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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호 May 12. 2021

XXVIII

바위에서 코끼리 찾기



    1.

     눈을 감아보세요.

     자, 앞으로 다신 눈을 뜨지 못한 채 사는 겁니다. 다시는. 시각을 제외한 것들로 살아보기로 하죠. 자 앞에 있는 물건을 무엇이든 만져 보세요. 펜이든 책이든 책상이든. 나름대로 이제 남아있는 감각들로 말이죠. 불안한 기분이 들죠? 완전히 갇혀버렸단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더는 아무것도 인식할 수 없게 된 것 같은 그 기분. 완전히 내 안에 갇혀버린 그 기분.

     그 기분을 느끼면서 조금 더 세계를 이해하려고 해 보세요. 조금 더. 조금 더.

     눈을 떠보세요.

     답답함이 해소되었을까요? 다시 생각해봅시다. 만일 지금 역시 불완전한 상태라면 어떨까요. 아무래도 완전해졌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게 착각이라면. 여섯 번째 감각을 잃은 채 오감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거라면. 무엇을 보더라도, 영원히 보지 못한 채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거라면? 굳이 여섯 번째 감각을 가져오지 않아도 우리의 오감은 아주 서툽니다. 우리는 모든 걸 이해하고 있다기보단 오해하고 있지요. 우리는 이것을 볼 수 있지만, 어쩌면 볼 수 없는 겁니다. 나름대로 사물을 인식한다지만, 사물 자체를 인식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앞에 사물은 분명히 존재하고 우리는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있습니다만. 하지만 우리는......

     철학 개론 강의에서 교수님이 했던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기억한다. 분명 그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음에도 내 안에는 무언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막연한 단절감. 돌연 세상과 단절되어버린 채 지독한 고립감이 나를 휘감았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평생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살고 있다. 누구도 나를 보지 못하고, 나 역시 무엇도 보지 못한다. 나름대로 가진 것들로 느끼고 말하고 살아보겠지만, 나와 세계 사이엔 온전히 연결될 수 없는 필연적 단절이 존재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물론, 여태까지도 나는 누구와도 온전히 대화한 적이 없었다. 아무리 외쳐봤자 그는 듣지 못하고, 나는 말하지 못한다. 세계와 내 사이엔 불투명한 막이 가려져 있는 것이다. 오감이라는 막.

     거대한 어둠에 빠져 점차 교수님의 말이 아득하게 들렸다.      



    2.

     대충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사람을 대하는 건 세상에서 가장 쉽다. 솔직히 말하자면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마음의 문제보단 기술의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들이 대충 내가 마주한 사람들과는 반대다. 보통 그들은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고 토로한다. 그래서인지 솔직히 나와 유독 잘 맞는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서로가 마음이 통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그들과 정반대로 생각한다.

     한 번은 아침부터 좀처럼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날이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기분이 안 좋았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나는 그걸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가 기분이 나쁜 건지 어떤 건지 이제 와 돌이켜보니 그랬던 것 같을 뿐이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어쩌면 전날부터 안 좋았을 수도 있고, 그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울컥했을 수도 있다. 하늘은 망망대해처럼 맑았다. 티끌 하나 없는 게 괜히 말없이 걷는 이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오늘 참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분명한 건 미소 지으며 꺼낸 그의 새살스러운 말에 일순간 그야말로 짜증이 다락같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진호 씨랑 있으면 시간이 금방 가요, 하고 그는 말한다. 나는 끝 간 데 없이 짜증이 났다. 도대체 왜? 나는 모른다.

     다시 생각해봐도 그가 실언한 것도 아니었고 그날은 날이 참 좋았다. 하지만 나는 짜증이 났다, 뭘 안다고 진짜.


     때로는 생각한다. 사람들은 너무나 과격하게 착각하고 있다고. 그들처럼 남에게 무언가 바라는 건 바위에서 코끼리를 찾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바위를 보고 코끼리인 줄 착각하는 건 바위 잘못인가 우리 잘못인가. 그리고 그 착각으로 인한 상처는 바위에 새겨지는가 우리 마음에 새겨지는가.

     결국은 어리석은 것도 우리고,  짓는  역시 우리며,  받는 것마저 우리다.



    3.

     하지만 단 하나의 사물에 관해서는 우리는 연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이 역시 지금은 단절된 상태죠. 사실 바로 그 순간 그것을 인식한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우리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습니다. 오직 지난 모습만을 되새겨볼 뿐입니다. 뭐 이런 건 나중 이야기고, 어쨌든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하나의 사물을 인식함으로써 어떤 진실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죠.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인식함으로써 사물의 본질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그게 유일한 방법이죠. 나를 미루어 남에게 미치는 것. 공자도 한 말이죠? 능근취비(能近取譬)였나, 어쨌든 쇼펜하우어는 나라는 물자체로......

     교수님의 말은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칸트를 이야기하더니 돌연 공자를 이야기하고 다시 쇼펜하우어를 이야기하고, 농담 같기도 하고 진담 같기도 한 그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다시 그의 목소리가 아득해진다. 그의 경쾌한 목소리는 외마디 비명소리처럼 들린다. 사람 목소리 같기도 하고, 동물 소리 같기도 하다. 울음소리일까. 웅성거리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니 이건 동물 소리다.

     눈을 뜨자 순덕이의 동그란 눈동자가 바로 앞에 있다. 아이는 웅크린 채 자고 있던 내 몸뚱이 안에 들어와 앉은 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창밖에서 무리 지어 등교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웅성웅성 들렸다.

나는 무거운 팔로 아이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순덕이는 기분 좋게 눈을 감으며 나의 손에 이마를 가져다 댔다.

     뭐 어쨌든 답은 내 안에 있다는 거지, 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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