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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Aug 31. 2020

[육아에세이]주말부부는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데

넌 조상님이 나라를 구했니?  


"주말 부부가 되려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던데, 넌 무슨 조상님이 나라를 구했니? 우리 조상님은 아무래도 나라를 팔아먹은 게 분명해."     


  유부녀인 친구는 남편과 매일 함께 지내는 것이 진절머리가 난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남편이 배를 타는 항해사라서 일 년 중 8개월 이상은 혼자 지낸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혼자서 외로워서 어떻게 하니?'라는 딱하다는 표정과, '완전 부러워!'하는 반응. 전자는 주로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고, 후자는 결혼을 한 사람들이 많다. 가끔은 격하게 부러워하는 분도 계신데 보통 나이가 지긋하신 어머님들이 많다. 나로 말하자면, 남편과 함께 있지 않아서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시어머님께서는 아들을 항해사 시켜서 좋은 건 하나도 없고, 마누라 좋은 일만 시킨다고 하셨다. 남편이 돈은 벌어다주고 남편을 일 년 내내 챙겨야 할 필요는 없으니 얼마나 편하겠냐는 것이다. 한평생 아버님과 떨어져 지내보신 적이 없는 어머님도 아버님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너무 길어 힘에 부치셨나라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출산 직전에는 남편이 없어서 편한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혼자 있다 보면 아무래도 식사 준비나 청소에 게을러지기 마련이다. 덕분에 결혼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요리와 정리 솜씨가 형편없다. 뿐만 아니라 남편이 항해 중일 때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기도 하고, 늦은 시간까지 외출할 때도 있다. 말 그대로 자유로운 일상이었다. 아기를 낳고 키울 때는 힘들어도 애들 다 키우고 나면 오히려 남편은 없는 게 낫다는 선장님 사모님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꿀빠는 아줌마 라이프가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난 이후부터는 혼자 있는 모든 순간이 도전의 연속이다. 무엇보다도 아기와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다 보면 집에 퇴근해서 돌아올 가족이 없다는 것이 쓸쓸할 때가 있다. 출산 직후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나만 바라보며 우는 아기를 안아주다가 허리를 다쳤을 때는 서럽기도 했다.

 

 앞으로 자라나는 아이를 보면 남편의 빈자리는 점점 커질 것이다. 물론 남편도 멀리서나마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역만리 떨어진 바다에 있는 남편에게서 연락이 온다. 카톡이나 인터넷 전화로 남편에게 시시콜콜한 일상을 털어놓다 보면 혼자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마음은 어느새 바다를 건너 남편의 옆에 있는듯하다.    

남편대신 육아를 돕고(?) 있는 호식탐탐 고양이들

 

  몸은 떨어져 있지만 진짜 중요한 건 마음의 거리 아닐까. 배를 타고 있을 때는 애틋하고 애정이 넘치다가도 오히려 하선해서 집에 오면 서로 무심해질 때도 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오면 익숙하지 않은 상대방의 생활 패턴에 억지로 맞춰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물리적인 거리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서로 얼마나 배려하고 존중 하는가 이다.


 결혼한 지 딱 3년이 지났다. 우리 조상님이 나라를 구하셨는지, 파셨는지는 더 살아봐야 알 것 같다. 남편도 나도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지내다 보면 지금의 벅차고 힘든 시간도 언젠가 소중한 추억이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 집 든든한 가장인 남편의 안전운항과 무사귀환을 바라본다.

지금 남편이 항해중인 호주 뉴캐슬의 해안가



 참고로  글을  남편은 내가 꿀빠는 아줌마가   즈음에는 육상으로 정착하겠다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고 한다.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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