식은 평생 부모의 사랑과 지지를 뿌리 삼아 이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부모는 자식을 세상에 있게 해 준 뿌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뿌리가 다 썩어 흔들려 뽑혀버렸는데도 어디엔가 자꾸 뿌리를 내리고 살고자 애쓰는 애처로운 잡초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형편없는 사람에게서 나는 왜 벗어나지 못할까, 도대체 부모란 무엇인가.




들꽃.png



솔이를 낳고 일 년 정도는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는데 결국 그 혹독한 시간이 내 마음의 위로였다.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뿌리가 되었으니 뒤돌아보지 않아도 된다. 뒤돌아보아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나 할까.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솔이에게 할아버지는 아주 예전에 돌아가신 분이 되었는데 갑자기 귀지를 파다가 그 혹독한 시간에 잠시 피었던 들꽃들이 스쳐 지나간다.




사실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있는 듯 한 막연한 그리움, 그 빈자리에 대한 아쉬움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남김없이 다 토해내고 털어내고 도려내어 다시는 이러한 감정에 빠져들지 않길 바라며. _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다 소중한 건 아닐 테니.




끝.



keyword
이전 10화마치 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