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잘가! 고마웠어!
집 가는 길 떡볶이를 사가려는데 문이 닫혀있었다. 어제부터 먹고싶었는데.. 아쉬워서 한 3초간 닫힌 가게를 멍하니 보다 발걸음을 돌리려던 찰나 그 옆에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홀린듯 가보니 호떡가게였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일단 긴 줄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고, 그러고 나서야 ‘그래 이것도 떡이니까.’ 하며 합리화했다.
가게도 푸드트럭도 아닌 비닐포장마자 비슷한 곳 안에서 두 명의 아저씨가 열심히 호떡을 빚고 또 뒤집고 계셨다. 손놀림은 보이지 않았지만 비장하게 마스크와 앞치마를 착용하신 모습하며 10년간 호떡만 만들어오셨을법한 프로페셔널한 표정에 손끝발끝에 고드름이 맺힐듯 추웠지만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어느새 내 뒤에는 여자 고등학생 2명이 쪼르르 달려와 기다리고 있었다. 둘은 세 마디를 나누면 두 번을 웃었다.
지금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하나둘셋 하면 동시에 말하자. 하나둘셋 호떡!
아니 호떡 집 앞에 줄 서있으면서 같이 호떡을 외친게 무에 그리 신기한 일인가 싶었지만 둘은 그런 나를 노땅 꼰대라고 비웃는듯 까랑까랑하게 웃어댔다.
그 질문 하나만으론 둘의 운명적 우정을 증명하기 부족했는지 뒤이어 평생 매일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하고 외쳤지만 한 명은 호떡을 한 명은 떡볶이를 외쳐 나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괜찮아 둘다 떡이잖아.’하고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다행히 아마스빈과 빽다방을 고르는 질문에서 둘이 모두 아마스빈을 선택해 금이 갈뻔한 우정을 운명으로 묶을 수 있었다.
내 차례가 가까워져 호떡 값을 계좌이체로 결제하려고 토스 앱을 켰을 땐 정확히 내 오른쪽에 있던 두 아이들의 위치가 오른쪽 대각선 뒤로 이동한 것이 느껴졌다. 매일같이 당연하듯 써온 이 어플이 낭랑17-19세 아이들에게는 신기해보였나보다. 친절히 안내해주고 싶었다.
이건 간편하게 이체할 수 있는 토스 라는 어플이고, 너네 혹시 신기한 거 좋아하니? 그럼 와디즈펀딩도 해볼래? 아까 니가 좋아한다고 했던 엑소 도경수 영화도 우리 회사에서 펀딩 받았단다. 아 펀딩이 뭐냐구..? 그래 호떡 맛있게 먹어..
정신이 아득해졌다.
처음에는 귀를 찌르는듯한 둘의 웃음소리와 간혹들리는 육두문자가 거슬려 표정을 찡그리게 되었지만 무슨 이야기길래 이렇게 재미있게 노나 싶어 집중해서 들었더니 나도 같이 아마스빈에 가고 싶어 졌다. 내 중고딩 시절이 생각나기도 했고. 그땐 나도 저렇게 많이 웃었는데. 지나가는 선생님이며 동네 아저씨며 우리 엄마며 너네는 모이기만 하면 뭐가 그래 재밌냐며 알 수 없는 핀잔을 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우린 이게 어떻게 재미없을 수 있냐며 의아하곤 했는데. 입장이 이렇게 바뀌어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거기다가 오늘은 진정한 연말이기까지 하니 괜히 ‘애들 참 잘 웃네’ 하고 끝나고 말 감상이 ‘내년엔 나도 쫌 잘 웃어야겠다’ 하는 다짐으로까지 이어졌다. 아마도 연말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렇게 반성하고 다짐하라고.
그렇게 듣고 몰래 웃고 회상하고 다짐하고나니 내 호떡 3개가 거의 완성될 참이었다. 줄의 첫번째가 되고나서야 보니 호떡집 사장님들의 어색한 손놀림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기다리는 건 손님이지 우리는 아니란다.’ 하는 듯한 여유 가득한 손놀림. 손끝발끝은 이미 겨울과 하나된 듯 했지만 이토록 기계적인 세상에서 저리도 사람 냄새 가득한 움직임으로 열심히 호떡을 만들고 계신 두 분을 보니 한국의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온 나는 오히려 마음이 몽글해졌다. 손에 들기 쉽게 비닐봉지 손잡이를 한껏 벌려서 건네주시는 사장님의 마음씨도 몽글해진 마음에 한 몫 했다. 2019년에는 마음을 더 넉넉히 써야지. 더 느긋해지고 더 웃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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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동안은 2018년을 정리하면서 어떤 태도로 2019년을 맞이해야 할 지 고민해보았다. 그것은 미워하지 않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았고 그 미움의 화살은 결국 내게로 다시 돌아왔다. 예상치 못했던 방향에 씁쓸했다. 내가 뱉은 모든 미움이 결국 나에게로 돌아왔다니.
미워하는 대신 느긋해지고, 관대해지기로 했다. 여전히 좁은 버스에서 굳이 어깨를 쳐가며 내리거나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을 보면 이가 갈리지만 굳이 그들을 미워하면서까지 에너지를 쓰지 말자고 다짐했다.
미움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되 미워하는 것을 경계하기로 했다. 2019년은 아무래도 올해보다 더 사랑스러운 해가 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