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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Aug 31. 2020

[육아에세이]출산 이후 늘어난 것은 후회뿐

출산 이후 늘어난 것은 후회뿐


 아기를 낳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밤잠을 설친 것이 무색하게 출산은 순조로웠다. 힘주기 시작한 지 삼십 분 만에 악 한 번 쓰지 않고 나온 아기를 처음 만났을 때가 한 달이나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남들은 눈물이 난다던데 나는 웃음이 났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주제에 배고프다고 입을 뻐끔거리는 게 어찌나 못생기고 귀엽던지.


 분만실에서 병실로 올라가서도 여전히 들뜬 마음이 들었다. 내가 아이를 낳았다니. 이 혼란한 코로나 시국에 카페 한번 못 가고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출산일을 기다렸던지. 친언니가 유도 분만으로 2박 3일간 고생해서 출산했기에 걱정했던 불안한 마음도 순식간에 날아갔다. 이 정도면 순산이지! 부른 배가 꼬리뼈를 눌러서 제대로 눕지도 앉지도 못했던 무거운 몸도, 코끼리 다리처럼 퉁퉁 부었던 다리도 이제 안녕이다! 가뿐하고 개운한 마음에 다가올 육아도, 회음부의 통증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런데 오후쯤 신생아실에서 전화가 왔다. 소아과 의사가 보자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으레 의사를 만나야 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신생아실에서 의사가 만나자고 하는 것은 아이에게 뭔가 이상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전혀 몰라서 신랑과 손잡고 즐겁게 웃으면서 신생아실로 내려갔다.  아기와 기다리던 의사는 조심스럽게 아기를 풀어헤치면서 운을 뗐다. 순간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짐작했다.


 아이는 잠복고환이라고 했다. 제가 뭘 잘못 먹었을까요?라는 울먹이는 물음에 그런 것은 아니라는 의사의 대답이 돌아왔고, 조리원 퇴소 직전에 내려오는 경우도 많으니 일단 기다려 보라고 했다. 신생아 잠복고환은 생후 3개월 이후에 초음파 검사를 통해서 수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당장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내려오면 다행이지만 내려오지 않으면 돌도 안 지난 아이의 몸에 전신마취를 한 후 수술을 해야 하고, 그마저도 안되면 인공고환을 넣어줘야 한다고 했다.


 그때부터 가뿐했던 몸과 마음이 후회로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낳을 아이 좀 더 일찍 낳았더라면, 임신했을 때 영양제를 제대로 안 챙겨 먹은 것이 문제였을까. 입덧 조금 한다고 입덧 약을 그렇게 처먹지를 말았어야 했는데. 임신 직전에까지도 부어라 마셨던 맥주가 원인이었을까. 임신 당뇨가 원인이었을까? 건강하고 젊지도 않은데 임신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온갖 후회가 머릿속을 폭풍처럼 휩쓸었다. 더 이상 기쁨으로 가득했던 나의 완벽한 출산은 축제가 아니었다. 어딘가 결함이 있는 아이를 낳은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임신 도중 방송통신대 사회복지학과 공부를 시작했는데  장애인 복지론이라는 과목이 있다.  장애인 복지법에 대한 과제가 있었는데, 장애인의 인권에 열을 내며 과제를 작성하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장애라고 할 수도 없는 질환에도 이 정도라니. 스스로의 위선에 치가 떨리면서도 수유 타임마다 울면서 아기를 보러 갔다.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기는 태평하게 잘 먹고 잘 잤다. 여전히 묵직하고 못생겼고 귀여웠다. 조리원에서 퇴소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아이의 고환은 소식이 없다. 육아지옥을 건너면서 아이의 고환에 신경 쓰거나 우울할 틈도 없이 시간이 흘렀다.


 지금은 수술이야 해주면 되고, 살아가는 데에 큰 지장이 없으니 이 정도로 건강하게 태어나 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마음은 안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새벽에 수유를 하며 아기를 보고 있으면 착잡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벌써 신생아 잠복고환에 대한 카페를 가입해서 의사와 병원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신생아 잠복고환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흔한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말간 얼굴로 잠이 든 아기를 보면 어쩐지 태어나기 전부터 오랫동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잠결에 씨익 웃을 때는 오히려 아기가 나를 위로하는 듯하다. 수술은 정말 간단한 수술이라고, 엄마 저는 괜찮아요 하고 말이다. 고환이 하나이든 두 개든, 너는 내 완벽한 아기라고. 어딘가 결함이 있는 아이가 아니라, 그냥 내 소중한 아기라고. 후회를 후회하는 못난 엄마는 오늘도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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