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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Nov 26. 2023

디즈니랜드에서는 혼자여도 외롭지 않아요

직장인에게도 꿈과 희망을 주지요

신주쿠에서 도쿄 디즈니랜드까지


 13년 만에 찾은 디즈니랜드. 혼자 여행하는데 익숙하지만, 놀이공원에 혼자 가는 건 아무리 나라도 허들이 꽤나 높아 보여서 망설였었다. 하지만 꿈과 희망의 나라, 디즈니랜드는 홀로 온 어른에게도 따뜻하겠지? 하는 생각에 여행 한 달 전, 입장권부터 예매해 버렸다.


 도쿄 디즈니리조트 티겟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구매할 수 있지만(도쿄 디즈니랜드, 디즈니 씨를 합쳐서 ‘도쿄 디즈니리조트’라고 통칭), 국내에도 클룩, kkday 등 몇 군데 대행 사이트가 있어서 구하기 어렵지 않다. 일본의 주요 테마파크로 도쿄의 디즈니, 오사카의 유니버셜이라고들 하는데,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의 경우, 입장권과 더불어 인기 있는 어트랙션을 오래 기다리지 않고 지정한 시간에 탈 수 있는 ‘익스프레스’ 티켓을 별도로 파는데(가격이 입장권보다 비싸다!), 이와 비슷한 시스템으로 디즈니랜드에는 DPA(Disney Premier Access)라는 게 존재한다. 입장권만 있어도 모든 어트랙션을 다 탈 수 있지만 인기 어트랙션은 오래 줄 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맹점인데, 이런 기다림을 돈으로 해결해 주는 개념.


이 공식 앱을 다운로드하면 된다! 유사앱 주의!

 

 DPA는 디즈니랜드에 입장한 후 디즈니 공식 앱 혹은 입구 근처의 오피스(‘World bazaar confectionery’라고 쓰인 하얀 문으로 된 입구)에서 구매할 수 있는 티켓인데, 인기 있는 쇼나 어트랙션의 DPA를 구매하면 쇼의 경우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고, 어트랙션의 경우 지정 시간에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다. 가격은 개당 2000엔~2500엔 정도. 그리고 올해 도쿄 디즈니랜드가 40주년이라고 해서, 40th Anniversary Priority Pass(통칭 ‘PP’)도 제공하는데 DPA와 동일한 역할을 하며, 이걸 통해서 입장권 하나당 쇼 하나, 어트랙션 하나를 무료로 선택할 수 있다. 확실히 최근 몇 년 새 대형 테마파크에 사람들이 더 몰리는 것 같고, 그래서 그냥 갔다간 인기 어트랙션의 경우 2시간도 더 서서 기다려야 하는 일이 왕왕 생기기 때문에, 나처럼 저질체력의 직장인은 이제는 이런 패스권이 없이 테마파크는 힘든 듯싶다.


 디즈니랜드로 가는 버스표는, 방문 전 날 오후에 숙소 근처의 신주쿠 고속버스터미널의 기계를 통해서 발권했다. 한국어 메뉴도 있어서 구매는 어렵지 않았다. 이른 시간 출발하는 버스로 골랐는데, 전 날 예약해도 자리는 꽤나 남아 있는 듯싶었지만, 성수기에는 하루 이틀 전에는 발권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티켓 발권 기계, 한국어 지원도 된다
사람들이 자주 찾는 목적지는 따로 왼쪽 상단에 메뉴처럼 나와있다, 나는 '도쿄디즈니리조트'를 선택
이른 시간 출발하는 버스들이 인기가 많은 것 같다
버스 티켓 발권 완료! 소중히 보관해 둔다!


 나는 조금이나마 사람이 덜할 때 디즈니랜드를 방문하고 싶어서 월요일 표로 예매했는데(11/13 방문), 마침 크리스마스 테마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그런지 사람이 정말로 많았다.(눈치 게임 실패...) 9시 오픈이니 그 정도 맞춰 가야지 싶어서, 호텔 근처의 신주쿠 고속버스터미널에서 8시 10분 버스를 탔다. 버스는 디즈니씨를 거쳐 디즈니랜드로 간다. 디즈니랜드로 가는 경로 상 오다이바를 지나가는데, 일전에 오다이바에서 바라보며 감탄했던 레인보우 브리지를 버스 타고 달리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맑은 창 밖의 풍경을 보면서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디즈니랜드에 도착할 무렵 랜덤 재생으로 해 둔 플레이리스트에서 흘러나온 곡은 하필이면 '키스기 타카오'의 'Goodbye day'. 서글픈 멜로디에 담담한 목소리가 'Goodbye day 오늘이 마지막, One more day 또 하루를, 아무 일도 없이 그걸로 됐어' 하고 읊조리는데 눈망울이 촉촉해지려는 순간 디즈니에 정차. 이런 슬픈 감성으로 디즈니랜드에 도착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고.


https://www.youtube.com/watch?v=FqlBW6T4mqU

문제의 BGM, 명곡이지만 디즈니랜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짐검사를 거쳐 입장하자마자 DPA 구하기!


 9시 10분 도착 예정이었는데 차가 좀 막혀서 9시 20분쯤 하차. 비련의 감성 모드를 두근두근 꿈과 희망의 모드로 전환하며 버스에서 내린 내 눈에 앞에 펼쳐진 풍경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행렬. 대체 이게 뭐지 싶어 물어보니 짐검사 하는 줄이란다. 대형 테마파크가 으레 그렇듯, 디즈니랜드도 입장 전에 짐검사를 하는데 오픈 시간에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던 것. 언뜻 무질서해 보이지만 직원들이 통제해서 순서대로 들어간다. 한 30분 정도 기다렸다가 짐검사를 받고 입장할 수 있었다. 참고로 내 가방에 물이랑 카스텔라가 있었는데, 특별히 제지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간단한 먹을거리정도는 들고 가도 되는 듯하다. 추운데 서서 기다리느라 기운이 조금 빠졌지만, 눈앞에 디즈니랜드 입구를 보고서 나도 모르게 뛰어가고 있었다.


입장 전 짐검사를 기다리는 사람들

 

 한국에서 출력해 간 입장 QR 코드를 찍고, 디즈니 리조트 앱에도 입장권을 등록했다. 앱을 켜고 ‘Scan Ticket’ 부분에 QR을 읽히면 입장권이 등록되는데, 이 앱을 통해서 디즈니 랜드의 전체 지도와 나의 위치, DPA, PP 확인과 어트랙션의 대략적인 대기시간까지 볼 수 있으니 반드시 사전에 다운로드해서 가는 게 좋겠다. 앱 이름은 ‘Disney Resort’였다, 유사한 이름을 단 다른 앱들도 있다고 하니 주의!


이쪽으로 들어가서 DPA를 현장구매 할 수 있다


 디즈니랜드를 생각하며 가장 기대했던 어트랙션은 ‘미녀와 야수’였다. 랜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어트랙션이라서, 이건 꼭 DPA를 사야지 했는데, 입장하자마자 앱에서 확인해 보니 미녀와 야수 DPA가 ‘not available’ 상태인 것이 아닌가! 이 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먼저 입장한 사람들이 다 구매한 것 같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안내 사무소처럼 생긴 하얀색 입구, 'World bazaar confectionery'로 후다닥 달려갔다. 직원분 통해 구매하려고 알아보니 미녀와 야수 DPA는 오후 6시 50분 입장하는 회차가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다고. 휴, 간발의 차로 DPA를 못 구할 뻔했다. 줄 선 김에 DPA로 ‘Disney Christmas Stories’라는 쇼도 구매했다. 각 2500엔. 그리고 줄 서서 기다리는 동안 PP로 롤러코스터형 어트랙션인 ‘빅썬더마운틴’과, 캐릭터와 만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디즈니 캐릭터 그리팅‘도 구해두었다. 쾌적한 디즈니랜드 이용을 위해 입장하자마자 앱으로 반드시 DPA와 PP를 구하는 것을 추천한다.(심지어 PP는 무료!) 그렇지 않으면 줄 서기 지옥에 하루를 날려버릴 수도. 그리고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들어갔는데도 not available인 DPA가 있다면, 직원에게 한 번 물어보기라도 하자. 나처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열심히 선점한 티켓들

 

 정신없는 패스 구하기가 끝나고 확보한 패스를 바탕으로 나의 스케줄은 10시 40분에 디즈니 캐릭터 그리팅 하기, 14시 10분에 빅썬더마운틴 타기, 15시 40분에 디즈니 크리스마스 스토리 퍼레이드 보기, 18시 50분에 미녀와 야수 타기. 이 정해진 스케줄 사이에 밥을 먹거나 휴식을 하거나 다른 어트랙션을 줄 서서 타면 된다! 확보한 표들을 보며 뿌듯한 마음으로 눈에 보이는 기프트샵에 들어가서 미니마우스 머리띠를 샀다. 일상적으로는 쓸 일이 전혀 없을 것을 알지만, 디즈니랜드에 온 이상 뭐라도 머리에 쓰고 싶단 말이지. 스팽글이 다닥다닥 붙은 미니마우스 머리띠. 1900엔의 지출,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가격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만족감이 밀려들었다. 머리띠를 쓰고 나와 다른 관광객분께 부탁해 커다란 40주년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찍힌 사진을 보니 ‘나, 디즈니랜드에 있어!’ 하는 행복한 얼굴.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 전에 신데렐라 성에서도 사진 찍어야지 하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신데렐라 성이야 말로 도쿄 디즈니랜드의 상징이지! 다만 아침시간에 신데렐라 성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태양이 성 뒤에 있어서 역광으로 나온다. 하지만 아랑곳할 쏘냐! 아직 사람들이 많지 않은 틈을 타, 내 앞의 중국인 가족들에게 부탁해 사진을 남겼다. 이 중국인 가족분들은 엄마, 아빠, 아이 이렇게 3인 가족으로 오셨는데, 엄마 분이 어마어마한 디즈니 덕후인 듯. 분홍 투피스를 차려입고 요리조리 사진 포즈를 취하시는데 너무 귀여우셨다. 내 사진을 찍어 주셔서 나도 그 셋의 사진을 찍었는데, 아이도 어른도 모두 행복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위엄 있는 40주년 트리!
너무도 멋진 신데렐라 성!
신난 직장인 미니마우스 하나




디즈니 캐릭터와 만날 수 있는 기회, 캐릭터 그리팅!


 헤벌쭉 웃으면서 입구 쪽으로 걸어 나와 캐릭터 그리팅 구역에서 줄을 섰다. (내가 이렇게 웃음이 헤픈 사람일 줄이야, 디즈니랜드에서 깨닫는다) 나와 같은 시간대에 그리팅을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무대에는 미키마우스가 사람들과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그리팅 캐릭터는 시간대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점에 유의! 하지만 나는 '누가 나와도 좋지~'하고 느긋하게 서 있었는데, 내 앞 5팀 정도 남은 시점에서 미키가 퇴장하는 게 아닌가! 오, 캐릭터 전환인가 하며 누가 나올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미니마우스가 나왔다! 내 앞에 서 있던, 누가 봐도 미니의 팬인 여성분은 환호했고 내 뒤에 서 있던 누가 봐도 미키의 팬인 꼬마는 울음을 터뜨렸다. 이것 참, 난감한 상황. 꼬마는 미키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본인의 유모차도 미키에게 양보한 터였다.(유모차에 타 있는 미키 인형이 정말 귀여웠는데, 아이가 미키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본인이 너무 만나고 싶었던 미키가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으니, 어린아이는 얼마나 서러웠을까. 아이는 급기야 바닥에 드러누워 울었는데 아이를 달래는 부모님도 당황해하는 게 보이고 주변에서도 아이고 어쩌나 하고 있던 차, 지켜보던 직원분이 다가왔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종이 쿠폰 같은 것을 꺼내서 아이에게 건네어주면서 ‘미키가 너한테만 몰래 전해주라고 했어’ 하며 아이를 어르고 달래기 시작했다. 뿌아앙 울던 아이가 훌쩍훌쩍한다. 대성통곡은 멈췄으니 그나마 다행인 걸까. 우는 아이에게 먼저 다가와 아이 눈에 맞게 달래주는 직원 분을 보고 ‘역시 디즈니다’ 싶었다. 아이가 오늘 집에 돌아가기 전에 꼭 미키를 만나고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니마우스의 팬서비스는 직장인의 마음을 녹여요

 

 그리고 미니마우스 역시 프로페셔널했다. 내 차례가 오자 직원분이 내 휴대폰을 받아 가셨고, 미니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 안아주고, 같이 포즈를 취하자고 유도해 주었다. 나는 그저 입이 찢어져라 웃을 수밖에. ‘아, 너무 활짝 웃으면 사진 이상하게 나오는데’ 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할 틈도 없었다. 놀이동산의 캐릭터란 원래 이렇게나 적극적인 걸까, MBTI가 뭘까, 혹시 ENFP? 하는 생각이! 미니가 휘두르면 휘두르는 대로 휘둘리다가 슬슬 내가 퇴장해야 할 시점인 것 같아 미니에게 ‘응원하고 있어!’ 하고 물러났다. 미니가 손을 한 번 더 잡아주었고, 사진을 찍어주던 직원분은 ‘어머나 상냥하셔라!’ 하셨다. 그리고 건네어 받은 휴대폰엔 미니와 나의 사이좋은 사진이 스무 장쯤 찍혀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나.. 역시 직원분도 프로페셔널하다.


멋진 연주와 쇼맨십을 보여준 밴드

 

 신나는 그리팅을 마치고 다시 신데렐라 성 쪽으로 향하는데 관현악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어서 구경했다. (랜드 곳곳에서 크고 작은 이벤트가 벌어지는데, 이것만 제대로 봐도 티켓값이 아깝지 않다!) 저마다 악기를 짊어지고 귀에 익숙한 디즈니 주제가와 캐럴 메들리를 대열을 이동하는 안무를 곁들여 연주하시는데, 귀도 눈도 즐거운 현장이었다. 누군가 개인기를 하면 더 크게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는 관중들도, 그에 화답해 밝게 웃으며 눈인사를 해주는 밴드 분들도 모두 멋졌다. 쉽게 벅차오르는 나로서는 눈물이 날 뻔했다고. 잠깐 서서 듣고 가야지 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20분 남짓한 연주를 모두 마치고 퇴장하는 밴드분들에게 손을 흔들고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끝까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손을 흔들면서 화답해 주는 밴드분들. 팬들에게 한없이 친절한 저들이야말로 진정한 락스피릿(?)을 가진 자들이 아닐까.  


아름다웠던 퍼레이드

  



의외로 맛있고, 또 귀여웠던 점심 식사!- 센터 스트리트 커피하우스


 예약해 둔 빅썬더마운틴 타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놀이기구 하나 타고 밥 먹고 가면 되겠다 하고 시간 계산을 했다. 앱으로 어트랙션을 살펴보다가 근처에 대기시간이 10분 밖에 안 되는 ‘캐리비안의 해적’이 보여서 이동. 보트 라이드였는데, 약간 롯데월드의 '신밧드의 모험' 같은 느낌? 앉아서 캐리비안의 해적 스토리라인을 따라서 졸졸 흘러가는 라이드인데 사실 그다지 스릴 있지도 재미있지도 않았지만 동굴 속의 캡틴 잭 스패로우 밀랍인형만은 정말로 실감 났다! 어쩜 저렇게 그럴싸하게 만들었을까.  


'캐러비안의 해적' 어트랙션 속 잭 스패로우

 

 12시가 다 되어가서 밥을 먹기 위해 식당이 몰려 있는 입구 쪽으로 다시 향했다. 따뜻한 게 먹고 싶어서 ‘센터 스트리트 커피하우스’에 줄을 섰다. (디즈니에서는 기본적으로 짧든 길든 줄을 서야 하는 듯) 여기 카레를 팔기 때문! 20분 정도 기다려 식당에 입장할 수 있었다. 자리에 QR 코드가 있는데 이걸 통해서 메뉴를 확인하고, 직원분을 통해 주문한다. 나는 베이맥스 카레와 토마토 크림수프를 주문했다. 카레는 1580엔, 수프는 600엔. 금방 메뉴가 등장했는데 세상에, 카레가 너무 귀엽다. 밥을 베이맥스처럼 퍼 담았다! 심지어 카레는 토마토 크림카레와 비프카레 두 종류를 사용했다. 수프에는 새우, 조개, 관자 같은 해산물이 듬뿍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미키 머리 모양 러스크가 같이 제공된다. 두 메뉴 모두 놀이공원 가격 대비 맛이 만족스러웠고, 모양새도 귀여웠다. 이어서 따뜻한 우유도 한 잔 주문(300엔). 직원분이 설탕도 같이 가져다주셔서 정말 오랜만에 설탕 탄 따뜻한 우유를 마셨다. 마치 꼬마가 된 기분이었다. 이 날 도쿄도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기 시작한 데다 디즈니랜드는 도시 외곽의 넓은 부지에 있기 때문에 바람이 많이 불어 추웠는데, 따끈한 카레와 우유를 먹고 마시니 몸이 녹는 기분이었다.


센터 스트리트 커피하우스
베이맥스 카레와 토마토 크림수프
따뜻한 우유! 설탕을 조금 타서 마시면 몸이 녹는다

 


 

도쿄 디즈니랜드 제일의 스릴, '빅썬더마운틴'


밥 먹고 나니 금방 빅썬더마운틴을 타러 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앱 내 지도를 참고해서 여유롭게 이동했다.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아이들 데리고 온 가족이 가장 많은 것 같았고, 친구들, 연인끼리 온 사람들도, 나처럼 혼자 온 듯한 사람들도 있었다. 혼자 간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혼자 와서도 이렇게 잘 놀 수 있을 줄 알았으면 진작 와볼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마다 한껏 디즈니에 대한 애정으로 꾸미고 와서 그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머리띠는 기본, 모자, 망토, 인형 등으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를 드러낸 모습이 보기 좋았고. 나도 오타쿠로서 더 드러냈어야 했나 하는 묘한 경쟁심이 느껴졌달까.


 빅썬더마운틴 앞에 도착하면 일반 입장줄과 DPA 입장줄이 따로 있는데(나의 경우에는 PP로 확보한 티켓이었지만), 직원분께 앱 내 QR 티켓을 보여주면 바로 입장할 수 있다. 이것도 대기시간이 100분 넘게 있는 어트랙션이었는데, 기다리는 사람들을 두고 나만 앞으로 슥슥 나가는 게 조금 쑥스럽다. 하지만 나는 100분을 서서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고. PP나 DPA를 가지고 있어도 상황에 따라서 조금 줄 서서 기다리게 되는데 나도 한 5분 정도는 기다렸던 것 같다. 이 정도면 양호하지. 빅썬더마운틴은 롤러코스터 형태인데, 유니버셜의 ‘플라잉 다이너소어’나 에버랜드의 ‘T익스프레스’처럼 사나운 롤러코스터는 아니고 주로 속력으로 스릴을 주는 타입이다. 사람을 거꾸로 돌리지는 않지만 갑자기 확 가속하는 구간이 있기 때문에 머리띠는 빼고 탑승한다. 아마도 디즈니랜드에서 가장 스릴 있는 어트랙션이라서 인기가 많은 듯싶다. 나도 오랜만에 롤러코스터 타고 소리도 질러가며 신나게 놀았다.


 롤러코스터로 칼바람을 맞고, 그늘진 곳을 지나니 더 추웠다. 나는 도톰한 가디건 차림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주로 코트나 패딩을 입었고 핫팩으로 무장한 사람들도 있었다. 오늘 여기 저녁까지 있을 건데 이렇게 추워서야 버틸 수 없다는 생각에 근처의 기프트샵에 들러 뭐 걸칠만한 거 없나 찾아보는데 분홍색 보들보들 재질의 담요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이거, 케이프처럼 입을 수도 있는 거라고 해서 직원분이 직접 입혀 주셨다. 부드러운 분홍색 털에 머리에는 미니마우스 귀와 리본이 달려있다. 가격도 4500엔이나 하고. 딱 봐도 평소에는 입지 못할 것 같은데? 그래도 추우니까, 그리고 이건 귀여우니까, 여긴 디즈니랜드니까 하는 생각으로 구매하고 냉큼 입고 나섰다. 망토가 바람을 막아줘서 한결 덜 추웠다. 아, 진작에 사서 입을 걸 싶었다! (그보다 한국에서부터 따뜻한 옷을 더 챙겨 왔으면 이럴 일 없었겠지? 하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미키 아이스크림은 못 참지!


분홍 담요를 걸치고 용기 있게 구매한 아이스크림, 패키지도 귀여워!!
귀여운데 맛도 있었다!


 걷다 보니 아이스크림 카트가 보였다. 날이 춥긴 했지만, 미키마우스 모양의 아이스크림 바가 눈앞에 있으면 먹어야지! 샌드 형태의 우유 아이스크림과 미키마우스 얼굴 모양의 아이스바, 두 종류의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나는 볼 것도 없이 미키마우스를 선택! 미키마우스 바는 상큼하고 셔벗처럼 가벼운 계열의 트로피컬 맛이었다. 귀여운 비주얼 대비 가격은 귀엽지 않은 350엔. 근처 벤치에 앉아서 ‘어머 이 귀여운 걸 어떻게 먹어!!’ 하다가 사각사각 귀부터 떼어먹었다. 맛은 있었다, 추위가 느껴졌지만! 이다음은 DPA로 사 둔 ‘디즈니 크리스마스 스토리’라는 퍼레이드를 볼 차례였다.




크리스마스 시즌 퍼레이드, '디즈니 크리스마스 스토리'


이런 식으로 DPA에 Viewing area가 지정되어 나온다
DPA 구획은 따로 줄이 쳐져 있었다
이런 식으로 바닥에 붙어있는 나의 Viewing area를 찾아서 앉으면 된다

 

 퍼레이드 쇼의 경우 사전에 구매한 DPA를 어떻게 이용하는 건가 하니, 퍼레이드 명당 구역에 자리를 배정받는 식이었다. DPA의 Viewing area 부분에 내가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명시되어 있다. 물론 맨땅이기 때문에 준비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리 돗자리 등을 준비해 오는데, 나는 충동적으로 퍼레이드 DPA를 구매한 거라 그런 게 있을 리가.. 그래서 아까 기프트샵에서 망토를 사면서 받은 커다란 비닐봉지를 바닥에 깔고 앉기로 했다. 디즈니에서 맘먹고 퍼레이드를 볼 생각이 있다면 반드시 등산방석 같은 걸 준비해 가자, 유용하게 쓸 수 있다. DPA에 명시된 시간 내 들어가서 자리 잡고 앉았다. 퍼레이드가 시작되기 전에 직원분이 오셔서 간단한 율동을 알려주신다. 나중에 미키 친구들이 오면 같이 율동을 할 수 있다! 곧이어 음악과 함께 주인공들이 등장했다. 도널드 덕, 토이스토리 친구들, 미키와 미니, 구피, 미녀와 야수, 겨울왕국의 엘사와 안나, 올라프까지!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크리스마스 캐럴음악과 함께 신나게 춤을 추고 인사를 해준다. 이 얼마나 보고 싶었던 풍경인지! 직원이 사전에 알려준 율동을 캐릭터들과 함께 하는데, 다들 엉성하고 방향도 안 맞았고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얼굴들이 꽁꽁 얼어있었지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기쁜 표정으로 열심히들이라 웃음이 났다. 어쩌지, 너무 즐거워. 퍼레이드는 20분가량 진행되었다. 시간이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


토이스토리 친구들
미니야!!!!!
미녀와 야수 커플
귀여운 올라프!




곰타쿠라면 지나치지 못하지, '푸우의 허니헌트'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디즈니 캐릭터는 곰돌이 푸우인데, 오늘 푸우는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출근을 안 했나, 어디 아픈가. 그래서 ‘푸우의 허니헌트’라는 어트랙션에 찾아가 보기로 했다. 이 어트랙션도 굉장히 인기가 많아서, 내가 갔을 때는 90분 줄 서서 대기해야 했다. DPA도 PP도 없기 때문에 서서 기다리는 수밖에. 해가 저물기 시작하고 칼바람이 쳐서 추웠지만 망토의 모자 부분까지 눌러쓰고 기다렸다. 이때쯤 되니 체력도 슬슬 떨어지고 다리도 아파서 힘들었지만, 조금씩 줄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며 포기하지 않고, 정말로 1시간 넘게 기다린 후에야 실내로 입장할 수 있었다. 우리 귀여운 푸우가 꿀을 다 먹어버려서 다시 구하는 여정을 그린 라이드 종류의 어트랙션인데, 구조물들이 정말 귀여웠다! 라이드 중간중간 사진 찍을만한 지점이 있었는데, 구경하느라 넋 놓고 있어서 다 놓쳐버렸다. 대신 소중하게 눈에 담았지. 라이드 끝나고 나면 곰돌이 푸우 기프트샵 쪽으로 나오게 되는데, 정말이지 너무도 귀여운 푸들이 나를 유혹하고.. 하지만 우리 집에는 2013년부터 나를 지켜주는 애착 푸우가 있고, 인형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 악물고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왔다. 곰타쿠 치고 잘 참았다, 장하다 나 자신!


나의 최애, 푸우
푸우 자취방(?)인가..?
우리 쪼꼬미, 거기 매달려 뭐 하니!
결국 꿀을 쟁취한 푸우!
너무 귀엽다, 누가 저렇게 둘의 볼따구를 붙여놨을까!




감동의 피날레, '미녀와 야수'


파이와 감자튀김, 오렌지주스!

 

 배가 슬슬 고프고 다리도 아파서 식당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저녁이 되니 실내 레스토랑에도 대기 시간이 50분씩 생겼다. 그렇게까지 밖에서 줄 설 자신은 없는데.. 가벼운 메뉴로 바꿀까 하고 앱을 조회해 보니 미녀와 야수 어트랙션 근처의 ‘라 타번 드 가스통(LA TAVERNE DE GASTON)’의 대기가 적길래 냅다 줄을 섰다. 이곳은 크로와상이나 파이 종류를 파는 곳. 10분 정도 줄 서서 기다렸고, 비프스튜가 들어간 헌터스파이 세트를 주문했다. 세트에는 파이에 음료와 감자튀김이 딸려 나온다. 1,260엔. 패스트푸드처럼 음식을 주문하면 금방 나와서 그걸 받아 들고 자리를 잡아 앉는다. 파이 안의 비프스튜가 너무 뜨거워서 입술 데일 뻔. 따끈하니 맛있었다! 앉아서 기력을 조금 차리고 미녀와 야수 탑승 시간을 기다렸다. 미녀와 야수는 디즈니랜드를 소개하는 일본 방송에서 인기 있는 어트랙션이라고 나온 걸 봐서 기대가 높았다.


미녀와 야수 성, 왼쪽에는 일반 입장하기 위한 사람들 줄이 늘어서있고 오른쪽 뚫려있는 라인은 DPA 입장줄이다
야수 좋은데 사네..
무대 장치가 멋졌다!
마지막 무도회 장면, 정말 감동적이었다

 

 해가 진 미녀와 야수 성은 위엄 있었다! DPA로 후다닥 들어갔는데, 입장하고 퇴장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뮤지컬 속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입장하면 서서 왕자가 야수가 된 과정을 보고 들어가는데, 스태인드 글라스에 애니메이션이 비치는 듯하게 보여주는 연출이 기발했다. 이후는 컵 모양의 라이드에 타서 이동하며 스토리를 감상한다. 성의 식솔들이 넓은 식탁에서 벨을 위한 식사를 차리며 ‘Be my guest’가 흘러나오는 부분은 너무도 입체적이었고, 야수의 저주가 풀리는 장면은 영상으로 나오는데 어쩜 이리 실감 날 수가! 마지막 무도회 장면에 이르러서는 우리도 무도회에 참여해서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느껴지는데(실제로 컵 라이드를 타고 빙글빙글 돈다), 왜 인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미녀와 야수 동화는 너무도 잘 알지만, 이 이야기를 이렇게 느껴보니 감정이 벅차올랐달까. 감동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물이 나더라고요’ 하는 후기를 보기는 했지만, 그게 내가 될 줄이야. 눈이 촉촉해진 채 어트랙션에서 내렸다. 밖이 어두워서 다행이야, 하마터면 창피할 뻔했다.  


나오고 나서도 한참 여운이 남았다
휘황 찬란 야간 퍼레이드
반짝반짝 정말 이쁘다

 



꿈과 희망을 안고, 현실로 돌아오기 


 너무 늦으면 신주쿠로 가는 버스를 타기 힘들 것 같아서, 야간퍼레이드를 조금 눈에 담고 퇴장했다. 밤의 디즈니랜드는 반짝거리는 전구 장식으로 더 이뻤다. 아쉬운 발걸음으로 출구로 나와 버스 정류장 쪽으로 향했다. 지하철 타려면 위쪽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걸어야 하지만, 버스의 경우에는 직진해서 버스 정류장 쪽으로 가야 한다. 돌아가는 버스표는 따로 예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서 직원으로부터 표를 사면 된다. 신주쿠 버스터미널로 간다고 하니 표를 주셨다. 가격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1000엔. 디즈니랜드-신주쿠 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 타임 테이블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탄 버스는 사람이 좀 차고 나니 7시 50분쯤 출발했다. 돌아오는 길은 차가 막히지 않아서 40분 정도 걸렸다. 이렇게 현실로 돌아왔지만 계속 기분이 좋았다.  


현장에서 구매한 버스 티켓
차례차례 줄을 서서 들어가지요

 

 올 한 해 열심히 살았으니까, 그에 대한 보상으로 생각한 디즈니랜드 행이었는데 정말로 오길 잘했다 싶었다. 날씨는 추웠고 모든 게 전반적으로 비쌌지만, 유치한 나 자신을 드러내도 되고 오히려 더 어려져도 괜찮다고 부추기는 캐릭터들에게서 위안을 받았고, 어디서나 밝게 웃으며 도와주는 직원분들이 있어서 좋았다. 혼자 오는 사람들도 많은 지, 직원들도 다른 사람들도 혼자 온 사람을 특별히 다르게 생각하지도 않는 듯했다. 어트랙션의 경우, 내가 탄 것 기준으로는 빅썬더마운틴만 한 줄에 2명씩 앉는 롤러코스터라 나 혼자 앉았고(내 앞의 남자분도 혼자 앉으심) 그 외의 라이드 종류 어트랙션은 적게는 4명에서 많게는 8명 정도까지 함께 타는 스타일이었는데, 함께 라이드를 타는 사람들끼리는 무언의 연대감마저 느껴졌다.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냥한 분위기. 혼자가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앞으로도 돈 열심히 벌어야지, 그리고 또 와야지. 꿈과 희망의 디즈니랜드, 정말로 꿈과 희망을 주었다.  


밤에 보니 더욱 아름다웠던 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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