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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Dec 15. 2024

천국의 이름

세례: 씻는 예식 -1-

"세례명은 정했어요?"


수녀님은 어느 날 예비신자카드에 출석을 서명하며 저의 세례명을 물으셨습니다. 아직은 정한 세례명이 없던 때였고, 따로 고민을 하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천천히 생각해도 괜찮겠지 했는데, 세례명을 정하게 되자 한걸음 더 공동체에 다가선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세례식을 석 달쯤 앞두고 세례명을 정했습니다. 처음에는 제 생일과 축성일이 같은 성인의 이름으로 해야 하나 했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하셔서 다시 정한 이름은 '미카엘'입니다.


한동안은 스스로 불러봐도 저의 세례명이 아주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본당 앞마당에서 수녀님이 처음으로 '미카엘!'이라고 세례명으로 저를 불러 주신 다음부터 그 이름이 따스하고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미카엘은 왜 세례명을 미카엘로 했어요?"


본당 신부님께서 종합교리 시간에 물으셨습니다. 오래전 유학생 시절에, 영어 이름이 없던 제게 한 미국인 친구가 이미지에 잘 어울린다며 지어준 이름이 미셸(Michael)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세례명으로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미카엘로 정했습니다. 원래 썼던 이름이라 익숙하기도 했고, 악을 물리치고 선을 구한다는 의미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히브리어로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Quis ut Deus)?'의 뜻이라고 합니다. 위대한 천사의 이름을 제 천국의 이름으로 감히 청하며, 이렇게 답하고자 합니다.


'오직 겸손으로 믿고, 공경으로 따르겠습니다.'




세례를 받기까지 쉬운 과정은 아닐 거라고 했습니다. 매주 빠짐없이 교리수업과 교중미사에 참여해야 하고, 성경 필사 과제를 완수해야 하며, 성지순례에 참여하고, 신부님의 찰고*와 수녀님의 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래도 결심하게 된 계기를 떠올리자면 할 이야기가 많으나, 그 처음은 여름에 성당에 가서 수녀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권함에 따라 불 꺼진 성전에 잠시 머문 시간과 두 번의 미사를 끝으로, 두 계절 동안 성당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세례로써 다시 태어나기 위한 새 신자 과정에 등록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두 번의 계절이 지났습니다.


계절 바뀜을 바람으로부터 알듯, 시간이 갈수록 마음속에 불어오는 바람은 매서운 회초리 같기도, 또 은혜롭기도 했습니다. 그 바람은 성경 속 예수님의 모습이자 말씀이었습니다. 그 바람은 또한, 기도의 형태로 제 마음에 기쁘게 자리 잡은 훈기였습니다. 그렇게 계절의 바람이 바람(hope)으로 불어오자, 저는 세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여전히 자주 흔들린다. 여전히 미움에 힘들다. 그래도 불현듯 의 아픔은 의지의 기도로 돌볼 수 있으니, 참 다행이다.'


어느 날의 일기입니다. 그리고 오늘, 12월 15일에 저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찰고(察考): 사목자가 신자들의 교리지식을 확인하기 위해 시행하는 시험이다. 찰고(察考)의 대상자는 세례를 받으려는 예비신자와 판공성사를 받고자 하는 기존 신자들이다. (가톨릭신문)

**피정(避靜, retreat): 피세정념(避世靜念)의 줄임말로, 일상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묵상과 침묵기도를 하는 종교적 행위. (위키피디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신부님께서 성유로 목과 이마에 십자가를 새기고, 물을 이마에 부어 세례를 주셨습니다. 지난 시간들이 필름처럼 장면 장면 스쳐 지나갔습니다. 믿고자 했으나 큰 믿음 갖지 못했고, 치유받고자 했으나 그에 마땅한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약속의 날인 오늘, 좋아하는 성당의 성전에서 새로이 당신의 자녀로 받아주시고, 천국의 이름을 마음속 울림으로 불러주시니 벅찬 감동의 한때였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루카 3:22)


오늘의 일이지만, 세례의 모든 과정이 마치 기억하고 싶은 어느 아름다운 꿈결 같이 느껴지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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