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인터뷰 캠프 2일 차

by 해리안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배운 양자역학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동안 배워왔던 금속 역학이나 세라믹 공학과는 다른 새로운 세계였고 재미있었다. 그 계기로 대학원에 진학하였고 5년을 더 공부하고 재료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반복적인 일을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진로 고민이 많았던 시절이었고, 끊임없이 새로운 공부를 해야 하는 '연구자'가 적성에 제법 맞아 보였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지금 회사에 입사한 것이 벌써 18년 전이다. 그 사이 연구 테마도 많이 바뀌었고, 조직도 바뀌었지만, 내가 하는 일은 비슷하다. 고객과 개발할 제품을 정하고, 그에 따라 필요한 성능 개선 항목을 설정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구현하기 위한 실험을 한다. 결과가 나오면 이를 해석하고, 다음 실험을 위한 진행 방향을 고민한다. 양산 적용까지 성공시켜 10년간 50조 원의 매출을 올린 프로젝트도 있었고, 지금처럼 5년째 20억 넘는 비용만 발생시키며 결과를 못 내는 프로젝트도 있었지만, 모든 일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연구'라는 점인 것 같다. 다행히도 난 여전히 이 일을 좋아하고, 17년간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연구를 제외한다면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배운 게 이것밖에 없으니 아쉽게도 다른 일에는 젬병이다. 창의성이 부족하니 아이디어 발굴을 해야 하는 쪽은 맞지 않는다. MBTI가 극 I형이니 영업과도 거리가 멀다. 이 나이 먹도록 데이터 시트를 받아 들면 해석하는 재미에 야근을 불사하고, 깔끔한 보고서를 만들어 내면 희열을 느끼니, 연구 말고는 쓸 곳이 없다. 두루두루 여러 가지 분야에서 능력을 보이는 인재상이라기보다는, 한 분야에서 깊게 구멍을 파는 타입인 셈이다. 이런 타입의 사람들은 범용성이 낮다는 약점이 있다. 내가 파고 있는 구멍이 올바른 방향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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