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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뾰족달 Jul 21. 2024

거인의 휴지

휴지를 아껴 씁시다







아름다운 분홍 건물 2층에 잔뜩 쌓인

거인들의 휴지를 찾았다.

걸터앉아보니 의자로도 손색이 없다.


쉬어가기 딱 좋구나 하는 찰나

벌써 휴지 하나를 부여잡고

놀기 시작한 땅이.

왠지 슬슬 불길한 느낌은 기분 탓이겠지.

왠지 청소의 늪에서 못 헤어날 것 같은 기분은 뭐지?

그러지 말자.

오랜 여행으로 장난감이 그립겠지만

물론 다 내 잘못이긴 하다만

그래도 이리 쉽게 본색을 드러내지 말자.

그동안 순하고 이쁜 강아지 이미지 잘 자리 잡았는데 말이다.

땅씨!

눈치 챙기자!







신나면 나오는 뾰족 귀

잔뜩 흥이 오른 뒤통수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여행가의 초심을 잃다니.

우린 절대 자취를 남기지 않았지.

오점 하나 없었다고. 

그림자처럼 왔다가 갈 뿐이지.


그런데 꽤 재미있어 보인다.

휴지 뜯는 거 재밌어 보인다.

재밌어 보인다.

재밌겠지?








보들보들한 휴지를 찢어서 날리면 함박눈.

꽁꽁 뭉쳐 던지니 솜돌멩이.

이래서였구나.

멍뭉이들이 이래서 휴지를 좋아하는 거였어.

신나게 뜯어서 하얀 눈도 만들고,

덕지덕지 쌓아서 눈사람도 만들고.

그냥 막 뭉치를 만들고.

우리의 웃음과 즐거움 속에

나락 간 거인들의 휴지들.




땅아, 서둘러!



뒷정리를 잘 해두었다.

너무 감쪽같다.

조금 변화가 있지만 눈에 띄진 않는다.

여행자의 기본은 정리 정돈이지.

절대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아무렴.


휴지심지는 왜 저렇게 모아뒀을까???

주인장이 참 알뜰하시구나.

그럼 우린 바빠서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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