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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호 Oct 12. 2021

L

마지막 화: 최선에 관하여



    1.

     그녀는 자못 필사적이었다. 내가 토익 성적도 없이 취업 준비를 하겠다고 했을 때 그녀는 내 자기소개서를 보며 제목을 달아봐라, 문단을 이렇게 나눠 봐라, 하며 열심이었다. 기실 합격이 불가능한 상태인 내게 그리 한 것만으로도 그녀가 아무것도 없는 나를 믿어줬다는 말은 유효할 것이다. 내가 될 거라고. 그 방향이 어떤 쪽이든 그녀는 나를 믿어준 것이다. 될 거라고, 되어야만 한다고.

     덜컥 서류에 합격하고 나선 공무원 준비를 하는 친오빠를 대동해 내게 인적성 시험공부 방법을 가르쳤다. 친오빠는 오랜만에 귀여운 여동생을 볼 생각에 신나 있었고, 나는 덜컥 여자친구의 오빠를 뵐 생각에 적이 당황스러웠지만, 그녀는 내가 관악구의 명문대생인 그에게 시험 팁을 잘 배우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식사 도중 시험문제를 꺼낸 그녀의 마음을 나와 그 모두 모를 수 없었다. 그녀는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내가 번듯하게 취직하고, 떳떳하게 그녀의 부모님에게도 소개하길 바란 것이다. 나라면 필시 그럴 수 있으리란 믿음을 가지고서 말이다.

     기어코 2차 시험까지 합격하고 나는 돌연 준비를 멈췄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 미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도망치듯 게으름을 피우는 나를 보며 전전긍긍했다. 마지막 면접날이 오고, 나는 면접관의 질문에 연신 땀을 닦으며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의 면접 결과를 기다리던 그녀는 면접 이후 전화를 받고는 “조금 더 열심히 해보지…”하고 말끝을 흐리고 이내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부푼 기대와 믿음은 풍선의 바람이 맥없이 빠져버리듯 꺼지고 말았다.

     이거 봐. 얘 닭가슴살도 먹어.

     이후 당시 아르바이트하던 회사 앞 고양이 이야기나 꺼내는 나의 카톡에 그녀는 답장을 잘하지 않았고, 퇴근길에 전화를 하면 그녀는 거절했다. 언제나 그녀는 배드민턴 중이었다. 배드민턴을 하러 가는 중이라서, 하는 중이라서, 끝나고 이야기하는 중이라서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어색한 통화를 하며 내 목소리가 참 낯설어졌다고 했다. 나는 내게 질린 여자를 판별해내는데 선수다. 이미 질려버리고 난 뒤 판별이니 무용한 능력이긴 하지만, 뭐, 어쨌든 선수다. 언젠가 어떤 여자는 종일 공부를 하고 있었고, 어떤 여자는 종일 아르바이트 중이었다. 물론 공부를 한다던 여자는 웹소설을 읽고 있었고, 아르바이트한다던 여자는 카페 사장이었던 오빠와 저녁을 먹었다. 나는 몇 번이고 그녀 몰래 고양이들과 함께 그녀의 배드민턴이 끝나길 기다린 날이 있다. 간식도 없는 내 곁은 더는 얼쩡거리지 않는 고양이들과 나는 해가 기우는 하늘을 멍청히 바라봤다. 그리고 한참 뒤에 그녀에게선 전화가 아닌 카톡이 왔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전화했다.

     배드민턴 재밌게 쳤어? 응 나도 집 앞이야.

     그리고 얼마 뒤 심심찮은 문자 몇 통을 나누고 그녀와 나는 헤어졌다.     

     우리가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냐고 물으면 나는  모르겠다. 최선이라는 단어는 항상 내게 음흉하고 난해하다. 얼마를 달려봐도  단어는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그것은 언제나 내게 불만이다. 얼마간 불안하고 지친 나는  가닿지 않는 불만에 언제나 허덕인다. 하지만 항상 그것은 나를 음흉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게 최선이었냐고. 나는  단어만 생각하면 미궁 속에 빠진 것처럼 망연한 두려움에 휩싸인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단어를 입에 담을  있을까. 얼마나 해내야 무엇에 관하여 진정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있을까. 그러니까  마음에 어떤 확신이 느껴져야지 비로소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할  있을까.



    2.

     하필 나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순덕이가 다치고 돌연 내가 그 아이를 집에 들인 새로운 사건은 그리고 다음 주에 보게 된 그녀의 이별 문자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게 실망한 그녀와 이별했고, 작고 유약하나 호기심이 많고 밝은 고양이와 만났다.

     누구를 나무랄 수 없이 홀로 흉터를 가진 셋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인연과 삶을 시작했다. 그 후 그녀가 어찌 살고 어찌 되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순덕이는 다리가 다 나아 집안에 못 뛰어오르는 곳이 없고, 장기가 조금 이상하게 협착되긴 했지만, 매일매일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있다. 보는 사람들마다 참 기특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는데, 호기심이 많고 밝은 녀석은 누구도 경계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의 얼굴과 엉덩이를 내민다.

     그러는 동안 나는 꾸준히 글을 썼다. 고전을 필사하고, 신춘문예에 투고하고, 또 이런저런 공모전에 작품을 내고, 이런저런 작업을 공모(共謀) 하기도 했다. 또 그런 와중에 작은 회사와 더 작은 회사들에 이력서를 냈다. 그리고 언젠가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기업의 건물 옆, 사무실 임대 빌딩의 단칸방 중소기업에 면접을 보러 가기도 했다. 다른 것도 보통 그랬지만, 그 면접 역시 탈락했다. 늦은 아침 익숙하게 탈락 문자를 받고, 어쩌면 그녀와 헤어져서도 안 됐고, 나는 그 시절 더욱 필사적이었어야 했다고, 그랬어야 한다고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얼른 침대에서 나와 세수를 하며 잡념들을 씻어냈다.

     그리고 나는 순덕이와의 이야기를 매주 기록했다. 매일같이 우울하고, 매일같이 서툴러도. 그래서 아무도 관심 없을지라도, 나는 꿋꿋이 이 아이와의 새로운 삶을 기록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3.

     얼마 전 나는 작은 소설 공모전에 당선됐다. 배다리라는 작은 동네에서, 그것도 거기에 있는 작디작은 독립서점에서 여는 1등 2등도 없이 10명 모두 1등을 시켜주는 소소한 공모전에서 나는 처음으로 당선됐다. 그 결과를 보자마자 나는 자려고 누운 침대에서 “왁!”하고 짧은 탄성을 냈다. 모두에게 홀대받던 잭 블랙은 위대한 승리를 예고한 것과 달리 비열하게 돈을 벌 궁리를 하다가 발각되고, 그나마 얻어낸 성취라고는 조카뻘 아이들과 록밴드를 만든 것이 전부다. 그렇게 영화는 흥에 취해 아이들과 노래하는 잭블랙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보잘것없는 나의 1년간의 발악은 a4용지 세 장짜리 공모전의 성취와 함께, 눅눅한 원룸에서 지르는 탄성과 함께 끝을 맺으려고 한다.

     (다음 주에는 에필로그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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