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없는 시간은 여전히 지루했다. 묶여 있지만 않으면 여자를 따라나설 텐데. 여자에게서는 조금 따뜻한 햇살의 냄새가 났다. 그리고 쿰쿰한 고기 간식의 냄새도. 여자의 머리칼은 길었고 그 머리칼이 내 얼굴에 닿을 때는 간지러워서 눈을 꼭 감았다. 여자는 때론 지친 표정으로 다가와서,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나와 함께 있지 않은 시간에 여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자유롭게 거닐면서 어떤 걸 바라볼까. 가방 속에 내 간식 말고 다른 건 안 들어 있을까? 목줄만 없으면, 내가 달릴 수만 있다면 여자를 따라가 볼 텐데. 슬쩍 목을 비틀어 당겨본 목줄은 여전히 차갑고 튼튼했다.
해가 기울어 멀리 보이는 산 능선에 걸릴 무렵, 여자가 기다란 줄을 들고 다가왔다. 저것도 목에 매는 줄인가?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더 옥죄려는 걸까. 나는 이미 저 커다란 쇠말뚝에 묶여 있는데. 나는 목줄이 너무 싫은데. 생글생글 웃는 여자 손에 있는 목줄을 보니 덜컥 겁이 났다. 여자는 이젠 내가 싫어진 걸까. 내가 뭘 잘못했더라, 지난번에 여자 품에 파고들다가 침을 많이 묻혔는데 그래서 이제 내가 미운 걸까. 여자를 보면 늘 꼬리를 흔들어야 하는데 꼬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주눅이 들었다.
“ 또또야, 고개 좀 들어봐.”
여자는 내 목줄의 고리에 가지고 온 줄을 연결했다. 이제 나를 묶는 줄이 두 개나 되잖아. 그러면 난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게 아닐까. 무섭다. 꼬리가 다리 사이로 말려 들어간다. 볼썽사납게. 여자 앞에서 창피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은데.
여자는 가져온 줄을 손에 감아 단단히 쥐더니 쇠사슬로 된 줄을 내 목에서 풀어버렸다. 이제 내 목줄에 연결된 건 여자 손에 쥐어진 저 까만색 줄, 하나다. 그게 산책할 때 쓰는 리드 줄이라고 하는 거라고 여자가 말해줘서 알았다.
“또또야, 언니랑 같이 조금 걸을까? 아저씨가 잠깐 나갔다 와도 된대.”
여자가 슬며시 줄을 끈다. 나도 같이 걸어도 되는 걸까? 집에서 벗어나면 뭐가 있는지 모르는데, 무서운데. 조금 엉거주춤한 꼴이 되었다. 전에도 걸어봤는데, 다섯 걸음 걸으면 목줄이 감겨서 아팠단 말이야.
“또또야, 언니랑 천천히 가자.”
여자가 걸으며 끄는 줄에 힘이 실려 몸이 여자 쪽으로 기울었다. 여자는 나를 아프게 하지 않을 거야, 늘 나한테 잘해줬으니까. 발을 슬쩍 내디뎌 본다. 오른쪽 앞발, 왼쪽 앞발, 오른쪽 뒷발, 왼쪽 뒷발. 다리에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몸이 조금 기우뚱했다. 여자가 화들짝 놀라 내 옆에 쭈그리고 앉아 내 얼굴을 감싸 쥔다. 부드럽게 내 턱 밑을 쓰다듬어주었다.
“무서울 거 없어, 또또야.”
여자는 가방 속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을 꺼냈다. 내가 좋아하는 우유 냄새가 나는 쿠키. 여자는 쿠키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내게 내밀었다. 여자 손에 침을 묻히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쿠키만 앞니로 물어서 집은 다음 꿀꺽 삼켰다. 맛있다. 기쁘다.
자신감이 생겨났다. 어떻게 걸었더라? 앞발, 앞발, 뒷발, 뒷발. 이렇게 움직이는 거였지? 내딛는 발바닥으로 차갑고 단단한 땅의 감각이 스민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 단단히 서 있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앞발에서부터 어깨, 등을 거쳐 꼬리 끝까지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여자가 일어서서 다시 줄을 이끌었다. 천천히, 천천히.. 여자를 올려다보며 앞으로 움직여본다. 목이 아프지 않다. 내 걸음에 맞춰서 여자도 옆에서 같이 걷고 있다. 늘 여자의 터벅터벅 걷는 소리에 멀어지는 뒷모습만 바라봤었는데. 이제 같이 걸어도 되는 거야? 나도 모르게 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발걸음이 조금씩 가벼워진다. 타닥타닥 발톱이 땅에 긁히는 기분 좋은 소리가 났다. 여자가 줄을 당겨가며 이리로 오라고 알려주었다. 걸어본다. 여자가 가자고 하는 곳으로. 자동차가 달리고 사람들은 스쳐가는 풍경 속에서 나만 멈춰 있었는데, 나도 지금 같이 움직일 수 있어. 앞으로 다리를 뻗을 때마다 부딪혀 오는 차가운 바람도, 내 옆에서 같이 머리칼을 퐁실거리며 걷는 여자도 모두 처음이었다. 길가의 나무에 별같이 매달린 반짝거리는 전구들, 떼를 지어 한 몸처럼 왔다 갔다 우스꽝스러운 참새들. 짭짤한 연기를 폴폴 풍기는 고깃집 앞을 지날 때는 나도 모르게 안으로 들어갈 뻔해서 여자가 황급히 리드 줄을 끌고 뒷걸음질을 쳤다. 기름에 뭔가를 튀겨내는 고소한 냄새, 생선이 쌓여있는 비릿한 냄새, 반찬 더미에서 풍기는 짜고 매콤한 냄새, 달달한 식혜 냄새 따위가 불어오는 바람에 섞여왔다. 너무 재미있다.
“또또야, 여긴 시장이라는 곳이야. 맛있는 것도 많고 사람도 많지. 나중에 언니랑 또 구경 오자.”
내 집을 벗어난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냄새가 있는 곳이었어. 잔뜩 신난 콧김을 뿜으며 바라본 하늘에 주황색 석양이 낮게 깔리고 있었다. 고개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려도 끝이 없었다. 주황빛의 끝을 눈에 채 다 담기도 전에, 여자는 등을 돌려 우리가 걸어왔던 길을 다시 바라봤다.
“자, 이제 돌아가자, 또또야.”
더 멀리 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여자랑 계속 같이 있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여자는 내 마음을 모르는지 집으로 돌아가며 콧노래를 불렀다. 조그만 내 집이 보였다. 네모난 상자처럼 생긴 내 집에는 뽀얗게 먼지가 서려 있었다. 아까 산책하면서 봤던 나무는 반짝반짝거리던데, 내 집은 새카매. 나도 반짝반짝하는 집이 갖고 싶다. 반짝거리면 따뜻하겠지?
여자는 말뚝에 묶인 쇠사슬을 다시 내 목에 걸고, 가져온 까만 리드 줄을 풀어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내 옆에 앉아서 등을 긁어주었다.
“미안해, 또또야. 그렇지만 산책하니까 좋지?”
‘또 같이 걸었으면 좋겠어요.’
그날은 꿈에서 하얀 개를 만났다. 꿈속의 내게는 목줄이 채워져 있지 않았다. 집 앞마당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는데, 하얀 개가 다가왔다. 알록달록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은 채였다. 인사를 나누고 싶어서 코를 벌름거리며 다가갔다. 늘 사람에게 안겨 있어서 멀리서 올려다봤었는데,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본 하얀 개는 눈과 코가 새카맣고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보였다. 가까이 있어본 적이 없어서 나를 경계하는 걸까. 하얀 개는 종종걸음으로 뒤로 물러났다. 도망가지 말아 줘, 나는 그냥 친구가 되고 싶을 뿐이야. 하얀 개가 시장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서 나를 바라봤다. 같이 가자는 건가? 나도 같이 가도 돼? 하얀 개는 여자의 가방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조그마했다. 저렇게 작은데도 달릴 수 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두고 하얀 개가 달려 나갔다.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듯 가볍다. 놓쳐버릴 것 같아 황급히 쫓아갔다. 하얀 개가 멈춰 서더니 헐레벌떡 쫓아오는 나를 돌아봤다. 나를 돌아봐 주는 건 여자가 처음이었고 하얀 개가 두 번째다. 나랑 친구 해주지 않을래? 말을 걸고 싶어서 다가간 순간 하얀 개가 사르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겨울 내내 집 앞 그늘에 쌓여 있던 눈이 무지개 빛 햇살에 슬며시 녹는 것처럼 하얀 개가 다리부터 조금씩 없어졌다. 하얀 개도 눈으로 만들어진 걸까? 그래서 사라질까 봐 사람이 조심조심 하얀 개를 안고 다닌 걸까. 사라지면 슬픈데, 가지 마.
말을 걸어 보려는 순간 하얀 개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내 등에 날개가 돋기 시작했다. 내 덩치가 자동차만큼, 아니 내 집 뒤의 공장만큼 커졌다. 종종 공장 앞마당에 내려앉던 비둘기처럼, 날개를 펼쳐 올려 퍼덕거리니 거짓말처럼 몸이 둥실 떠올랐다. 날아오른 먹빛 밤하늘 사이로 불꽃이 솟아올랐다. 땅에서 쏘아 올린 작은 돌멩이 같은 점들이 펑하고 동그랗게 퍼지면서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꼬리가 달린 빛으로 흩어졌다. 눈이 따가울 정도로 번쩍이는 점들이 날아가는 나를 휘감았다. 따뜻했다. 지금은 하늘의 저 별보다 내가 훨씬 빛나겠지?
날갯짓을 멈추고 산 중턱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하늘에서 우유 쿠키랑 동그란 육포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입을 와아앙 벌리고 한 입 가득 간식을 받아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여자가 던져주고 있나 봐. 갑자기 어디선가 사람들이 몰려온다. 사람들은 모두 나보다 조그맣다. 나를 둘러싸고 다가오더니 정수리를, 턱 밑을, 등덜미를 쓰다듬어준다. 여름에 내 물그릇 위에 빗방울이 떨어져 파도가 일 듯, 사람들이 계속 파도처럼 몰려왔다. 모두 웃는 얼굴에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기분이 좋아. 사람들이 나를 어르듯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는 감각에 나른해져 눈을 감았다 떴다. 사람들은 모두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따뜻한 햇살의 냄새도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칼도 없었다.
덜컥 불안해졌다, 이 사람들은 여자가 아닌가 봐. 날개를 다시 펼쳐 올렸다. 나에게 닿아 있던 사람들의 손들이 한순간에 떨어져 나간다. 나는 여자를 찾으러 갈래요. 새카만 하늘의 바닥에서부터 빛이 올라온다. 반짝이던 달도 별도 윤곽이 희미해졌다. 날면서 여자와 함께 걸었던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여자의 집은 어디일까. 여자가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어 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같이 날아다닐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사진출처 : 시사저널 '평생 옥죈 ‘1m 목줄’에서 해방된 누렁이…“좋아서 진짜 웃어요"'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8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