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돈 때문에 무너지는 것을 멈추는 첫걸음, 5대 재정 리스크를 정량화하라"
우리는 Chapter 2에서 퇴직 쇼크가 재정, 심리, 건강이라는 세 가지 위험으로 구성된 '삼중 위험 지대'임을 확인했다. 이 중에서도 재정적 위험은 나머지 심리적, 건강적 위협을 현실화시키는 근원적인 뿌리에 해당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결국, 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지고 공포스러운 공황(Panic) 상태에 빠지기 쉽다.
이러한 심리 상태는 비합리적 행동인 '투기(Speculation)'로 이어져 더 큰 재정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퇴직 후 소득이 없거나 부족한 상태에서 중대 질병이나 만성 질환이 발생하면 상황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막대한 의료비와 간병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치료 포기'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민하게 되는 비극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막연한 '노후 자금 부족'이라는 공포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50대 이후의 재정을 무너뜨리는 다섯 가지의 구체적인 '위험'을 식별하고, 그 폭발력을 예측하여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대비하는 것은 결코 비관적 사고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현실적이고 현명한 생존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위험 1: 소득 크레바스(Crevasse), 임금 피크제와 조기 퇴직이 만든 소득 절벽
소득 크레바스란, 말 그대로 소득이 급감하거나 완전히 단절되는 시점부터 공적 연금(국민연금 등)을 수령하는 시점까지의 소득 공백기를 의미한다.
한국의 상황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50대 초·중반에 주된 일자리를 퇴직하면서 소득이 끊긴다. 이때 연금소득이라도 받쳐주면 다행이지만 안타깝게도 65세부터 연금을 수령한다(1969년 이후 출생자). 이로 인해 최소 10년 이상의 길고 험준한 '소득 절벽'이 발생한다고 예상할 수 있다.
소득 절벽 위험은 '제3의 나이'를 맞이하는 중년에게 가장 치명적인 재정적 위협으로 다가온다.
소득 크레바스가 유독 위험한 이유는 단순히 돈이 없는 것을 넘어 세 가지의 강력한 압력이 이 시기에 동시에 작용하면서 중년의 재정을 압박하기 때문이다.
① 소비 관성(Consumption Inertia):
소득이 끊겨도 소비 수준은 직장 생활 당시의 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관성이 작용한다. 이는 매월 발생하는 고정 지출 (통신비, 차량 유지비, 보험료 등)이나 여행 횟수, 비용 등을 줄이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퇴직 자금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소진되는 원인을 제공한다
② 소득 공백기와 맞물린 목돈 지출의 집중:
자녀의 결혼, 주택 대출 상환, 자녀의 대학(또는 대학원) 등록금 등은 인생에서 가장 큰 목돈 지출에 해당한다. 이러한 지출은 특히 소득 공백기와 맞물리는 예가 적지 않다. 결국 소득 크레바스를 메워야 할 자금이 오히려 지출 증가로 이어지면서, 크레바스의 깊이와 폭을 넓히는 모순이 발생한다.
③ 자산의 조기 투입:
이때는 소득을 대체할 방법이 없으므로, 퇴직 자산을 꺼내 쓰는 자산의 조기 인출이 불가피해진다. 이는 퇴직 자산의 복리 효과를 앞당겨 상실시키는 결과를 만든다. 따라서 자산이 고갈되는 시점 또한 급격히 앞당겨진다.
소득 크레바스는 단순한 소득 감소로 끝나지 않는다. 이는 '내가 돈을 벌 수 없다'는 심리적 압박과 '자산이 줄어들고 있다'는 현실적 공포가 더해져 삶의 의지를 꺾는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한다. 그러므로 다가오는 소득 절벽 구간을 메우기 위한 구체적인 '소득 방어 시스템'을 고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위험 2: 자산 수명의 고갈, 물가 상승률과 실질 가치 하락의 저주
우리가 모아둔 퇴직 자산은 절대적인 금액이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물가 상승으로 인해 실질 가치는 하락한다. 덕분에 '자산의 수명' 또한 빠르게 줄어든다. 이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모아둔 돈이 충분하다고 착각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기 쉽다.
'70의 법칙'이 있다. 이는 물가 상승이 자산 수명을 얼마나 빠르게 단축하는지 냉철하게 보여주는 공식으로, 자산의 실질 가치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기간을 계산할 수 있다
가령, 60세 퇴직 시점에 4억 원의 자산이 있다고 가정하자. 물가상승률을 3%로 적용할 경우, 70÷3 = 23.3이 나온다. 이는 60세까지 모은 4억 자산의 실질 구매력이 83.3세에는 2억으로 줄어든다는 의미다. 만약 물가상승률이 5%로 증가한다면 14년 후인 74세에 내 자산이 반 토막 난다는 뜻이다.
따라서 노후 재정의 목표는 단순히 자산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자산 수명을 인생 수명과 일치시키거나 넘어서게 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한 마디로 정의하면 '돈의 수명'을 연장시켜야 한다.
위험 3: 미래를 도둑맞는 부채, 중년 가계 대출의 무거운 짐
중년의 부채는 곧 미래를 도둑맞는 행위와 같다. 한국의 50대 가구는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 대출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문제는 이 부채가 단순한 빚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득 단절 시점에 이르면 '위험한 부채'로 돈의 성격이 변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부채는 두 가지 측면에서 구분해야 한다. 안전한 부채는 소득 흐름 안에서 관리되거나 자산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하지만 퇴직 이후 소득이 끊기면, 대출 원금과 이자 상환 부담으로 인해 퇴직 자산이 잠식당하는 액티브 대미지(Active Damage)를 각오해야 한다
이 같은 소득 공백 위험은 심리적 공황과 결합할 때 파괴력이 극대화된다. 예를 들어 소득단절을 메꾸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다가 실패하거나, 생활비 또는 자녀 관련 지출 부족분을 해결하기 위해 주택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는 것이 좋은 예다. 이는 소득 절벽기에 대출 총액을 늘리는 결과를 만든다. 결국 노후 주거 안정성을 포기하게 만드는 파국을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후 재정 설계의 첫 단계는 부채의 성격을 냉철하게 진단하고, 'zero 부채'를 목표로 로드맵을 수립하는 것이다. 이자만 갚고 있는 만기 연장 부채는 없는지, 소득이 없어도 부채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 냉철한 점검이 필요하다. 따라서 제3의 나이가 시작되기 전에 주택 관련 부채를 포함한 가계 부채를 최소화하거나 완전히 정리하는 것을 재정 시스템 구축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위험 4: 자녀 리스크, 독립하지 않는 자녀가 가져오는 재정적 압박
자녀는 축복이지만, '미완의 독립'은 부모의 재정을 갉아먹는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위험 요소다.
자녀의 결혼 시기가 늦어지고 사회 진입이 지연되면서, 자녀의 교육비와 생활 지원이 부모의 인생 후반까지 이어지는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캥거루족 리스크다.
자녀 리스크는 부모의 죄책감을 연료로 삼아 작동한다. 착한(?) 부모들은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자녀가 뒤처진다'는 불안감 때문에 자신의 퇴직자금까지 허물어 자녀의 주거 자금이나 결혼 비용으로 지원한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자녀를 위한 무이자 애정담보 지출'이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이런 지원이 '나중에 돌려받을 수 없는 소비'라는 점이다. 자녀의 독립을 돕는다는 명목 아래 부모가 자신의 노후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연금 계좌를 해지하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재정 붕괴를 초래하는 요인이 된다
이 문제는 '가족 구성원 전체의 생존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부모의 노후가 불안정하면 결국 자녀에게도 장기적인 부담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녀의 재정적 독립을 돕는 것과, '책임을 전가하는 것' 사이의 선을 명확히 긋는 것이 중요하다.
냉정한 판단일 수 있지만 자녀의 완전한 경제적 독립만이 부모가 건너야 할 제3의 나이 구간을 버텨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위험 5: 배우자 리스크, 노후 준비 격차가 만든 갈등과 이혼 위험
노후 준비는 부부 공동의 책임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배우자 간의 노후 준비 격차가 심각한 재정적 위험으로 작용한다. 한쪽 배우자가 자산을 집중 관리하거나, 다른 한쪽이 경제 활동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노후 준비 상황을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재정적 격차와 부부간 소통의 부재는 제3의 나이의 심리적 위기와 맞물려 황혼 이혼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황혼 이혼은 자산을 분할하고 생활비를 두 배로 늘려, 남아있는 퇴직 자산을 단숨에 소멸시키는 아주 위험한 재앙으로 중년의 재정적 위기 극복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배우자 리스크를 대처하기 위해서는 재정의 투명성 확보와 노후 계획에 대한 부부간 공동 선언이 중요하다.
부부는 '노후 공통 통장'을 만들고, 각자의 연금 수령액과 예상 지출액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는 신뢰의 문제가 아니라, 노후 관련 공동 리스크를 관리하는 기본 원칙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배우자 리스크는 단순히 관계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노후 재정 붕괴의 최종 단계이자, 반드시 사전에 예방해야 할 시스템 오류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