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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호 Oct 19. 2021

에필로그



    *


     작년 일이었다. 인천의 한 문화예술 단체에서 지역 잡지 제작에 참여한 나는 프리랜서로 사진작가 일을 하는 친구에게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친구는 흔쾌히 부탁을 들어줬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약속이 잡혀있던 차였기에 구체적인 이야기는 그날 하자, 하고 대충 이야기를 끝냈다. 그리고 당일 날, 그와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30분 일찍 만났고, 그는 생각한 사진 구도가 있느냐며 내게 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을 건넸다. 안 그래도 나는 사진 구도를 준비해온 참이었다. 그날 아침, 나는 그에게 설명할 요량으로 책장에 아무렇게나 꽂혀있던 이면지를 하나 꺼내, 너무 크니까 4등분으로 접어, 두어 개 구도를 상상하며 연필로 그림을 그려놓았다. 그리고 나는 그 종이를 재킷 안주머니에 넣어왔는데, 그래서 안 그래도 그걸 꺼낼 참이었는데, 친구가 내게 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을 건넨 것이다. 나는 연필로 그려온 종이를 가슴팍에 넣어둔 채 그의 애플펜슬을 쥐고 아이패드 메모장을 다시 또 4등분 했다. 그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나는 외투를 벗지 않았다. 혹여 안주머니에 있는 볼품없는 이면지가 나올 것 같아서. 그러면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던 내 어린 부끄러움도 만천하에 드러날까 봐. 그리고 헤어질 무렵, 친구는 내게 아이패드도 싸게 살 수 있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꼭 나를 위로하는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나는 분명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 말이다.

     아무렴. 아닌 척하면 아닌 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깨달았다. 참는 척하면 참은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참는 척으로 보인다는 것을. 모르는 척하면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모르는 척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을. 아무리 숨겨봤자 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숨기고 있는 것이 보인다는 것을.

     이 수필을 연재하면서 글이 막힐 때마다 나는 항상 그때의 일을 되뇌었다.

     지금껏 써온 수필이 얼마나 진실을 담아냈는지 나는 자신할  없다.   진실이 무엇이든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역시 나는 자신할  없다. 다만  비겁하고 불완전한 연재를 끝까지 지켜봐    내외의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리고 가끔 나와 순덕이를 응원하며  지내길 바란다고 진심으로 응원해준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다시 한번 나의 수줍고 사사로운 수필을 읽어준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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