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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호 May 05. 2021

XXVII

발가벗고 사는 게 최선이다



    1.

     어른을 마주하면 나는 그럴싸하게 행동한다. 진정 그렇진 못하고, 그저 어떤 것을 모사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군요, 하고 중얼거리는 대답마저도 눈치를 보면서 그럴싸하게 내뱉는다. 하지만 그런 순간의 나는 머리가 완전히 깨끗한 상태에 가깝다. 괜히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도 제대로 들리지 않고, 공연히 고개만 주억거리며 무슨 대단한 사람 흉내를 낸다. 돌아서 생각해보면 그가 건넨 말은 그리 어려운 말들이 아니었지만, 나는 앞뒤가 맞지 않거나 소재는 같으나 주제가 다른 이야기를 마구 쏟아낸다. 상대는 매 순간 여유롭고 솔직하게 말한다. 물론 나도 짐짓 여유롭고, 또 퍽 솔직하게 말해보지만, 얇은 막이 나의 시야를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쨌든 어른을 마주하면 나는 그렇다.

     한 번은 대학교 1학년 시절 저녁마다(수요일로 기억하는데) 논어 강독 수업을 듣던 시절이었다. 정식 강의는 아니었고, 교직원은 물론 지역주민들도 무료로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특강과 같은 수업이었다. 수업을 진행하던 R교수님은 나를 아껴주었다. 게으르고 멍청한 내가 어떤 면에서는 훌륭했기 때문은 아니었고, 그 야학을 듣는 학생 중 유일한 학부생이었던 연유였다. 교수님은 언젠가 시험을 보겠다고 한 적이 있다. 나름 하루도 빼먹지 않고 불광역에서 맹자 수업을 들은 겨울방학 이후의 봄학기였을 것이다. 그는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 무어냐 물었는데, 방학 내내 귀가 닳도록 듣고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읊었던 ‘차마 어찌하지 못하는 마음’을 홀라당 잊어버리곤 이상한 궤변을 늘어놓았다.

     교수님은 그런 나를 고깃집에 데려가, 손수 고기를 구워주셨다. 같은 날인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고기를 구워주는 교수님에게 나는 또 이렇게 물었다.

     한 선배가 자신은 사물을 이해할 때 한없이 자기에게 끌고 온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는 그 당시 내가 아는 것 중에 그나마 가장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역시 내 생각은 아니었고, 정확히 따지면 그 말을 해준 선배의 말도 아니었다. 역시 궤변이었다.

     그는 내 물음을 곰곰이 생각하더니, 어쨌든 이해라는 건 나보다는 상대를 우선해야 하니 한없이 다가가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요, 하고 답했다. 그리고 나는 멍청히 고개만 끄덕일 따름이었다. 문득 내가 범했던 그럴싸한 말과 행동들을 떠오를 때면 여전히 가슴에 날 선 긴장감이 선명하게 느껴지곤 한다.

닭볶음탕을 먹으면서 나는 역시 발가벗고 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2.

     지난 목요일 한 사내를 만났다. 무엇이든 좋다는 사내의 말에 지난번 친구들과 무심결에 들어갔던 술집에 갔다. 계란말이를 먹은 것 같은데 메뉴판엔 닭발 메뉴로 가득했다. 닭볶음탕을 먹자고 했고, 그는 상관없다고, 아니 좋다고 했다. 그는 겨우 한 살 많은 나를 퍽 존중해주었고, 나는 고작 한 살 적은 그를 그저 친구라 생각했다.

     그는 어딘가 그럴싸했다. 눈빛이 그랬고, 꺼내는 이야기가 그랬다. 그것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어떤 답을 구하듯 이런저런 질문들을 했는데, 그중엔 퍽 의미심장한 질문도 있었다.

     일상적으로 친구들을 대하는 본인과 저처럼 글을 통해 만나는 사람을 대하는 본인과의 괴리를 어떻게 해결하나요 하고 그는 물었는데,

     글쎄, 그렇게 다른가 싶으면서 괜히 피식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가끔 나는 순덕이와 대화를 한다. 이를테면 친구에 대해서, 또는 글에 대해서. 나는 아이에게 마구 털어놓는다. 그럼 순덕이는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준다.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아이에게는 무엇을 말해도 거리낌이 없다. 말도 그렇고 행동도 그렇다.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을 사람들에게는 왜 가려 말하고, 가려 행동하는 건가. 그게 나는 우스웠다.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 되레 가리고자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가리는 건 가리는 데로 모두 보일 텐데 말이다.

     그의 물음을 곱씹으며 나는 역시 발가벗고 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3.

     어린 시절 부모님이 하던 치킨가게 옆 작은 공원에서 아이들과 투덕거리며 싸우고는 엉엉 운 적이 있다. 어떤 영문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억울했고, 그래서 울었다. 하지만 어머니에겐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 역시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어쨌든 울음을 그치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치킨가게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정신이 없는지 무거운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들을 대충 보더니 얼른 씻고 밥 먹으라 말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얼른 그녀가 바쁘게 움직이는 주방으로 가선 싱크대에서 세수를 했다. 그리고 홀 한쪽 구석 테이블에 차려진 밥상 앞에 앉았다.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있으니 나 역시 억울했던 기억도 잊어버렸고, 어느새 울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어린 나는 그렇게 밥을 씹으며 멍청히 TV를 보고 있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준비하던 게 끝난 건지 어머니가 조용히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를 마주 보고 앉은 채 테이블에 팔을 기대고는 얼굴을 내게 썩 가깝게 들이댔다.

     그래서, 왜 울었는데?

     물에 젖은 앞머리를 따뜻한 손길로 정리해주며 어머니는 물었다. 그 순간 완전히 잊고 있었던 억울함이 갑자기 솟구쳐 오르더니,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솔직했더라면. 차라리 완전히 발가벗고 그녀 품에 안겨 엉엉 울었더라면.

     흐르는 콧물을 손으로 마구 닦으며 나는 역시 발가벗고 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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