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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Sep 03. 2020

[육아에세이]육아지옥의 문턱에서  발견한 것은

Feat. 케르베로스 같은 아드님과 요단강 건너간 허리


낮에서는 세상 천사 같은 모습으로 하루 종일 자다가 밤만 되면 우리 아기는 케르베로스처럼 울어댄다. 저승의 입구에서 도망치는 자를 사냥한다는 케르베로스는 머리가 셋 달린 신화 속 괴물이다. 갓 태어난 아기를 무시무시한 괴물에 빗댄 못된 엄마 같지만, 매일 밤 머리 세 개 분의 음량으로 목청껏 울어대는 아기를 안고 있다 보면 엄마의 눈물콧물도 쏙 빠진다. 출산의 충격으로부터 아직 회복되지 않은 발목과 무릎이 바닥에 갈리는 것 같지만  다시 아기를 안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사진출처_ 네이버


 육아 레벨의 최고난도라는 영아산통을 직접 경험해보니 통잠을 자기 시작한다는 50일은 왜 기적이라 하는지 알 것도 같다. 난이도가 좀 더 하락하는 100일에는 과연 사진을 찍고 잔치를 할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생후 40일 차를 바라보는 아기는 오늘도 초보 엄마의 혼을 쏙 빼놓았다.


어제 아기는 저녁 수유를 한 오후 6시부터 새벽 4시까지 단 한 시간도 잠들지 않고 울어재끼며 신생아 체력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거의 열시간이 다 되는 시간 동안 아기를 요령 없이 들었다 내렸다 안았다 하면서 허리는 결국 요단강을 건너가셨다. 체력은 바닥이 나고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르면 아기도 울고 나도 울고 허리도 울었다.


제대로 앉지도 눕지도 못할 정도의 허리 통증은 무릎과 목으로 이어졌다. 단 몇 시간이라도 아기를 함께 안아줄 남편이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허리가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편은 조리원 퇴소하자마자 돈 벌러 떠난 지 한 달째. 나 홀로 육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다. 짬을 내 아기를 맡기고 침을 맞고 나니 한결 가벼워졌지만 밤이 되자 어제보다 더 아프다. 결국 사놓고 한 번도 쓴 적 없던 복대를 꺼냈다. 복대가 이렇게 유용한 물건인지 처음 알았다.


오늘도 아기는 순순히 잘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자정이 넘도록 몸을 젖히고 서럽게 운다. 그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재운다는 마법의 피리라도 훔치고 싶을 즈음 아기는 잠이 든다. '잠들면 천사'라는 육아서적의 제목처럼, 언제 울었냐는 듯 새근새근 잠이 든 아기가 품 안에 완전히 녹아내린다. 그러면 어깨가 뻐근해와도 내려놓기가 아쉬워지기 마련이다. 아기침대로 눕히기 전에 한번 더 머리를 쓰다듬어보기도 하고 코를 부비며 아기 냄새도 맡아본다. 이렇게 작고 묵직하고 소중한 우리 아가!


아기를 안고 소파에 기대앉아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가끔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스쳐 지나간다. 애기 엄마가 아니었던 시절이 필름 영사등처럼 주르륵 떠오른다. '그래, 이만하면 이제 그만 놀아도 될 만큼 놀기도 많이 놀았던 청춘이었군. 그런데 이제는 엄마가 되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까,'  고민하다보면 또 날이 밝아온다.


아기를 안고 있다 보면 그 어느 때보다 내가 나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실 계획에 없던 임신과 출산이었다. 낳지 않을 이유는 없었지만 더이상 내가 나다울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음에 결혼 후에도 한참을 망설이던 것을 남편은 말없이 기다려 주었다. 그러나 망설인 것이 무색하게 아기를 낳고 나서 오히려 스스로에 대한 생각할 시간도 더 많아졌다.  오롯이 혼자서 아기를 안고 있는 밤이면 그 어느때보다도 내가 나다운 기분이 든다.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되면 내가 다른 사람으로 바뀔 것 같았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다. 또, 이 나이를 먹도록 제대로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과 세상을 이제야 제대로 마주 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케르베로스는 원래 도망치는 자를 감시하기도 하지만 하데스의 허락받지 않은 사람이 저승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역할도 한다. 거칠게 울어대기는 하지만 어쩌면 우리 아가는 내 마음이 깊고 어두운 곳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육아지옥이란 아기를 돌보는 숭고함을 모욕하는 뜻이 아니다. 그저 출산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아직 회복되지 않아 마음이 지옥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출산과 육아로 인해 고단하지만 결국 다시 나를 웃 게 만드는 것도 내 귀여운 아기이다. 마음속 저 낮은 곳의 문턱에서 나를 지켜주는 아기와 함께 오늘도 나는 나를 다시 만나고 있는 중이다. 새로운 나인지 원래의 나인지 모두 나라는 것을.


잠들면 천사같지만 웃을 때는 더욱 사랑스러운 우리아기님


독박 육아에 지친 모든 엄마들 파이팅!

당신이 엄마이기 전에 당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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