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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천의 등대

경향잡지 '나의 삶, 나의 신앙' (2025년 1월)

by 케니스트리

뜻깊은 인연으로, 제 첫 신앙 에세이 카페드바이블을 갈무리해 한국천주교주교회의(CBCK)가 발행하는 <경향잡지> 칼럼 '나의 삶, 나의 신앙'에 총 네 편의 글을 연재했습니다. CBCK의 배려로 칼럼을 브런치스토리 독자 여러분과도 나눕니다.




한강에서 해가 뜨는 방향으로 지류인 탄천이 있습니다. 날이 좋으면 파란 하늘 아래 버드나무 가지들이 살랑살랑 손짓하며 반기고, 해 질 녘엔 물에 보석을 흩뿌려 놓은 듯 윤슬이 오묘한 멋을 자아내는 탄천의 분위기를 저는 참 좋아합니다. 매력적인 그 천변 길을 저는 주로 자전거로 달립니다. 제게 탄천은 언제나 여행의 시작에, 혹은 끝에 만나는 작은 보상이었습니다.


탄천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늘 선명히 보이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예스러운 성당의 첨탑 위 십자가는, 주변의 나무가 푸른빛이든 붉은빛이든, 가지가 앙상하든 눈꽃이 피었든, 언제나 잘 보입니다. 그러니 그 십자가는 마치 제게 ‘집으로 잘 가고 있어.’라고 이야기하는 등대와도 같았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살다 보면 여러 우연이 이어져 인연이 되는 신비를 경험하곤 합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가을 초입의 어느 날, 영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길을 걷다가 어느새 정신을 차려 보니 낯선 골목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길을 찾으려는 노력은 딱히 하지 않았습니다. 탄천을 따라 남쪽으로 걷다 보면 집에 닿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방향만 보고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길 끝에서 한 성당을 만났습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곳. 그런데 이날 성당은 길을 잃은 저의 걸음을 멈춰 세웠습니다.


왠지 늘 제게 등대가 되어 주었던 그 성당인 것 같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올려다보니, 첨탑에는 또렷하게 ‘석촌동성당’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 성당이구나.’ 싶었습니다. 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삶이 괜찮을 때도 불행할 때도, 옳은 길에서도 잃어버린 골목에서도 늘 방향을 알려 준 십자가가 있던 그 성당 안으로.


성모상이 보였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고개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성당의 앞마당은, 불과 몇 발짝이면 가로지를 수 있는 작은 크기였습니다. 건물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자 카페로 보이는 공간 안쪽에 수녀님이 누군가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입구 오른편에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석촌동성당


“어떻게 오셨어요?”


“네, 그냥 한번 들렀는데, 성전에 들어가 볼 수 있나요?”


“네, 2층으로 올라가시면 돼요. 혹시 수녀님과 이야기도 나눠 보시겠어요? 성전에 조금만 계시면 제가 말씀드릴게요.”


알겠다고 하고선 2층으로 올라가 육중하고 큰 문을 조심스럽게 밀어 열었습니다. 성전은 넓고, 천장이 높았습니다. 성당 안의 빛은 스테인드글라스가 만든 편안한 자연광이 전부였습니다. 떠들썩한 관광지에서 들러 본 유명한 성당과는 사뭇 다른,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보이는 가장 끝에서 세 줄 앞에 앉았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십자가로 눈이 향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떨궜습니다. 눈을 감지 않아도 감은 듯, 눕지 않아도 누운 듯 나른한 상태로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맞잡아 보았습니다. 하지만 기도가 잘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지나가다가 멋대로 들어와서는, 한 번도 불러 본 적 없는 그분께 무엇을 고백하거나 부탁하기에는 염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저 속으로 중얼중얼 그리운 이에게 마음을 전하고, 방황하는 스스로에게도 말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곧 그마저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적막 속에서, 마음의 복잡한 소리는 저 멀리 아득해지는 듯했고, 길을 잃고 헤매던 게 옛일처럼 느껴졌습니다.


30분쯤 지났을까, 생각보다 오래 머문 듯하여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자 사무실 직원분이 마침 상담을 마치고 오신 수녀님께 저를 소개했습니다. 수녀님은 환한 미소로 반기며 조금 전 다른 분과 이야기를 나누시던 자리로 저를 안내하시고는 제게 성당에 어떻게 오게 됐냐고 물으셨습니다.


“근처에 사는데 평소 와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오늘 마침 여길 지나다가 들어와 보게 됐고요.” 길을 잃었고, 그 길 끝에 성당이 있었을 뿐이라고 차마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수녀님은 보통 젊은 사람이 스스로 성당에 찾아오는 일이 드물다고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인자한 미소와 칭찬하듯 좋은 말씀을 계속 건네시는 모습이, 꼭 저의 초등학교 시절 은사님 같았습니다.


“주말 미사에 꼭 와 봐요. 그리고 좋으면 계속 오면 되는 거지 뭐.” 저는 수녀님의 말씀을 듣고 용기를 내 그 주의 교중 미사에 갔습니다. 신부님이 미사를 진행하시는 동안, 절차도, 기도의 의미도, 노래 가사도 모르고 그저 남들이 고개 숙일 때 숙이고, 손을 모을 때 모으고, 일어설 때 일어서며 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잡생각이 가끔 방해해도, 미사의 분위기는 대체로 편안했습니다. 이후에도 교중 미사에 두어 번을 더 갔습니다. 그러나 그 뒤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성당에 다시 발걸음을 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꽃


바쁘고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무의미한 것들에 정신이 팔려 세월을 허송했던 것 같습니다. 관계들을 단절하며 외롭다 느끼고, 사랑을 밀어내며 혼자를 자처하고 후회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했습니다. 그렇다고 스스로 굳건히 서거나, 단단히 성장하지도 못했습니다. 점점 먼지만 쌓인 채 시들어 가는 잡풀처럼 지내다가 나이만 한 살 더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성당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대로 성당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예비 신자 과정을 물었습니다. 성당에 다시 간다면 미사도, 기도도, 이 모든 과정의 의미도 제대로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성당에서는 마침 돌아오는 주에 교리반이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늦봄 어느 날, 저는 석촌동성당의 예비 신자가 되었습니다.


탄천 변에서 늘 보던 십자가가 결정적인 동기는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분명히 제 마음에 씨앗 하나를 심었습니다. 그 씨앗은 건조해져 가는 마음의 땅에 머물다가, 그 땅이 상실의 눈물로 젖을 때를 기다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렇게 피어날 꽃은, 이왕이면 석촌동성당의 가을 국화처럼, 예쁘고 거룩하게 피어날 믿음의 꽃이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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