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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Sep 18. 2022

한강에서 누가 자살했다.

새벽이었다. 밖에서 막 돌아와 자리에 누우려 했지만 머리가 지끈거렸다. 잠을 잘 수 없었다. 최근에 소송에 휘말린 탓이었다. 인생에 한두 번 겪을까 말까 한 일이 생겨버렸다. 연못에 돌을 던지면 그 파동이 옆으로 계속 번져가듯이 새로운 변수들이 불거질 때마다 마음은 더 위축된다.


그저 걸었다. 집이 한강에서 멀지 않아 신호등을 몇 개 건너고 발품을 팔면 광진 대교가 나온다. 어두운 강물을 바라보며 다리를 터벅터벅 걸었다. 어둠 속에 도도히 흐르는 강물은 깊이가 보이지 않고 먹물처럼 칙칙하여 몸서리가 쳐진다. '죽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안 느낀다던데, 나는 그 정도로 힘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 위를 서성거리는데, 건너편 천호대교에서 반짝반짝 불빛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다리 위에는 구급차와 경찰차의 비상등이 점멸하고 있었다. 다리 아래에는 수난구조대 경비정 두 척이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강물을 헤매고 다녔다. 순간 마음이 철렁했다. 나만큼, 아니 나보다 힘든 누군가가 뛰어내렸나 보다. 


다시 강물을 쳐다보았다. 시커먼 물이 무섭다. 저 물이 무섭지 않을 정도가 되려면 얼마나 삶이 무섭고 깊은 절망에 빠져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죽을 용기로 살아야지'라는 옛말은 잔인한 말이다. 살아갈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고는 왜 말을 못 하는가?


산 자들이 죽은 자를 구하는 모습을 보다가 옆에 있는 '생명의 전화'가 눈에 띄었다. 생명의 전화에는 버튼이 두 개 있었다. 위에는 119. 아래에는 생명의 전화. 그 옆에는 '우울하거나 불안한 사람은 전화하세요'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나는 우울한 사람이었고, 전화를 걸어야 할 성싶었다. '생명의 전화' 버튼을 눌렀다. 수신음이 몇 번 가고 중년의 여자분이 응답을 하였다. 세상 인자한 목소리였다. 모두가 자는 새벽녘에 생판 모르는 남과 다리 위에서 전화를 하니 참으로 기묘했다. "제가 최근에 억대의 소송에 휘말렸어요."라고 말하자, 깊은 공감이 들려왔다.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가족들은 지금 자고 있겠네요?"

"네. 이제 들어가 봐야죠."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숙제를 마친 기분이었다. 엄청난 위로를 받거나 상황이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세상과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왔다.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깨지 않도록 그 옆에 살포시 누워 잠을 청하였다. 이 삶을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니까. 

(202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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