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1일 실시 _제19대 국회의원선거
"상황이 좋다면 권력 담당자(The Ins)를 지지하고,
상황이 나쁘면게 돌아가는 것 같다면 권력 외부자(the Outs)를 지지하는 것,
이것이 말로 국민 정부(popular goverment)의 본질이다."
- 월터 리프만
이명박 정부는 집권1년 차부터 광우병 파동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에 대한 강경 대응으로 국민적 신뢰를 상실하더니 집권 기간 내내 북한의 천안함 격침, 연평도 포격, 아덴만에서 아프리카 해적의 해상 공격 등 전시도 아님에도 국내외로부터 각종 무력 공격에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광우병 파동, 구제역 파동 등 국민의 먹거리와 직결된 질병과 전염병으로 인한 사회불안도 극에 달했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구제역으로 인해 전국에서 살처분된 돼지, 닭 등 가축의 수는 900만 마리를 넘었고 이를 산채로 묻어야 했던 방역관계자들과 수의사들의 육체적, 심리적 고통은 이룰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집권 기간 내내 이상할 정도로 이런 재앙의 검은 연기와 죽음의 그림자가 그리워진 기간이었습니다. 천안함 사건은 우리 해군장병 40여명의 꽃같은 목숨을 앗아갔고 용산참사에서도 한계 상황에 내몰린 철거민들과 강제 진압에 내몰린 경찰관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도 이명박 정부 하에서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2012년 4월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강행 처리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고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는 야권의 정권심판론이 우세했습니다.
19대 총선은 12월에 치러질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전초전 성격도 갖고 있어서 여야 간의 대결구도는 팽팽했고 야권은 지난해 11월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권연대를 통해 승리를 맛본 터라 이번 총선에서도 여소야대 국회를 목표로 후보 단일화에 주력했습니다. 선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2011년 12월 민주당은 원외 친노/시민 세력과 통합하려 민주통합당을 창당했으며,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탈당파는 2012년 1월 통합진보당을 결성하며 전열을 가다듬었습니다. 이렇게 범야권 정당이 5개 정당에서 2개 정도로 감소하면서 야권연대 및 후보 단일화는 활발해졌다. 2012년 3월 중순 무렵 야권연대 후보가 속속 결정되어 민주통합당의 인재근 후보,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공동대표 등이 야권의 단일후보로 선출되었습니다.
한편, 야권의 단일 대오에 위기를 느낀 한나라당은 2011년 12월 박근혜 전 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하며, 2012년 2월 당명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영입해 그동안 진보진영의 슬로건으로 여겨졌던 '경제민주화' 노선을 채택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총선과 대선 이후 이 급조된 경제민주화 노선은 폐기되고 맙니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답게 박근혜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도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해내며 총선을 승리 지휘했고, 그 여세를 몰아 대통령 선거에 나서 마침내 근소한 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선거관리 측면에서도 1987년 개헌 이후 처음으로 재외선거가 도입되어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외국민들은 선거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1967년과 1971년 대선과 총선에서 재외국민 선거가 잠깐 시행되었다가 1972년 <10월 유신>으로 금지된 지 40년 만에 재외국민 선거가 부활한 것입니다. 박정희 정권 당시에는 우편투표 방식이었지만 19대 총선에서는 국외에 있는 재외 공관에 유권자가 직접 가서 투표를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선거구획정과 관련해 여야 갈등으로 혼란이 발생하면서 선거구 획정이 지체되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절충안을 제시해 이에 여야가 합의하며 국회의원 정수가 300석으로 늘어났습니다.
후보자 등록 결과 지역구 후보자는 총 902명이 등록하여 평균 3.7대 1의 경쟁률을 보이며 직전 제18대 국회의원선거(4.6대 1)에 비해 다소 낮았습니다. 그러나 비례대표 선거에는 20개 정당이 후보자를 추천하여 사상 최다를 기록했습니다. 선거과정에서는 분위기를 주도하는 큰 이슈 없이 야권 후보 단일화를 추진한 야권·진보진영의 ‘정권 심판론’과 집권 여권의 ‘거야 견제론’ 이 서로 팽팽하게 대립했습니다. 당시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뉴미디어로서 친야 성향의 팟캐스트들이 많은 인기를 끌어 이 진행자 중 한명이 총선에 출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거전 후반에 불거진 이 팟캐스트 '나꼼수 출신' 후보자의 막말 파문이 돌출변수가 되었습니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집권 후반기였던 만큼 야당의 '정권심판론'이 다소 우세를 점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었습니다. 한편, 방송사들은 유난히도 안 맞던 기존 총선 출구조사의 개선을 위해 무려 75억 원을 들여 사상 최초로 전 지역구에 대해 출구조사를 실시하기로 했지만 이번에도 여론조사 예측치는 실제 선거 결과를 크게 빗나갔습니다. 선거 결과 새누리당은 152석을 얻어 과반수 획득에 성공했고, 민주통합당은 겨우 127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습니다. 통합진보당도 13석을 얻어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했습니다. 다만, 통합진보당의 심상정 후보가 이번 선거 최소 표인 불과 170표 차이로 당선되었고 노회찬 후보도 당선되었습니다. 13석이라는 의석수만 놓고 보면 진보정당 역사상 최대성과를 얻은 선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민참여당 출신 당선자들을 제외하면 통합진보당 후보들은 지역구에서도 석패했고 정당 지지율에서도 이전 선거와 비교할 때 더 적은 지지율을 얻었습니다. 또한, 이번 총선의 경선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비례대표 후보자 불법 경선 문제가 선거 이후 이른바 '통진당 사태'로 폭발하면서 통합진보당 내 비당권파는 탈당하여 진보정의당을 결성합니다. 통합진보당은 대통령 선거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헌법재판소의 위헌정당심판절차에 의해 해산되기에 이르는 몰락의 길을 걷습니다.
야권(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은 서울에서 전체 의석의 2/3 정도에 해당하는 32석을 가져가는 등 수도권에서는 17대 총선과 거의 비슷한 의석을 확보했지만 상당수의 접전지에서 패배 또는 역전패하며 많은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반대로 새누리당은 수도권(특히 서울)에서는 패배했으나 텃밭인 영남권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했고, 또 강원도와 충청도에서 당초 예상보다 많이 선전했습니다. 특히 강원도는 새누리당이 의석 9석을 전부 가져가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선거 결과 새누리당의 선거 승리를 진두지휘한 비상대책위원장 박근혜의 대선 행보에 청신호가 켜졌습니다. 사실 이번 총선에서 정부 여당은 승리했지만 여당 내 친 이명박계는 이번 선거 공천과정에서 1차 공천학살을 당했고 그 틈을 타고 친박계가 당권을 장악하면서 당내 역학구도가 크게 달라져 이번 총선 결과로 이명박 정부가 정권 말기 국정운영 동력을 확보했다고 말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후보에게 미련 없이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안철수 원장은 새누리당의 독주를 막고 민주당의 부진을 극복할 제3의 주자는 자신밖에 없다는 '안철수의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