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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가랑비가 내렸다. 비가 오면 집 주변에 딱딱하게 굳어 있던 흙바닥에 물이 스며 조금씩 질척거리면서 부드러워진다. 나는 그 흙바닥에 발자국을 꾹 남겨보는 걸 좋아한다. 오른쪽 앞발을 집요하게 땅에 눌러본다. 조그맣게 흙이 파인다. 그 옆에 다른 한쪽 발로도 자국을 남겨본다. 다른 개들도 발자국이 이렇게 생겼을까? 하얀 개는 나보다 발이 작으니까 발자국도 훨씬 작겠지?


추운 기운이 얼른 물러갔으면 좋겠다. 봄이 되면 땅이 말랑해져서 발을 디디면 보드라운 흙이 발바닥을 간지럽힌다. 흙 속에 발이 살짝 파묻히는 느낌이 좋아서 일부러 흙 위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곤 했다. 흙으로 이어진 길이 있다면 그 위를 계속 걷고 싶다.


갑자기 어디선가 다른 개의 냄새가 났다. 한 마리의 냄새가 아니었다. 이 근처에 나 말고 다른 개는 없는데. 어리둥절해 올려다본 시선 끝에는 파란 모자를 쓴 아저씨가 있었다. 타고 온 낡은 트럭을 길가에 세우고 나를 흘끔 보더니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공장에 온 손님인가 보다. 그런데 개 냄새가 나다니, 파란 모자도 개가 있나 보다. 아저씨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더니 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는 요즘 통 기운이 없어 보였다. 전에는 내가 있는 마당으로 종종 나오곤 했는데, 날씨가 추워져서 그런지 요즘은 내 밥만 부어 주곤 쌩하고 들어가 버린다. 할머니도 나처럼 추운 게 싫은가 보다. 얼마 전에는 할머니가 사료 봉지를 들다가 힘없이 바닥에 툭 떨어뜨려 사료가 알알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아저씨가 달려와 할머니를 공장으로 들여보내고, 사료를 주워 다 내 그릇에 담아주었다. 그래서 그날은 흙먼지가 잔뜩 묻은 사료를 먹어야 했다. 입이 텁텁했지만 불만을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누렁이고, 사람들은 내가 말하는 걸 못 알아들으니까.


파란 모자와 할머니가 몇 마디 말을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아저씨는 두 사람을 등지고 말없이 서있었다. 파란 모자는 걸걸한 목소리로 웃더니, 잠시 나를 가늠해보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곤 트럭에 올라탔다. 맥없이 엔진이 울리는 소리가 나고, 목이 아파지는 까만 연기를 내뿜으면서 트럭이 떠났다. 나는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싫다. 여자와 산책하면서 때때로 맡는 고깃집의 연기는 너무 좋지만.


아저씨가 터덜터덜 걸어오더니 내 옆에 쭈그리고 앉아 연기를 뿜었다. 아저씨의 연기에서는 고된 느낌의 냄새가 났다. 트럭의 연기는 새카맣고 고깃집의 연기는 북적북적하고 아저씨의 연기는 슬프다. 아저씨가 크고 거칠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하다.”


여자도 산책을 마치고 와선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곤 했다. 왜 여자도, 아저씨도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걸까. 나는 여자도, 아저씨도 너무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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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노트펫 '강형욱 훈련사, 생활속 묶여 사는 개들 구한다'

(https://www.notepet.co.kr/news/article/article_view/?idx=11901&groupCode=AB110AD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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