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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꿈꾼 세상

한국 가톨릭의 시작 - 영화 <탄생> 이야기

by 케니스트리

몰아치는 기세가 좋았습니다. 오고 가며 일정한 시간차로 크고 작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바다의 태동은 활력이었습니다. 파도는 오감으로 느낄 때만 좋다고 생각 했습니다. 거친 물살을 몸으로 견디어낼 자신도 용기도 제게는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적당히 떨어져서 바라볼 때 편안한 바다의 파도. 안타깝게도, 바다는 곁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산을 오르고 길을 달렸는지도 모릅니다. 거세게 내쉬는 숨이 어떨 때는 내면의 파도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들고 나고, 거칠다가도 잠잠해지는—심장이 이때다 싶어 제 존재를 격하게 드러내는 몸부림같았습니다. 달리기는, 집착을 내려놓는 과정이었습니다.


액션, 스릴러, 호러, 오컬트, 복수 장르의 영화가 주는 기복 심한 희열이 내면의 인공폭포와 같다면, 오래도록 긴 여운이 남는 영화의 전개는 마치 자연의 파도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부서지는 파열음마저도 거슬리지 않고, 그렇다고 지루하지 않은 파도의 들고 낢. 오늘은 그에 관한 한 영화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거의 재해에 가까운 자연의 다양한 모습과, 그 시련을 극복하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한 한 남자의 이야기. 이는 수상 액션 영화가 아닌, 우리 역사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탄생> 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극중에 시도 때도 없이 파도를 넘고 황야를 달리며 산을 오릅니다.


이 영화에는 눈물을 참기 힘들었던 장면이 여럿 있었습니다. 한 부인이 기해박해 때 스스로 투옥되어 순교 직전에 대세(비상시 사제가 아닌 인물이 주는 세례)를 받고 울면서 행복해하는 장면, 엥베르 주교가 옥사로 직접 찾아가 자수하며 스스로를 희생하는 장면, 가공의 인물 즈린의 세례 장면 등이 특히 그랬습니다.


극 초반, 마부가 청년 김대건에게 “네가 신부가 되면 너에게 고해를 하고 싶다. 내가 지은 죄가 많거든”이라고 말하는 장면부터, 저는 이미 영광스러운 서사의 숲 속으로 함께 이끌려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부름이 시작이 된다 해도, 그 길을 걷는 것은 결국 자신의 선택입니다. 박홍식 감독의 영화 탄생 (2022)은 김대건 신부의 삶을 조명하며, 신의 초대에 응답하며 걸어간 그의 여정을 이야기합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개척자의 서사가 아닙니다. 신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 길을 자신의 의지로 걸어간 한 청년의 선택과 헌신을 담고 있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일대기는 곧 조선 천주교회사 그 자체입니다.

※스포일러 주의.


신의 부름, 선택받은 길


김대건 신부가 천주교 신앙을 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신앙을 가진 부모 아래에서 태어났으며, 신앙을 위해 헌신했던 많은 이들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당시 천주교인들은 유교 사상이 깊이 뿌리내린 사회에서, 언제 바람에 날려갈지 모를 위태로운 잔가지 아래 핀 들꽃과도 같았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굳게 신앙을 지켜가던 천주교인 부모에게서 나고 자란 청년 김대건은, 자신이 선택받았으나 강요된 것이 아니라는 아버지의 말에 이렇게 답합니다.


“성령이 하신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제 가슴이 뜨겁습니다.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되고 싶습니다.”


장 베르뇌 주교는 김대건 신부와 두 명의 청년 신자를 마카오로 보내 신학을 공부하게 했습니다. 그들이 조선을 떠나 머나먼 마카오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낯선 언어와 문화, 그리고 어려운 신학 수업 속에서 그들은 자신이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스스로 묻고 답해야 했습니다. 청년 김대건이 부제를 거쳐 사제가 되어 조선으로 돌아왔을 때, 상황은 더욱 가혹해져 있었습니다.



신앙을 전하는 것은 단순한 사명이 아니라 생사를 건 여정이었습니다. 거센 파도를 헤쳐 나가는 해상, 혹독한 북방의 추위, 자비 없는 황야의 척박한 환경으로 표현된 영화의 배경은 그 길이 얼마나 험난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무력한 왕 앞에서 강한 어조로 거세게 항의하는 신하들의 모습은, 개혁의 바람에 대한 기득권층의 발작과도 같은 저항 그 자체였습니다.


조선의 외교와 정치 상황으로 인해 천주교 신자들은 강도 높은 박해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는 조선 땅을 밟은 지 오래되지 않아 충청도 강경에서 체포되었습니다. 영화가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지만, 여러 기록에 따르면 그는 혹독한 고문과 고초를 겪었습니다. 옥중에서도 신자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기며 끝까지 믿음을 지킬 것을 당부했습니다.


영화는 그의 희생을 단순히 영웅적으로 미화하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조용하면서도 단단하게 믿음을 지켜낸 그의 모습을 조명합니다. 그가 지키고자 한 가치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답은 영화 초반, 천민 출신 마부의 말에서 나옵니다. 청년 김대건이 마카오로 가기 위해 육로로 먼 길을 떠날 때, 함께 걷던 마부 조신철(이문식 분)에게 묻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왜 아저씨는 늘 웃고 계세요?”


그는 이렇게 답합니다.


“글쎄다. 천당에 살고 있으니 늘 웃을 수밖에.”


현실에 집착하지 않고 평등한 세상을 살아가며, 죽음 뒤 영생을 기다리기에 ‘이곳이 곧 천국’이라 말합니다. 그것이 김대건 신부가 꿈꾼 세상이었습니다.


열린 결말


모두 영화의 결말을 궁금해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그 결말을 미리 알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이야기가 전개되고,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만들어 가는 과정을 함께하며 그 흐름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영화 속 이야기에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이 영화의 결말을 알지 못합니다. 영화의 시작은 조선 천주교 역사의 시작이며, 주인공의 죽음은 이 땅에 영화롭게 피어날 신앙의 토대이기 때문입니다. 영생을 믿으며 살아가는 선한 목자들이 만들어 갈 우리의 교회, 우리의 미래가 바로 이 영화의 열린 결말입니다.


“길은, 걸어가면 뒤에 생기는 것입니다.”


없던 길, 힘든 여정을 앞두고 김대건 신부가 남긴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신앙을 둘러싼 갈등과 분열을 목격합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믿는 것이 옳고, 다른 것은 틀렸다며 경계를 긋고 편을 가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은, 더 강한 믿음을 가지고도 세례를 받을 수도 없고, 고해성사를 올릴 수도 없던 시대입니다.


김대건 신부와 동료 순교자들이 꿈꾸던 세상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선한 믿음이 함께하는 천국이자, 사랑과 화합의 땅이었습니다. 그들이 원한 것은 신앙을 이어갈 작은 공간과 한 뼘 크기의 성경책이었습니다. 기득권 체제의 붕괴가 아니라, 진실한 고해로 반성하고 감사하는 선한 삶이었습니다.


박해의 고난도, 죽음의 위협도 없는 지금, 나는 과연 그들이 꿈꾸던 믿음이 가득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희생으로 믿음의 터전을 일군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는 ‘피의 사제’로, 전국을 돌며 복음을 전하다 과로로 생을 마감한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는 ‘땀의 사제’로 불립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박해로 희생된 순교자 103명을 성인으로 시성했으며, 2014년 교황 프란치스코가 방한했을 때 124명의 순교자를 복자로 시복하였습니다. 이를 모두 합하면 227명으로, 알려진 가장 많은 수의 성인과 복자가 한국 가톨릭에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는 자생적으로 나고 발전한 유일한 가톨릭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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