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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

경향잡지 2025년 4월, '맺는 이야기, 1'

by 케니스트리 Mar 23. 2025

하느님을 알기 전부터 글을 썼습니다. 글의 단면과 쓴면을 모두 좋아했습니다. 글은 자의식의 발견이자 세상과의 만남이었습니다. 행복할 때보다 오히려 고통스러울 때 더 많이 글을 썼던 것 같습니다. 글에 기대고, 의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글쓰기는 대나무숲과 같아 본질을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내질러도 결국 돌아오는 메아리였고, 부질없는 독백과도 같았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면, 그것 또한 하느님의 뜻이었음을 깨닫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제 마음에 오랜 가뭄이 들게 하시어, 교회의 문턱을 넘는 순간 마치 메마른 땅이 단비를 머금듯 하셨습니다. 글을 좋아했던 저는 자연스럽게 이 속죄의 과정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글에는 아릿한 기억도, 아련한 행복도 담겼습니다. 보잘것없는 민낯을 온갖 수식어로 포장해 쓰는 것보다, 날것 그대로의 삶을 성경이라는 수면에 비추는 일이 더 편안했습니다. '카페 드 바이블'을 연재하며 처음으로 글에 온화한 표정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지금, 이 모든 일이 그분의 크신 은총임을 믿습니다.


더 나은 삶


"얼굴이 예전과 달라졌어요. 밝아졌다고 할까."


수녀님과 성당 카페에서 처음 대화를 나눈 지 벌써 1년 하고도 여러 달이 흘렀지만, 저 역시 그날을 선명히 기억합니다. 제 겉모습은 평범했을지 몰라도, 내면은 닳고 해진 상태였습니다. 수녀님은 제게 '매일미사' 소책자 한 권을 건네시며 주일 미사에 와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나눴던 수녀님과의 대화는, 지쳐 더는 나아가기 힘든 오르막길에서 누군가 살짝 등을 밀어주는 것처럼 큰 힘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분위기를 이루는 빛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전합니다.


 "네 눈은 네 몸의 등불이다. 네 눈이 맑을 때에는 온몸도 환하고, 성하지 못할 때에는 몸도 어둡다." (루카 11,34)


수녀님께서는 그날 저의 어두운 기색을 알아보셨고, 지금은 제 눈빛에서 생기를 느끼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신앙이 제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고 믿습니다. 변화의 중심에 성경이 있었습니다. 여러 기회에 접한 성경 구절에 마음이 이끌렸고, 그 의미를 일상에서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특히 인간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이 빚어내는 고통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든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가지도 못한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마태 6,19-21)


우리가 가진 것들 중 세상으로부터 잠시 빌리지 않은 것이 없는데, 그 감사함을 잊고 영원히 소유하려 드니 상실의 고통이 끊임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아가, 세속의 욕심은 단순히 물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큰 기대는 큰 실망을 낳고, 실망은 미움이라는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조심해도 문득 나쁜 마음이 고개를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첫 고해성사를 준비하며 저는 틈틈이 제 민낯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지혜롭지 못한 선택들, 나태했던 일상, 함부로 했던 오해들까지—반성할 죄를 발견하면서 자연스럽게 ‘옳은 생각과 바른생활’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그렇게 제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었습니다. 성모님을 알게 되면서 가족이 더욱 소중해졌고, 성경 속 비유를 통해 삶의 지혜를 배웠습니다. 신부님의 강론과 기도문을 통해 용서의 가치를 깨달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책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참된 사랑’에 대해 묵상할 수 있음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첫 고해가 있던 날, 교리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책 뒷면에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내게 아르스로 가는 길을 알려주렴. 그럼 나는 너에게 천국 가는 길을 알려줄게.'


비안네 신부님이 새 부임지인 아르스로 향하던 길에, 우연히 만난 소년에게 건넨 말씀으로 전해집니다. 길을 잃고 헤매던 신부님께 소년은 선물이었고, 소년에게 신부님은 축복이었습니다.


하지만 길을 잃고 성당에 들어선 저는 축복을 받기만 했습니다. 이제는 저도 교회에 작게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수녀님과 상의하여 성당의 카페 ‘노트르담’에서 봉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카페는 제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저의 신앙이 이곳에서 시작되었고, 늘 밝고 따뜻한 분위기가 좋아 즐겨 찾던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곳에서 봉사를 시작하게 되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시작한 이 작은 실천이, 언젠가는 세상의 소외된 이들에게 닿는 손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사진: UnsplashGuillaume Galt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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