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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Mar 01. 2020

문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야

취약계층이 피를 보는 질병의 사회학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과 전 세계를 강타했다. 2020년 3월 1일 오전 6시 기준 전 세계 57개국에서 확진자는 86,927명, 사망자는 2,976명이다. 한국은 2020년 2월 29일 기준, 확진자는 3,526명, 사망자는 17명을 기록 중이다. 확진자 수 대비 사망자 비율은 0.5 % 이다. 어떤 나라는 그 비율이 훨씬 높아서 3%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수치의 이면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하루 몇 천 명의 확짐검사가 가능한 한국에 비해 외국의 검사 능력이 생각보다 낮은 실정이다. 특히 미국은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 검사 비용이 몇 백만 원에 달하여 자발적으로 검사받기도 쉽지 않다.  검사 접근도가 떨어지니 실제 바이러스 감염자에 비해 확진자 수가 과소평가되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사망자 수가 더 많아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확진자 수 세계 2위지만, 높은 검진 능력을 갖춘 한국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는 외신들이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현황을 길게 상술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 매사 손도 씻고 마스크도 쓰면서 비말이 튀기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허나 위험성(치사율)을 고려해보면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심각한 게 있다. 바이러스가 사회분위기를 경직시키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불거진다. 사회 구조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무너지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 탑골공원 인근에는 원각사 노인 무료급식소가 있다. 가난한 노인들이 이곳에서 끼니를 해결하며 목숨을 이어간다. 아마 이 한 끼가 유일한 식사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방학이 되어 점심 급식이 사라지면 하루 온종일 굶는 아이들도 있는 걸 보면 노인들은 더하면 더하지 않을까? 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해 무료급식이 중단되어 수많은 노인들이 끼니를 굶게 되었다. 


이번에는 다른 지역이다. 광주공원 사랑의 식당은 매일 노인 600여 명에게 무료로 점심을 제공해 왔다. 최근 식당 정문에는 급식 중단 안내문이 붙었다. '사랑의 식당' 관계자는"오셔서 우시는 분들도 있고 그럴 때 참 마음이 무겁고 안타깝습니다."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고 한다. 


가난한 자들의 마지막 보금자리 쪽방촌도 예외가 아니다. 평소 의료봉사나 무료급식, 미용봉사를 통해 누리던 세상의 작은 온기마저 끊겼다. 코로나 19 예방차원에서 모든 대면 봉사가 취소된 것이다.  


자살률이 세게 최고인 한국에서 이번 사태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려가 된다. 몸과 마음이 모두 가난한 사람들이 불안정한 상황이 지속되면 극단적 선택을 할지 모른다. 이들에게는 마스크조차 사치다. 감염병 대처의 기본인 마스크 자체가 너무 비싸진 탓이다. 현재 사재기와 품귀현상으로 일반 마스크조차 1개에 2000원을 넘나 든다. KF94 마스크의 경우 3천 원~4천 원에 거래된다. 이마저도 쉽게 구할 수 없다. 당장 물품이 없어 어떤 약국은 이름과 전화번호를 예약 장부에 써달라고 한다. 


바이러스가 사람을 가려 전염시키지는 않지만, 사회구조가 사람을 가린다. '없는 이'들은 역병 속에서 큰 시련을 겪고 있다. 중국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최근 뉴스에는 17세 중국 소년 '옌청' 이야기가 실렸다.  이번 사태의 진원지인 후베이성 우한시 옆에 위치한 황강시에 살던 아이였다. 우한시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아버지 '예샤오원'씨가 춘절에 두 아들을 보러 왔다. 첫째 아들 '옌청'은 뇌성마비 장애인이고, 둘째 아들은 자폐증이었다. 상봉 3일 만에 아버지가 발열 증세를 보였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의심되어 아버지는 둘째 아들과  함께 집중치료실에 격리됐다. 첫째 아들만 홀로 남겨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옌청'을 찾아가 음식을 주기도 한 모양이지만, 도움이 산발적이었다. 옌청은 아버지와 헤어진 지 5일 만에 숨졌다. 


바이러스가 아이를 죽였는가? 무엇이 아이를 죽였는가? 복지천국 북유럽이었다면 이 아이는 이렇게 죽었을까? 


중국 최대의 음식 배달 서비스 앱 '메이퇀'. 오프라인 접촉을 기피하는 분위기 탓에 이 앱을 이용한 온라인 주문량이 확 늘었다. 소속 배달기사들은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강도 높은 노동을 한다. 쉬고 싶어도 회사의 강압에 못 이겨 불안 속에서 출근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누구보다 바이러스 감염 확률이 높아지는 셈이다. 


물론 보금자리에서 안전하게 지내는 사람도 있다. 지인은 회사에서 2주간의 휴가를 주었는데,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며 지낸다. 그의 아내도 '그래, 밖에 나가 코로나 걸리느니, 집에서 게임이나 해."라며 묵인해줬다. 


하지만 모두가 넷플릭스로 밀린 영화를 보고, 배달음식을 먹으며 방콕 휴가를 보낼 수는 없다. 가만히 있으면 생계가 끊기는 이들에게 질병은 그 자체로 위험한 게 아니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역병이 돌아도 일은 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바이러스에 걸려 죽거나 굶어 죽든가 둘 중 하나다. 


문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다. 문제는 바이러스가 드러낸 사회의 민낯이다. 태풍이 불고, 지진이 나고, 역병이 돌아도 피 보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높아질 때 가장 피해를 보는 이들은 해안가에 사는 가난한 어촌 주민들이라고 하지 않던가? 여기에서 거창한 해결책이나 이상향을 제시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번 바이러스 사태를 계기로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느껴보자는 것이다. 정말 큰 문제가 뭔지를 말이다. 

(2020. 3)




‘가족으로부터 격리돼 있던 17세 뇌성마비 아들, 홀로 집에 남겨진 지 6일 만에 사망’ 기사




참고 : 

1) 웹사이트 링크 : https://www.who.int/emergencies/diseases/novel-coronavirus-2019

2) 홍명교, [홍명교의 눈]바이러스가 폭로한 정치의 위기, 주간경향 1364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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