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이런 마음으로 산다면,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토요일에 했던 임신 당뇨 검사에서 재검 결과가 나왔다. 그날도 남편과 솔이가 병원에 같이 와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렸는데, 기분 좋게 임당 통과하고 찜닭 먹으러 갈 생각이었는데, 이틀이 지난 지금 다시 병원이다.




솔이를 가졌을 때도 임당 재검을 했었는데 나는 무슨 자신감인지 이번에도 아무 걱정 없이 늦게까지 케이크를 먹고 새벽까지 놀다가 다음 날 아침 토끼눈으로 병원에 왔다. 호르몬의 영향이 가장 크겠지만 나는 괜스레 늘어난 식욕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입덧이 끝나고 몸도 마음도 임신에 적응하니 세상 기쁘게 입맛이 돈다. 이번 달 들어서는 냉장고에 쌀찐빵, 과일을 쟁여놓고 먹고 있고, 운동 열심히 한 날엔 팥 도넛으로 사들고 와 밥 먹고 꼭 하나씩 챙겨 먹었다. 그 기쁨이 세상의 참기쁨이다. 우유랑 같이 먹는 빵이나 떡은 너무나 맛있어서 참을 수가 없다. 그렇게 몇 줄을 보낸 뒤에 바로 임신 당뇨 검사라니, 시기 적으로 너무 괘씸하단 생각마저 든다.







아침 일찍 재검을 시작해야 점심쯤이면 끝난다길래, 더 긴 공복은 어려울 것 같아 솔이를 일찍 어린이집에 보내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왔다. 다행히 솔이 담임 선생님이 당직인 날이라 일찍 불도 켜 주시고 어린이집도 훈훈하게 해 주셔서 마음 편히 솔이를 보냈다. 어제는 낮잠 시간 잠이 안 와서 자는 척을 했다며 어린이집에 정말 가기 싫다는 솔이에게 약속했다. 오늘 엄마 주사 4대만 금방 맞고 점심시간 맞춰서 올 테니 오늘은 자지 말고 점심만 먹고 만나자고.




그렇게 솔이와 아침 일찍 헤어지고 병원에 오는 길. 이렇게 이른 시간, 이렇게 추운데도 거리에 사람이 넘쳐난다. 등교하는 학생들, 일하러 가는 사람들 그리고 가게 문을 여는 사람들까지. 생소하다. 나는 솔이 등원 시간에 맞춰 운동 다녀오면서 하루를 여는데 나와는 다른 삶의 모습들을 보니, 새롭다. 그리고 왠지 모를 낯선 활기에 나도 가슴이 쿵쾅거린다. 임당 재검하러 가는 길이 설레기까지 하다.








첫 번째 채혈 후, 좀 걷고 싶어 병원 주위를 걷다 들어와 두 번째 주사를 맞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매일이 이런 아침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솔이도 나도 남편도 각자의 자리로 떠나는 일상. 나도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하루를 보내는 게 아니라 온전히 내 시간에 종종 걸어가는 삶은 어떨까?


남편은 둘째를 낳고 이제 우리 인생 삽시다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 말이 위안이 되다가도 슬펐다. 우리 인생이라, 내 인생이라...



솔이를 낳고 한 일 년은 나도 내 삶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몸도 마음도 괴로웠다. 무언가를 뺏긴 사람처럼 늘 서러웠고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손해를 보고 희생을 하고 살아야 하냐고 매일같이 일기장에 울부짖었었다. 그때는 그 마음이 전부인 거처럼 느껴지면서도 솔이를 바라볼 때면 그 순수한 사랑에 늘 백기를 들곤 했었다. 그런 혼란 속을 걸으며 남편과도 많이 싸웠고 그냥 세상이 밉기도 했다. 그런데도 삶은 지속되었고 고맙게도 솔이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엄마로서 나는 더 강해졌지만 엄마가 아닌 '나'라는 개인으로서는 잘 모르겠다. 어떨 때는 너무 자존감이 낮아진 건 아닌가 아직도 걱정할 때가 많고 종종 경제활동이 없는 삶에서 느끼는 초라함에 어깨가 무겁기도 하다. 남편을 향한 마음에서 미안함이 커진 것도 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내 삶을 영위한다는 생각마저 들 때면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과연 둘째를 낳고 나도 거리의 누군가처럼 아침 일찍 일터로 나가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나는 두렵다. 쇠사슬에 묶인 채 평생을 살아온 코끼리는 쇠사슬을 풀어주어도 자신의 영역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영화 쇼생크 탈출의 브룩스 할아버지처럼. 지금의 나도 이 일상에 묻혀있는 건 아닐까? 과연 둘째를 낳고 기르는 동안 나는 나 자신을 놓지 않고 잘 버텨낼 수 있을까? 그래서 나도 다시금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스친다. 그리고 두렵다. 임당 재검 결과는 하나도 두렵지 않은데 앞으로의 내 삶은 두렵다.



나도 새벽길을 나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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