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잡지 '나의 삶, 나의 신앙' (2025년 3월)
'계절, 바람의 바람'에 이어지는 글 입니다.
계절 바뀜을 우리는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이나 그 온도에서 알게 됩니다. 한 시기, 저의 영혼에 불어온 바람은 매서운 회초리 같기도, 또 은혜롭기도 했습니다. 그 바람은 성경 속 예수님의 모습이자 말씀이었습니다. 그 바람은 또한, 기도의 형태로 제 마음에 기쁘게 자리 잡은 훈기였습니다. 점점 거친 바람이 잦아들자, 저는 세례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여전히 자주 흔들린다. 여전히 종종 버겁다. 그래도 불현듯 닥치는 아픔은 의지의 기도로 돌볼 수 있으니, 참 다행이다.’ 그 어느 날의 일기입니다.
신부님께서는 세례명을 천국에서 불릴 이름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세례식을 두어 달쯤 앞두고 세례명을 정했습니다. 처음에는 축일이 제 생일과 같은 날인 성인의 이름으로 해야 하나 했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하셔서 다시 정한 이름은 ‘미카엘’입니다. 선을 구하고 악을 벌한다는 의미가 참 좋았습니다.
한동안은 스스로 불러 봐도 세례명이 아주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당 앞마당에서 수녀님께서 처음으로 “미카엘!”이라고 저를 불러 주신 다음부터 그 이름이 따뜻하고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히브리어로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틴어로는 Quis ut Deus?)의 뜻이라고 합니다. 위대한 천사의 이름을 천국의 제 이름으로 감히 청하며, 이렇게 답하고자 합니다. ‘오직 겸손으로 믿고, 공경으로 따르겠습니다.’
세례를 받기까지의 여정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처음 성경책을 샀고, 묵주 기도를 배웠습니다. 성경 필사는 말씀과 더 가까워지게 된 계기였습니다.
저는 마르코 복음서를 필사했습니다. 성경은 종이가 얇아서 쓰고 써도 줄지 않는 샘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경건하게 적다가, 나중에는 힘들다고 불평하며 바삐 적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시는 장면부터는 점점 이 서사의 흐름에 온 정신이 내맡겨지게 되었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는 장면에서는 화가 났고, 베드로가 예수님의 예언이 옳았음을 깨닫고 우는 장면에서는 저도 같이 울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저런 수모와 고통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두시는 시점까지 모든 절마다 가슴이 먹먹해 탄식했습니다. 필사를 마무리하며, 성경 속 많은 문장이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귀한 진리가 가득한 보물창고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례식 바로 전날 마지막 절차인 피정을 위해 성당으로 이동하며 하늘을 보는데, 세례 받기까지의 과정이 영사기를 거친 필름 속 장면처럼 지나갔습니다. 고뇌와 받아들임의 날들이자, 가슴 벅참에 눈물이 날 만큼 소중한 기억들이었습니다.
세례식 날, 성당은 이른 시간임에도 활기를 띠고 있었습니다. 봉사자님께서 제 옷에 꽃과 명찰을 달아 주시며 “옷 참 잘 어울리네요.” 하고 덕담을 해 주셨습니다. 얼떨떨했습니다. 많은 교우들이 축하의 눈빛과 정성의 손짓으로 우리를 반기는 듯해 진정 생일같이 느껴졌습니다.
성사 전 예행연습을 마치고, 화장실에 가서 옷매무새를 다시 한번 정돈했습니다. 거울 앞에서, 집을 떠나올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겉옷의 덜렁거리는 단추를 발견했습니다. ‘실오라기 다 풀어져 달랑달랑 매달린 단추는, 참 오래 견뎌 여기까지 왔다.’ 단추에게 필요한 견고한 매듭처럼, 더 굳건한 믿음이 제게는 필요하다는 진리가 옷자락 끝에 있었습니다.
미사가 시작되고, 신부님께서는 저희가 수녀님과의 피정 시간에 쓴 '하느님께 보내는 편지' 중 두 편을 읽어 주셨습니다. 그중 첫 번째는, 제가 쓴 편지였습니다.
“하느님께. 하느님, 저를 이곳으로 이끈 분, 하느님 맞지요? 그동안 그저 원만함에 기대 큰 노력이나 의미 없이 세상을 살았고, 자주 이기적인 말과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어떻게든 버텨 서면서도 기반이 무너지는 위태한 현실을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해 참회와 바람으로 이어진 편지를 신부님께서 정성껏 읽어 주시는데, 울컥했습니다. 하지만 눈물을 삼켰습니다. 제가 쓴 편지라는 것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신부님께서 성유로 목과 이마에 십자가를 새기고, 얼굴에 물을 부어 세례를 주셨습니다. 그 과정에서도 예비 신자로서 믿음을 향한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 같아 하느님께 참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약속의 날인 오늘, 탄천에서의 인연으로 만난 좋아하는 성당의 성전에서 너그러이 당신의 자녀로 저를 받아 주시고 천국에서의 새 이름을 마음속 울림으로 불러 주시니, 그분께 감사한 마음도 컸습니다.
세례식이 끝나고 빈 제대를 바라보는데, 왠지 그 주위가 더 환해지는 듯했습니다. 한 어린 양의 속죄와 새출발을 축하하는 하느님의 은혜로움인지, 아니면 그냥 착각인지 몰라도 분명 그렇게 느꼈습니다.
세례식과 미사가 모두 끝나고, 사진을 찍기 위해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새 신자 열넷 사이에 저는 섰습니다. 조촐히 대부님만을 초대했던 세례식이어서 제게는 꽃다발이 없었습니다.
앞의 카메라를 바라보다가, 문득 그 위의 창문을 통해 더 밝은 빛이 들어오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제야 제대가 일순간 밝아진 이유를 알았습니다. 구름이 지나며, 하늘에서 내린 빛은 수시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제게는 꽃이 없으니 품 안 가득 빛을 안을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의 편지에 대한 답을 빛으로 주시느라 꽃다발을 안기지 않으셨던 걸까요.
하느님의 자녀로서 다시 태어난 날은, 제 기억에 이토록 밝은 신비로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