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끔거립니다. 숨 쉴 수 없단 걸 알아도 그렇게 해봅니다. 물속은 미지의 세계. 나를 숨기고 육지를 엿보지만 수면 아래에 있는 생명체는 모두 나를 볼 수 있지요. 뭍에서 육안으로 들여다 보지 못해 미지로 남은 공간. 그곳에서 살아야했던 우리가 정말로 대지에서 살게 된 걸까요. 돼지와 같은 우제류가 고래의 조상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돼지는 물속에서 살지 못하고 헤엄쳐서 대양을 건너지도 못할테지만 비좁은 우리보다야 물 좀 먹고 뻐금거리다가 해방되길 바랄 겁니다. 산채로 흙구덩이에 묻히느니 제발로 허우적대기를 택할 겁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물밖에 나온 물고기는 아니어도, 그에 준하는 심정으로 하루를 삽니다. 음습하고 침울한 나를 곁눈질하지는 마십시오. 이젠 태생이 그런 것 같으니까요. 바닥으로 가라앉아 넙치처럼 눈이 돌아가지 않은 게 다행 아닐까요.
일상이 우울하진 않습니다. 동정도 부적절해요. 연민에 익숙해지자니 나는 타고난 게 많아서. 일견 물고기가 아니라 인어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붙들리는 순간 무능해진다는 점이 특히 닮았네요. 도마에 올라 토막날 팔자이거나 배가 갈려 얇게 해체될 운명이거나. 생선은 그런 법이죠. 나는 물고기 잡기가 싫어요. 퇴로 없는 막힌 공간에서 꼼짝 못하게 붙잡는 게 너무 불공평해요. 생존하려는 본능이 활기차게 표출될수록 싱싱한 횟감이 된다니, 그 모순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생을 향한 투쟁이 죽음을 가까이 불러옵니다. 힘겨루기 끝에 승복하는 명예를 줄 수는 없었습니까? 연명이 죄악인 생선의 삶. 육지 사람들이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나를 찾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