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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호 Sep 21. 2021

XLVII

형편없는 돌잔치



    1.

     일 년 전에 나는. 그러니까 2020년 9월, 유난히 길었던 장마를 보내고 난 뒤의 21일 무렵의 나는 내 인생은 여전히 말할 수 없는 불안감으로 가득했다. 일 년 전 나는 지금의 나보다 더욱 지쳐있었다. 그때 나는 한껏 흔들리고 있었다. 어쩌면 그대로 가다간 뿌리가 완전히 뽑혀버리고 스스로 어리석고 무모했다고 이른 자책을 하며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나의 흔들리는 뿌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은 아물지 않은 상처와 개지 않는 궂은 날씨였다.



    2.

     이 작은 기록들이 시작되었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고 또 단단하게 만드는 건 지난날 연인의 한 마디였다. 나는 그 무렵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건설현장의 감리단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고, 일 역시 이렇다 할 게 아닌 사무보조였다. 환갑이 지난 직원분들의 서류를 대신 엑셀 파일로 작성하고 관리하는 간단한 업무를 했다. 그 일을 하면서도 역시 계속해서 이런 일만 하고 살 순 없을 거란 생각에 대기업에 지원해보기도 했지만, 시험을 준비하고 면접을 보면서 아무래도 내 옷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면접을 망치고, 나는 여전히 감리단 사무실에 출근했다. 그래, 일이란 것은 애초에 옷걸이에 불과한 것 아닐까. 어떻게든 먹고살고, 어떻게든 글만 쓸 수 있다면 그깟 일이 무슨 상관인가. 겨우 옷가지 정도에 불과한 것을. 하루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회사 전무님의 연장 계약에 작은 만족감을 느꼈다. 그리고 나의 작은 만족감을 자랑하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누가 봐도 형편없이 초라한 처지”라고 대답했다. 맞잖아. 부모님한테 자랑할 수 없잖아. 솔직히 응? 그렇잖아 지금. 안 그래? 그녀는 내게 그리 물었다.

     그녀의 날카로운 말은 ‘브루투스의 단검’이었다. 그녀에 대해서 짧게 말하자면 그녀는 나름 내게 정성이었고, 그녀 입장에선 전혀 아니었다고 전혀 안 좋아했다고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어쨌든 나로선 나를 그렇게 좋아해 준다는 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에게 아주 솔직했다. 비록 흔들리고 유약하고 볼품없고 형편없는 모습일지라도, 그녀는 그런 나를 이해해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랬기에 그런 그녀의 공격은 어떻게 방어할 틈도 없이 나를 찔렀다. 그녀의 말은 늑골 밑 가장 여린 부위로 가차 없이 파고 들어왔다. 피부를 찢고 뜨거운 피와 꿀렁이는 장기가 나름의 자리를 잡은 나의 몸속을 사정없이 난도질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와 나는 헤어졌다.

     이후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자면 대체로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나의 글은 썩 좋지 못했고, 이렇다 할 성과도 역시 없었다. 일자리도 반년 넘게 구하지 못한 채로 전전긍긍했고, 하루에 만 원을 넘길 것이냐 말 것이냐 4,100원짜리 커피를 마실 거냐 말 거냐가 나에게는 아주 중차대한 문제였다. 어찌 보면 좀스럽고 하찮으나 나로선 사뭇 진지한, 그런 고민을 할 때마다 내 머릿속엔 그녀의 말이 울렸다.

     누가 봐도 형편없이 초라한 처지. 안 그래? 솔직히? 응?

     거친 날씨에 아물지 않은 상처가 욱신거리듯이. 나는 가끔 숨이  막힌  막연한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간혹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그래도 괜찮다을 들으면 칼에 찔리던 그때의 방심하고 있던 내 모습과 그때의 아픔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리고는 ‘이들 역시 나를 언제 찌를지 모른다 불안감에 시달리게 만들었. 고백건대, 지난 1년은 내게 아주 힘든 시기였다. 몸엔 상처가 있었고, 날씨는 짓궂었고, 나의 방향은 지리멸렬했다. 내가   있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을  글자  문장 써내는  말고는 없었다. 비록 사람이 좀스러워 보이고 글이 죄다 비문으로 가득하더라도, 그게 내가   있는 것의 전부였다. 그렇게  년을 걸어오고 나니 나는  가지를 깨달았다. 그렇게 버티는  나로선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결국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3.

     순덕이를 데려온 지 어언 1년이 됐다. 지난 2020년 9월 21일 나는 다리가 부러진 채 쌕쌕거리며 죽어가는 아이를 발견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순덕이를 집에 들였다. 덜렁거리던 아이의 다리는 아주 좋아져 이제는 집 안에 못 오르는 곳이 없고,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다던 뒤섞인 장기로 순덕이는 사료며 간식을 시도 때도 없이 먹는다. 그동안 아이의 생이 아주 볼 만한 것은 못 된다. 어쨌든 순덕이와 나는 꿋꿋하게 하루하루를 살았고, 형편없는 처지가 나아진 것은 아니나, 여전히 누가 봐도 형편없지만, 우리는 살아간다. 그건 전혀 괜찮은 일이 아니다. 솔직히 그렇다. 지금 나는 구리다. 그리고 오늘은 형편없이 구린 우리 生의 기념일이다. 하지만 나는 기쁘다. 이 형편없는 생을 함께한 아이와 축하하고 싶다. 누구에게도 자랑할 수 없는 명명백백히 형편없던 우리 생을. 앞으로도 그러할 우리 생을!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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