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13일 실시 _제20대 국회의원선거
2016년 4월 13일 실시한 제20대 국회의원선거 결과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상대 후보에 2배 이상 앞서던 후보가 실제 선거 결과에서는 참패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당혹스러움을 한 언론사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2012년 12월 19일에는 야권이 왜 패했는지 몰라서 혼란에 빠졌다면, 이번 4월 13일에는 야권이 어떻게 이겼는지 설명할 수 없어서 곤혹스러웠다.
- 시사주간지 <시사인>
그만큼 제20대 총선의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선거 직전만 해도 집권여당의 압승을 예측하는 언론사들이 많았고 심지어 집권 여당이 개헌선에 해당하는 200석 이상을 무난히 확보해 개헌을 추진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선거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더불어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11석 등으로 16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여당 강세지역이었던 강남 3구의 선거구 중 3곳(강남을, 송파갑, 송파을)에서도 당선자를 배출하는 등 서울의 49 석 중에 35석을 차지해 서울은 여전히 야권의 아성임을 확인했습니다. 민주당은 수도권에서는 선전했지만 호남지역에서는 국민의당의 바람이 강하게 불었습니다. 국민의당은 호남권 지역구에서 23석을 얻어 전통적인 이 지역 맹주였던 민주당의 아성을 무너뜨렸고, 서울에서 2석을 추가하여 지역구에서만 25석을 얻었습니다. 이에 더해 국민의당은 비례대표 정당 투표에서도 여당인 새누리당에 이어 2위를 기록하는 등 약진했는데 제3당이 원내교섭단체(20석) 이상 의석을 얻은 것은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선거 이후 20년 만이었습니다. 결국, 이번 선거를 요약하면 여당인 새누리당의 참패, 제1야당인 민주당의 극적인 승리, 안철수를 등에 업은 제3당인 국민의당의 대약진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여론조사가 실제 선거 결과를 제대로 예측할 수 없었던 데에는 선거 관련 여론조사에 잘 응하지 않는 젊은층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 젊은층은 직업이나 근무로 인해 평일 낮 시간에 자택에 있는 경우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무선 휴대전화를 표본에 넣지 않고 유선 집 전화만 표본으로 사용한 여론조사의 신뢰도는 매우 낮다는 점, 실제 최종 58%의 최종 투표율을 기록한 이번 선거에서 20대의 투표율이 52.7%를 기록했는데 이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 직후 실시된 2004년 17대 총선보다도 높은 것이었으며, 직전 총선인 제19대 총선과 비교할 때에도 무려 11.2%나 상승한 것이었습니다. 20대뿐만 아니라 30대, 40대 등 상대적으로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이전의 선거와 비교에서 크게 오르며 실제 선거 결과를 여론조사로 예측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제20대 총선에서 집권여당이 참패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무엇보다 이른바 '공천학살'로 불리는 무원칙 공천에 국민들이 여론이 싸늘해졌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습니다. 여당 공천심사위원장의 자의적인 공천과 공천을 통해 자신의 당내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무원칙 공천은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고 국민들의 우스갯소리와 경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른바 박근혜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기 위해 '친박 인사'로는 모자라 '진박 인사'를 선별하기 위한 '진박 감별사', 자기 계파 소속 의원의 공천 탈락을 막기 위해 김무성 대표가 당대표 직인을 들고 달아난 이른바 '옥쇄 파동'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공천 참사와 이로 인한 당내 중진들의 탈당 후 무소속 출마 행진이 이어지면서 여론은 싸늘하게 식었고, 그 결과 선거에서의 참패로 이어졌습니다. 최근에 알려진 바로는 이런 여당의 공천과정에도 최순실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야당인 민주당에서도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은 김종인 위원장이 친노세력을 배제한다면서 일부 친노 인사와 이해찬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하면서 두 사람의 악연이 다시 시작된 것 아니냐는 우려와 무원칙 공천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이해찬 의원은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후 다시 당에 복귀하여 민주당 당대표까지 지내게 됩니다.
선거 제도적 측면에서 이번 총선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지난 제6회 지방선거에서 처음 도입된 사전투표가 총선에서 처음 실시되어 사전투표율은 12.2%를 기록하는 등 어느 정도 안정화되었고, 유래 없이 많은 정당이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해 총 21개 정당이 투표용지에 정당명을 올렸습니다. 선거참여 정당이 많아짐에 따라 비례대표 투표용지도 33.5 센티미터로 사상 최장을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투표용지 길이도 흔히 사용하는 30센티미터 자보다 더 길었고 개표나 투표관리에서 많은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이 기록은 곧 21대 총선에게 깨지게 됩니다. (21대 총선 참여 정당은 35개 정당, 투표용지 길이는 48,1 센티미터)
선거가 끝나고
제20대 총선이 끝난 직후 집권 4년 차에 접어든 박근혜 정부는 미국의 동북아 방위 전략에 따라 고고도 미사일 체계 (사드 THAAD) 국내에 배치하기로 전격 결정하여 여론을 분열시켰고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JTBC 방송이 보도하기 시작한 이른바 '최순실 태블릿'이 알려지면서 2016년 10월 말부터 헌정 사상 최초로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사건인 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나옵니다. 최순실 게이트가 연일 확대되며 박근혜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중에 하나였던 창조경제의 '비창조성'이 드러나고 각종 논란과 의혹이 연달아 터지며 여론이 급속도로 나빠졌습니다. 이런 최순실 사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몇 차례 대국민 사과에서 "이러려고 내가 대통령이 됐나 자괴감이 들었다"며 자기변명으로 일관한 결과 여론은 급격히 악화되고 거리에는 탄핵의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결국 2016년 12월 9일 국회는 박근혜 탄핵소추안을 가결하고 이듬해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습니다.
이로써 박근혜 정부는 제6공화국 최초로 5년 임기를 채우지 못한 정부로 역사에 기록되었고, 이로 인해 2017년 3월 11일부터 2017년 5월 9일까지 정권 공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박근혜 정부의 권력 남용과 진보인사 탄압, 삼성 이재용 대표의 불법 승계 비리 문제가 연달아 터지면서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장관과 차관 등 고위 공무원과 청와대 비서실의 보좌관을 비롯한 정부 주요 인사들이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습니다. 마침내 불법 승계를 위한 국민연금 동원과 뇌물수수, 강요죄 혐의로 삼성 이재용 대표와 대통령 본인까지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되었습니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형식적인 운영만 지속되다가 2017년 5월 9일 제19 대통령선거가 실시되어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이로써 5월 10일부터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게 됩니다. 거리에서 탄핵의 촛불이 활활 타오르는 동안 황교안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으로 있던 권력 공백기에 군부세력 일부에서 계엄령을 통한 군사 쿠데타 실행계획을 모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만,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 교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틀은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