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마케팅 나무 - ep.3
명화는 인사팀장님이 소통도 잘 되고, 생각도 유연하다고 했다. 간혹, '월요일에 힘들어 보이네, 주말의 명화라서 그런가?' 같은, 나이답지 않은 이상한 우스갯소리를 한다는 것만 제외하면, 너무도 괜찮은 리더라고. 아무튼 오가며 인사할 때도 늘 잘 받아주고, 간접적으로 들어 알고 있던 사람됨이 좋아서인지 그의 만남 요청은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조금 더 컸다.
만난 곳은 회사 옆 건물의 프랜차이즈 커피숍이었다. 보통 방문할 때는 늘 복작이는 모습이었지만, 한창 바쁠 시간을 지나서인지 한산했다.
“매니저님, 커피 뭐 드시겠어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말하고, 결제하려고 카드를 꺼내자 팀장님은 웃으며 말했다.
“이거 조직원과의 면담이에요. 저희 팀에서 사드리는 거니까 부담 갖지 않으셔도 돼요. 저쪽 자리 맡아 뒀어요.” 하며, 노트와 볼펜이 놓인 창 쪽 자리를 가리켰다.
나는 노트가 놓인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마치, 면접을 보듯 긴장된 상태가 되었다. 괜히 핸드폰 화면을 열었다가 잠갔다가,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다가 팀장님을 보니, 음료 픽업대 앞에 서서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 그리고 커피가 나오자 전동벨을 직원에게 건네고 직접 받아 자리로 왔다.
‘나를 배려한 거구나.’
팀장님의 사소하지만 몸에 밴 듯한 따뜻한 배려로 우리는 커피를 앞에 두고 차분하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갑자기 보자고 해서 놀라셨죠?"
웃으며 말을 건네는 팀장님. 그의 위로 섞인 대화의 시작이 따뜻했다.
"경영지원 본부장님과 이야기를 나눴어요. 매니저님, 많이 힘드셨겠어요.”
“들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사실 본부장님을 찾아가는 게 맞나 싶기도 했고, 그땐 감정이 좀 앞서서… 저는 최대한 우리 조직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데,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찾아가 상의를 드렸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듣는 인사팀장에게서 본부장님과의 대화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분위기가 풍겼다. 공감의 편안함. 그는 종종 빨대로 얼음을 휘저었다. 그리고, 내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본부장님께서 매니저님을 좋게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관계가 어려워서 문제를 일으키는, 그런 사람 같지는 않다고요. 사실 여러 가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셨어요.”
'본부장님이 오해하지 않아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다' 새삼 본부장님이 무척 고맙게 느껴졌고, 긴장을 조금 놓을 수 있었다.
“…한 가지 궁금한 건, 매니저님은 지금 하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세요? 예전 회사에서도 비슷한 일을 하셨던 거죠?”
예전 회사. 예전에 일한 회사는 한 스타트업이었다. 조직이 젊고, 모두 의욕에 넘쳐 보였다. 사업 자체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배운 점이 무척 많았던, 그런 시간이었다.
“예전 회사에서도 같은 직무였어요. 그때 체계는 좀 부족했어도 협업은 괜찮은 편이었고, 의견을 자주 내는 문화였어요. 팀이 모여 논의하고 시행하고, 조정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가는 일이 자주 있었어요. 일 자체는 더 다양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때 일하던 환경이 좋았어요.
지금 팀은 그런 분위기랑은 좀 달랐어요. 팀도 조용하고, 의견을 내는 분들이 별로 없고요. 제가 연차도 얼마 안 되면서 우리 하는 일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 제기를 해서, 괜히 미움을 사지 않았나 싶어요. 경영지원이라는 업무의 문제라기보다는, 저 자신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팀장님은 흥미롭다는 듯 자세를 바꾸며 물었다.
“매니저님이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일하려는 과정에서 팀장님과 갈등이 생겼다, 그렇게 이해해도 괜찮을까요?”
“네, 그런 것 같아요.”
팀장님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을 이어갔다.
“어느 조직이나 팀원과 리더 간에 갈등은 종종 있어요. 그걸 자체적으로 잘 풀어가며 더 나은 관계가 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침묵하며 각자 그 상황에 적응하는 일종의 암묵적 분리가 있기도 해요. 안타까운 건, 회사와 삶을 분리하는 게 요즘 유행이듯이 관계의 분리를 택하는 분위기라는 거죠. 직원들은 점점 조직을 멀게 생각하고, 작은 기회에도 미련 없이 떠나거든요.”
언젠가 명화로부터, 채용 후 근속기간이 갈수록 짧아지고, 1년 이내 퇴사 비율이 늘고 있어 인사팀장님의 고민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요즘 트렌드이기도 하다고 해요. 직원들은 여러 이유로 퇴사하는데, 연봉이나 조직문화 같은 것들이 주된 원인이거든요. 제가 조금 더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이 있어요. 뭔지 알아요?”
인사팀장님은 마치 지난 주말에 겪었던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하듯 말을 이어갔다.
“바로 상사나 동료와의 갈등이에요. 통계는 30-40% 정도가 이 이유 때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많은 퇴사자들이 그들의 진짜 퇴사 이유를 숨기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저는 갈등이 퇴사 비중으로 가장 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긴, 어느 유튜브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근속기간이 짧은 회사의 특징으로, 나쁜 조직문화와 직장 상사와의 갈등, 그리고 그걸 해결할 만한 마땅한 소통 창구가 없음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제가 이 회사에 오고 나서도 소통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가 보였어요. 조금씩 그걸 해결하려 했고, 본부장님도 문제의식을 갖고 계셔서 여러 번 논의를 했는데, 마침 미지 매니저님이 본부장님과 이 일로 면담을 하신 거고요.”
“아…”
하긴, 본부장님께서는 “찾아와 줘서 고맙다”라고 하셨다.
“들으니까 매니저님은 그래도 팀장님과 대화를 시도했다던데, 그건 잘하신 거예요. 대화는 개인이 관계 개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죠. 결과야 어떻든, 잘하셨어요.”
나의 마음씀을 본부장님은 이해해 주셨고, 인사팀장님 또한 그렇다는 걸 알게 되니 왠지 일이 잘 풀릴 것 같다는 생각에 안심이 됐다. 팀장님은 본론을 말하려는 듯, 자세를 바꾸었다.
“제가 매니저님께 지금 하는 일에 대해 물은 건, 사실…” 잠시 말을 멈췄다가, 눈을 맞추며 말을 이어가는 팀장님.
“다른 팀에서 한번 일해보는 건 어때요?”
전배라는 말은, 느껴지기에 그 자체로 회사 생활의 굴곡 같은 느낌이다. 친한 선배는 다른 팀에 발령되며 “전배는 좌천의 다른 말”이라며 울상을 지었었다.
“아…” 하며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팀장님이 곧이어 말했다.
“전배가 꼭 나쁜 건 아니에요. 회사에서 전략적으로 인력 재배치를 하기도 하죠.”
전배는 누군가에겐 기회일 수도, 누군가에겐 낙인이 될 수도 있다고 들었다. ‘문제성 사원’이라는 선입견만 없다면, 나름대로 새로운 시작으로 좋은 결론일 것이다. 나는, 어떨까?
“그런데 팀장님, 다른 팀이라면 어느 팀 말씀이세요?”
가장 궁금한 것을 묻자, 팀장님은 의자를 살짝 당겨 앉으며 말했다.
“마케팅팀이요. 이번에 새로 생기는 팀이에요.”
오늘 대화의 분위기는 편했고, 주제는 무거웠지만 방금 들은 이 단어는 사뭇 신선했다. 마케팅? 예상 밖이었다.
놀라움 뒤엔, 묘한 떨림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