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오늘은 아침 일찍 화장을 했다. 그리고 요가를 마치고 순댓국 한 그릇을 사 먹고 여기 카페에 앉았다. 문득 이렇게 자유로운 일상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오랜만에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하다. 지난 2주는 감기 몸살 때문에 꽤나 힘든 시간이었다. 명절에 크게 무리하지도 않았는데 오가는 여독이 쌓여서 인지 설 쉬고는 바로 목감기, 몸살감기가 왔다. 아침마다 목이 찢어져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종일 온몸을 두드려 맞는 듯한 근육통에 열감까지. 한창 뉴스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국이 떠들썩하니 '혹시 나도?' 하는 걱정 때문에 좀처럼 몸도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감기 기운만 있으면 '코 좀 그만 파~' 하는 남편의 농담에도 웃질 못하고 열흘 가까이 침묵하며 보냈다. 운동도 못했고 글도 못썼고 육아도 집안일도 엉망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정말 오랜만에 목이 편안한 상태로 잠에서 깼다. 밤새 이불에 실수한 솔이를 보는데도 너무나 사랑스러워 뽀뽀를 퍼부었다. 나는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기쁜 날이다. 그리고 입춘이다. : )
솔이를 임신했을 때 그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음식점들은 다 돌아다녔다. 입덧도 별로 안 한대다 먹고 싶은 게 생각나면 혼자라도 운전해서 가 진미를 맛보고 왔다. 그때 진주에서 맛 좋기로 유명한 설렁탕을 먹으며 엄마 생각이 났다. 나는 이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며 지내는데 엄마는 날 가졌을 때 너무 가난해서 그렇게 먹고 싶던 짬뽕 국물도 맘껏 못 먹어 서러웠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이후의 엄마의 삶이 고스란히 스쳐지나가며 뜨거운 설렁탕을 먹으며 코끝이 시렸다. 운신이 자유롭다는 걸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을 엄마의 인생을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오늘 순대국밥을 먹는데 그때가 떠올라 다시 한번 눈물을 삼켰다. 엄마를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이 나는데, 단 한 번도 제대로 울어보지 않았다. 아마 그 눈물의 주인은 내가 아님을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
서울로 이사 오면서 나도 남편도 묘한 쾌감에 사로잡혔다. 단 한 번도 심리적으로, 물리적으로 부모에게서 온전하게 멀어져 본 적 없는 삶에서 벗어났으므로. 결혼을 해도, 자식을 낳아도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서울로 이사 오면서 우리가 어렴풋이 그리던 독립이라는 일을 했을 때 나도 남편도 표현하기 어려운 해방감을 맛보았다. 남편은 든든한 울타리를 벗어난 쾌감을, 나는 죄책감과 가난에서 멀어지는 쾌감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늘 엄마가 있는 곳으로 돌아누웠다. 엄마를 그리워한 건 아닌데, 다시 돌아가고 싶었던 건 아닌데 가슴 한편이 시렸다.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엄마의 인생 속에서 나는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남편과 꾸린 내 가정은 남부러울 것 없이 단단해지고 따뜻해져 한 겨울에도 꽃을 피우는데, 엄마를 생각하며 늘 가슴 한편이 얼어붙어 시렸다.
서울에 온 첫 해, 엄마는 폐경을 지나며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하셨다. 약한 말씀도 많이 하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살갑게 대하지 못하고 혹시나 엄마의 인생이 녹아버릴까 봐 더 찬바람 부는 말로 엄마를 위로했던 것 같다. 엄마는 내게 기대고 싶어 하셨지만 나는 손수건 한 장도 건네지 않았다. 이상한 마음이다. 이기적인 욕심이다. 언 땅에서 겨우 싹을 틔어 꽃을 피웠는데 혹여나 그 꽃이 질까 봐 노심초사하는 마음.
그때 엄마가 생애 처음으로 운전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장롱면허였던 엄마가 운전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우리 형제들은 누구보다 반가웠다. 한 달에 두어 번 쉬는 날에도 늘 집에만 계시고, 운전하는 자식들만 바라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안쓰럽던 찰나, 엄마의 용기는 모두에게 기쁨이었다. 형제들이 뜻을 모아 새 차를 사드렸을 때 엄마의 인생이 조금이나마 자유로 와지길 바라는 마음에 모두가 설레었다. 아주 작은 시작으로 엄마의 삶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지길 바랬다.
그리고 이년 뒤, 엄마가 차를 팔았다며 돈을 돌려주셨다. 잘해보고 싶었는데 혼자서는 운전을 하는 게 쉽지 않았고 마침 급한 돈이 필요해 차를 팔았다고 하셨다. 가슴이 아팠다. 나는 엄마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누구보다 삶의 변화를 원했던 건 엄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여유가 없는 일상이 엄마의 용기를 무색하게 했다는 것을. 누구보다 노력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돈을 다시 돌려드리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의 그 먹먹함을 종종 떠올린다.
오늘처럼 내 삶이 이토록 자유롭고 여유로워 감사함이 들 때면 엄마 생각이 더 난다. 엄마는 사는 내내 발버둥 치며 나를 키웠는데 나는 차 한 대 사드린 것으로 그 빚을 갚았다고 생각했던 것, 그렇게라도 엄마의 희생에 대한 내 죄책감을 덜어내려 했던 욕심을 마주할 때면 차가운 이 겨울 속으로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든다. 지금 내가 가지는 이 안일함이 부끄러워진다.
다가오는 봄, 둘째 산후조리를 해 주시러 엄마가 서울에 오신다. 한 동안 일을 못하실 테니 지금 엄마의 마음은 더 급하겠지. 딸이 일을 해서 걱정 없이 와 계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마의 생계를 모른 척할 수도 없으니. 그래서 엄마는 이번 겨울 더 바쁘게, 더 힘들게 일을 하고 계신다. 한 푼이라도 더 모아두시려고 _ 그러니 당연히 몸이 더 자주 더 심각하게 병들고 있다. 나는 엄마 걱정에 , 통화할 때마다 마음이 아픈데 마음 아파하는 것 말고는 따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냥 오늘도 몸조심하라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고 꽃 같은 솔이를 보고 이 겨울을 잊는다.
정말이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지독한 비극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