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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바람의 바람

경향잡지 '나의 삶, 나의 신앙' (2025년 2월)

by 케니스트리 Mar 17. 2025

'탄천의 등대'에 이어지는 글 입니다.




반년 전만 해도 저의 ‘일요일’ 아침 풍경은 이랬습니다. 쓸데없이 일찍 깼지만 일어나기 싫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몸을 일으키지 못하다가, 부스스한 머리로 겨우 일어나 씻고 편한 복장으로 카페로 향했습니다. 무기력한 휴일이라도 글은 써야 했기 때문입니다. 주로 적는 글은 제가 하는 일이 속한 분야나 제 삶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초보이자 취미 작가로서 수필을 쓰는 일은 나름대로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날이 좋을 때는 자전거를 타거나 가까운 산에 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작(著作)이든 운동이든 하며, 어쨌든 주말을 그리 게으르게 보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비 신자가 되면서부터는 주일에 일찍 일어나 씻고 머리를 빗어 단정히 합니다. 옷은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은 것으로 신경 써서 골라 입습니다. 교중 미사에 가기 위해 나름대로 정성을 들이는 과정입니다. 예비 신자로 수개월을 보내며, 요즘엔 외모보다는 내면을 단정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실천은 미숙하지만, 여러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의미


예비 신자 과정이 한창인 가을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맑은 하늘을 보며 성당으로 향하는 길에, 문득 ‘기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교리 시간에 봉사자님이 시켜서 했던 어색한 첫 기도와, 괴로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나왔던 기도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메모장에 그에 대해 글을 적었습니다.


‘예전에는 기도의 의미를 잘 몰랐다. 여전히 그 본의를 잘 안다고 할 수 없다. 그래도 최근에 나 스스로보다 타인을 위한 기도를 주로 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나 또한 마음이 돌보아지는 느낌이다.’


그 글을 쓴 날, 교리 시간에 때마침 기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방법이나 이유는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몇 줄 글로 분명한 설명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저는 기도를 불교문화로 처음 접했습니다. 불교 재단 대학교를 다녔고, 집안도 불교와 더 가까웠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에도, 저는 할머니께서 알 수 없는 말들로 가득한 경전을 펼치고 엄지로 염주를 굴리며 기도하시던 장면을 기억합니다. 할머니께서는 집안 대소사가 있을 때 100일 기도를 하셨고, 그 아픈 무릎에도 가족의 평안을 위해 언덕 위 절에 올라 108배 치성을 드리시곤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자녀의 수능일은 물론, 젊은 주제에 큰 병치레까지 하게 된 못난 아들을 위해 새벽 기도를 하러 절에 다니셨습니다. 하느님을 알기 전에, 기도를 말하자면 연상되던 감사와 은혜의 장면들입니다. 


간절한 기도


교리 시간에는 기도를 간절함, 정성, 그리고 ‘대화’라고 배웠습니다. 기도는 주님과 내가 소통하는 일종의 대화이고, 간절한 마음의 정성스러운 표현이고,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내면 성찰의 과정이라고 합니다. 기도에 대한 공부를 마무리하며, 봉사자님이 ‘간절한 기도의 경험’을 물었습니다. 저는 최근 종종 하는 기도를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요즘 미워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를 주로 해요. 누군가에 대한 미움이 너무 괴로워서, 더는 미워하지 않고 그이도 저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십사 하고요.” 그러자 봉사자님은 “아주 중요한 기도를 하고 있다.”며 공감해 주었습니다.


어느 날 밤, 너무 마음이 번잡하고 도저히 끊을 수 없는 불쾌한 생각이 이어져 저도 모르게 성호경을 긋고 두 손을 맞잡고 눈을 감았습니다. 정말 자연스럽게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폭풍에, 잠시 몸을 피해 숨을 곳을 찾아 들어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마음에 미움보다는 그이가 평화롭기를 바라는 마음을 심어 주시고, 이해와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소서.’


괴로움을 피해 들어간 의식의 공간에 두려움의 실체가 있었습니다. 기도는 부정함을 똑바로 마주하게 하였습니다. 하느님이라는 믿을 구석이 있으니 당당해진 걸까요? 미운 마음을 마주하며, 저도 그이도 평화롭기를 바라는 기도를 한동안 이어 갔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서도 두 손을 놓지 않고 눈을 감고, 잠시 그 여운에 휩싸인 채 머물렀습니다. 눈을 뜨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짐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기도는 제 삶에 들어왔습니다.


여전히 불쑥불쑥 미운 마음이나 분노의 감정이 고개를 듭니다. 그건 의식적으로 피할 수 없어도, 기도는 의지대로 할 수 있으니 이전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기도를 알고 나서 감사하게도, 매일매일 조금씩 치유되는 느낌입니다. 


그분을 부르는 삶


기도를 알게 된 날 성당을 나서는데, 성전 입구 오른편에 적힌 기도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 성 프란치스코, ‘평화를 구하는 기도’ 중에서 


처음 성당을 찾았던 날이 떠오릅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주말에는 대체로 청명한 가을 날씨였습니다. 바람이 적당히 불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해져 어느 정도 거리는 걷기도 좋은 계절이었습니다. 탄천 수변길을 지나며 자주 보아 익숙해졌던 ‘빨간 벽돌로 지어진 예쁜 성당’에 용기 내어 들어간 날은 예비 신자로서 교리 공부와 미사에 참여하게 된 소중한 인연의 날이었습니다. 무언가 큰 것을 바라고 들어선 문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낮밤으로 그분을 부르는 삶이 되었습니다.


기도는 그렇게 가을바람과 함께 바람(hope)으로, 저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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