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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러지는 시간

by 여노

땅을 파며 유물을 고대한 것은 아니고, 유적을 상상했지

우리가 살았던 터가 있다면 먼훗날에 만들어졌을 거야


순환이라거나 나선이라거나 직선 따위, 그런 정해진 방향 말고

그저 있는 것으로서 없는 것 대신 그 자리에 있었을 거야


유골은 찾지 말자 분골만 뿌려진 방이었단다

호명은 불가하니 메아리로 만족하자


굄목에 이마를 대고 한참을 생각했는데

관은 쓸모가 없겠다


퍼낸 흙을 도처에 뿌리지 말고 마당에 쌓아 두고서

어제의 넋을 기리는 능


탄생을 알리는 북소리 고고히 초목으로 나르고

돗자리 깔고서 소풍 가듯 낮잠을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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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