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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Mar 15. 2020

술 주고 피보는 자영업자

청소년 보호가 가져다준 비극 



작년에 가슴 아픈 광경을 목도했다. 한 고깃집이 영업정지를 당한 것이다. 청소년에게 술을 팔았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 피 말리는 심정에 공감할 수 있었다. 하루 벌어 하루 버티는 작은 가게 입장에서 영업정지는 폐업과도 같다. 


보통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 있다. 어른처럼 건장한 10대 몇 명이 고깃집에 왔다. 겉보기에 2,30대 같아 보여 가게 주인이 신분증 검사를 안 했을 수 있다. 또는 10대들이 위·변조된 신분증을 내밀었을지 모른다. 무사 입장(?)한 아이들은 고기와 술을 왕창 시킨다. 질펀하게 먹고 마시고는 전화로 경찰을 부른다. "저희 10대인데 술을 팔았어요!" 그리고 경찰이 출동해 업주에게 식품위생법 위반사실을 알린다. 이에 호응하여 지자체에서는 즉시 영업정지 처분을 내린다. 


대부분 이렇게 영업정지를 먹는다. 한국외식업중앙회 통계자료는 그러한 상황을 방증한다. 2010년부터 2012년 사이 미성년자 주류 판매로 적발된 업소 3339곳 가운데 2619곳, 즉 78.4%가 술을 마신 청소년 자진 신고로 적발된 곳이다. 업주가 매출을 올리기 위해 청소년에게 술을 팔았다기보다는 청소년들이 법의 허점을 악용한 사례가 많다.


식품위생법 제44조 2항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식품접객영업자는 「청소년 보호법」 제2조에 따른 청소년(이하 이 항에서 "청소년"이라 한다)에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개정 2011.9.15>

1. 청소년을 유흥접객원으로 고용하여 유흥행위를 하게 하는 행위
2. 「청소년 보호법」 제2조제5호가목3)에 따른 청소년출입ㆍ고용 금지업소에 청소년을 출입시키거나 고용하는 행위
3. 「청소년 보호법」 제2조제5호나목3)에 따른 청소년고용금지업소에 청소년을 고용하는 행위
4. 청소년에게 주류(酒類)를 제공하는 행위


그리고 위 조항에 따라 동법 제75조에는 다음과 같은 처벌 조항이 있다.

                                                                                 

제75조(허가취소 등) ① 식품의약품안전처장 또는 특별자치시장ㆍ특별자치도지사ㆍ시장ㆍ군수ㆍ구청장은 영업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영업허가 또는 등록을 취소하거나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그 영업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하거나 영업소 폐쇄(제37조제4항에 따라 신고한 영업만 해당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를 명할 수 있다. 


식품접객영업자(말이 어려우니 편의상 '주인'이라고 하겠음)가 청소년에게 술을 제공하면 두 가지 법에 걸린다.

식품위생법 그리고 청소년보호법.


식품위생법에서는 1차 적발 시 영업정지 60일, 2차 적발 시 영업정지 180일, 3차 적발 시 영업 허가 취소가 된다. 그리고 청소년보호법 제59조는 "청소년 출입 또는 고용 금지업소에 출입시킨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규정을 악용해서 여러 딱한 사례들이 쏟아져 나왔다. 


유흥주점에서 양주 마시고 여자 도우미를 부른 10대 4명이 업주를 협박하고 경찰에 신고

한 업주가 경쟁 업주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청소년을 시켜 술, 담배를 사게 하고 신고함

가짜 신분증으로 술을 마신 다음 자기가 10대라며 주인을 협박해 무전취식. 


선량한 자영업자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너무 많아졌다. 국회가 이를 제 때 처리하지 못하고 뭉개고 있다가 드디어 새로운 법이 만들어졌다. 식품위생법 75조가 2018년 12월 11일 일부 개정되고 2019년 6월 12일부터 시행된 것이다. 

                                                               

식품접객영업자가 제13호(제44조제2항에 관한 부분만 해당한다)를 위반한 경우로서 청소년의 신분증 위조ㆍ변조 또는 도용으로 식품접객영업자가 청소년인 사실을 알지 못하였거나 폭행 또는 협박으로 청소년임을 확인하지 못한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행정처분을 면제할 수 있다.


그동안 피눈물 흘렸던 가게 주인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다만, 이 법이 완전하지는 않다. 청소년임을 확인하지 못한 사정을 가게 주인이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CCTV가 없어서 신분증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얄짤없이 걸릴 수 있다. 


그리고 이 법이 편의점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편의점은 식품접객영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도 여전히 많은 편의점주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보호법은 해당 내용을 반영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군구에서 행정처분은 안 내리지만, 경찰에 불려 갈 가능성이 있다. 


그래도 가게 주인들에게는 청소년보호법 위반보다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인한 영업정지가 더 무서웠기에 이번 법 개정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영업정지는 신고 접수와 동시에 바로 내려지기 때문에 가게 입장에서는 타격이 크다. 청소년 보호법은 처벌받은 사례가 드문 편이고, 영업에는 곧바로 영향을 주지 않으니 숨통이 좀 트인다. 


이런 사례를 보면 법을 만드는 국회의 중요성이 새삼 거대해 보인다. 앞으로 법 적용 대상을 편의점까지 확대하고, 적용 물품에 담배까지 포함시켰으면 좋겠다. 또한 악의적인 청소년이 자영업자를 울리지 않도록 쌍벌제 도입까지 담아주길 바란다. 더 이상 착한 자영업자들이 피눈물 흘리지 않도록 국회가 그들을 어루만져줬으면 좋겠다. 하루라도 빨리 말이다. (202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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