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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Dec 10. 2023

가끔은 조용한 동네 산책 어때

카구라자카, 키치죠지

 이번 여행의 숙소는 신주쿠, 쇼핑하다 보니 저절로 가게 된 긴자, 덕질템 찾아 떠난 시부야, 하라주쿠, 아키하바라. 도쿄에서 욕망해 왔던 버킷리스트를 수행하다 보면 도쿄 도심 중에서도 유독 사람이 더 바글거리는 곳들에 머물게 된다. 물론 반짝반짝거리는 도쿄도 좋지만 출입구가 100개는 되는 것 같은 거대한 지하철 역과 빠른 걸음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파도에 치여서 정신이 아득해질 때면, 작정하고 화려한 상업지구보다는 조금 조용한, 일본 사람들의 생활감이 묻어나는 동네를 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진다. 신주쿠에서 멀지 않고 적당히 활기차면서 전반적으로는 차분한, 갸루와 샐러리맨들의 행렬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가고 싶어진 동네, 카구라자카와 키치죠지. 이번에는 일정 상 반나절 정도씩 시간을 보냈는데, 마음에 드는 곳에서는 몇 시간이고 느긋하게 머물고 싶어 하는 나의 성격 상, 두 동네 모두 다시 오게 된다면 하루 종일 파헤쳐보고 싶은 곳이었다.



세련됨과 전통미를 동시에 간직한 동네, 카구라자카


카구라자카 아카기 신사


 카구라자카는 내가 재미있게 봤던 '나와 꼬리와 카구라자카'라는 드라마의 배경지라서 관심이 갔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은 수의사로, 주인공이 카구라자카의 낡은 동물 병원에서 아픈 동물들을 치료해 주는 내용인데 주인공이 오르내리는 언덕길도, 그 길에 있는 작은 신사의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카구라자카는 신주쿠역에서 전철로 20분 남짓 걸리는데, 카구라자카역에서 내려 이다바시 역 방향으로 이동하며 구경하거나 그 반대의 루트로 많이들 다닌다. 나는 이 동네의 '아카기 신사'부터 둘러볼 생각으로 토자이선 카구라자카 역에서 내렸다.


 아카기 신사는 카구라자카 역과 굉장히 가까웠다. 이 신사는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인 '쿠마 켄고'가 설계한 신사로 유명한데, 그 때문인지 굉장히 모던한 느낌이 들었다. 학문 성취와 좋은 인연을 비는 신사로 유명하다고도 한다. 신사 입구의 커다란 도리이 앞에서 마을 주민인 듯한 사람이 공손하게 인사를 올리고 있었다. 지역 주민들에게 소중한 이곳에 들어서며 나도 예의를 지켜야 할 것 같아서 귀에 쓰고 있던 헤드셋을 벗어 주섬주섬 가방에 넣었다.


약간 빛바랜 듯한 빨강이 도리이에 위엄을 더해주었다
아담한 본당 건물이 좌우로 위치한 건물들과도 잘 어울렸다
쿠마 켄고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목조양식과 세로격자가 눈을 사로잡는다

 

 내가 방문한 날의 하늘은 흐렸고 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쌀쌀한 날씨에 아랑곳 않고 기모노 차림의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님이 눈에 띄었다. 아이의 사진촬영을 하고 있던데 학문의 신이 있는 신사라서 아이를 데려오신 걸까. 이런 전통적인 옷차림으로 가족 행사를 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나는 한복을 입어본 적이 언젠지. 몇 년 전에 경복궁에서 동생과 함께 한복을 빌려 입고 돌아다녔던 것이 마지막인 듯싶다. 요즘은 생활한복도 세련되게 잘 나오던데, 그런 걸 찾아서 평소에 입고 다녀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본당 앞에서 기도 올리는 사람들이 있어 기다렸다가, 내 차례가 되어 새전함에 동전을 던져 넣고 소원을 빌었다. 모든 신들은 관대하니까 국적 따지지 않고 들어주시겠지? 하는 뻔뻔한 마음으로. 오미쿠지 통도 보여서 하나 뽑아봤다. 결과는 미묘하게 '말길'. 오미쿠지 뽑고 나서 안 좋은 운세가 나오면 신사에 마련된 '나쁜 운수 오미쿠지 묶어두는 곳'에 묶어두고 오면 되는데(그러면 악운이 떨쳐진다는 미신), '흉'도 아니고 '말길'이라 뭔가 묶기 애매하다 싶었다. 그런데 운수 설명 중 '당연한 듯한 매일에 감사하고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기라'는 문구가 마음에 들어서 그냥 챙겨 나왔다. 정통적인 느낌의 신사 바로 옆에 맨션이 있고 맨션 1층에는 카페가 있다. 그런데 신사도 맨션 건물도 직선적인 느낌이 있어서 꽤나 잘 어울렸다. 이것이 목조 건축과 세로격자 형태를 선호하는 쿠마 켄고 선생님의 안목인가.


신사라면 부적이 빠질 수 없지
어린이들이 쓴 듯한 귀여운 에마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토끼모양 오미쿠지라니, 너무 귀여운 거 아닌가!


 아담한 신사지만 부지 내에 모시는 신들을 모시는 공간은 착실하게 만들어두었다. 구석구석 살펴보니 빨간 도리이가 겹겹이 놓인 곳도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뒤는 주택가. 이 신사는 관광지라기보다 이곳 주민들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는 곳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쿄 아사쿠사의 센소지나 교토의 청수사처럼 유명한 절이나 신사의 압도적인 규모와 거기서 내뿜는 기운도 볼만 하지만, 주택가에 위치한 아카기 신사가 주는 맑은 기운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오늘 이런 풍경을 보러 온 거니까, 하고 굉장히 뿌듯했다. 모처럼 소박하면서도 개성 있는 신사를 봤다.  


도리이와 도리이 뒤쪽에 보이는 주택의 모습이 함께 잡히는 구도가 좋았다




카구라자카 거리


 카구라자카 역-이다바시 역을 잇는 메인 거리를 걸었다. '카구라자카'라는 이름이 쓰인 빨간 노렌이 걸려 있는 거리 양쪽에는 음식점이며 잡화점, 과일가게, 편의점, 은행 등이 늘어서 있었다. 도라야키나 아이스크림처럼 군것질할 만한 가게들의 유혹을 헤치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들어선 곳은 작은 전병 가게.  


걷기 즐거웠던 거리
충동적으로 들어간 전병 가게


 바싹 구운 전병은 고소하고 짭짜름하고 바삭해 좋아하는 간식 중 하나다. 구경해 보는데 헬로키티모양의 전병에 눈에 띄었다. 지조쨩이라는 캐릭터와 헬로키티의 콜라보레이션 제품이라고. 헬로키티 얼굴 모양의 전병이라니, 너무 귀여워서 구매! 메시지가 써져 있는 패키지의 감씨과자나 동그란 전병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계산하면서 가게 주인분이랑 잠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카구라자카는 과거 게이샤들이 많이 있던 동네지만 요즘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고. 그리고 돈이 있다고 해도 연줄이 없으면 게이샤가 있는 요정 같은 곳은 갈 수 없다고 한다. 교토 기온의 하나마치에서도 게이샤나 마이코상을 못 봤는데, 카구라자카에서 혹시라도 볼 수 있을까 했던 나의 기대를 곱게 접었다. 최근 갑자기 날씨가 너무 추워졌으니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는 점원 분의 다정한 인사말을 들으며 가게를 나섰다.


전병 가게 종이백이 너무 이쁘다


 거리를 걷는데 헤드셋 너머로 음악이 들려오는 것 같아 헤드셋을 벗어보니, 가로등에 달린 스피커로 '라비앙로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카구라자카에는 프랑스 음식점이 많고 어학원도 있어 '리틀 파리'라고 불린다고 하더니, 이렇게 낭만적인 순간을 만들어 주는구나. 골목 한 구석에서 음악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다. 여행하며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이런 순간들을 굉장히 좋아한다. 카구라자카는 메인 도로는 세련되었고, 그 사이의 작은 골목들을 들여다보면 전통미가 넘치는 동네라서 더욱 호기심이 이는 곳이다.




정갈한 소바집, 쿄라쿠테이(Kyourakutei)


 카구라자카 메인 거리 사이사이의 골목에도 구경거리가 많다.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해서, 찾아간 곳은 '쿄라쿠테이(kyourakutei)'. 소바가 맛있기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한 때는 미슐랭 1 스타를 받기도 했다는 듯.  12시 오픈이라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가게 앞에서 기다렸다. 내가 11시 45분쯤 갔는데 내 앞에 이미 네 팀이 이름을 올려놓았더라. 12시 오픈하고 잠시 뒤 입장할 수 있었다. 한 명이라서 카운터석으로 안내받았다. 주위를 둘러 모니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았다. 어르신들이 많은 가게는 무조건 맛있다고 생각하는데, 잘 찾아왔구나 싶었다.


쿄라쿠테이 가게 입구


  나는 소바집에서는 항상 튀김이 딸린 정식 세트를 주문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따뜻한 소바에 튀김 세트를 주문했다. 소바는 쯔유에 찍어먹는 자루소바를 할까 하다가 날이 추워서 국물 있는 따뜻한 소바로 주문했다. 이렇게 해서 세트 가격이 3,000엔으로 가격대는 꽤나 있는 편이고 현금만 받는다. 자리에 앉으면 따뜻한 소바유를 주시는데 그걸 홀짝이고 있으니 찬 바람에 얼어있던 몸이 녹았다. 주방이 오픈 키친이라 분주히 요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소바가 먼저 나와서 받았다. 면이 쉽게 끊기는 걸로 봐서는 주와리(메밀함량 100%) 내지는 메밀 함량이 최소 80% 이상인 듯했다. 그래서 어르신 손님들이 많았던 걸까. 국물은 딱 전형적인 소바 특유의 짭짤한 국물. 눈앞에서 간장 육수에 버섯과 온갖 야채를 넣고 우려내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더 신뢰가 가는 한 그릇이었다. 곧이어 갓 튀긴 바삭한 튀김들이 나왔다. 튀김옷이 얇아서 재료의 식감이 잘 느껴졌다. 튀김은 새우, 버섯, 고추, 가지가 먼저 나왔고, 붕장어로 추측되는 흰 살 생선 튀김이 이어서 나왔다. 같이 내어주신 튀김 소금을 조금 덜어서 살짝 찍어먹으니 이게 행복이지 싶다. 생선을 안 좋아하는 나지만, 이곳의 생선 튀김은 부드럽고 따끈해서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나로서는 만족한 식사였지만, 일본식 담백한 소바와 짠 기운이 많이 느껴지는 국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추천하지는 않는다. 내 양쪽에는 홀로 오신 나이 지긋한 어머님들이 앉아 계셨는데, 두 분 다 말없이 자루소바를 음미하고 계셨다. 혼자서도 느긋하게 식사할 수 있는 곳. 음식 준비도 빠르고, 사람들의 먹는 속도도 빨라서 자리가 금방 비었다. 저녁에는 메밀요리와 함께 술도 많이 드시는 곳 같았는데, 점심시간의 회전율은 꽤나 빠른 듯 하니 앞에 웨이팅이 있어도 조금 기다려볼 만할 듯싶다.


보기만 해도 행복한 조합..
양이 적었지만 맛있었던 튀김, 그 와중에 새우 몸통은 이미 먹어버려서 머리만 남았네




일본식 차와 디저트를 즐기고 싶다면, 카구라자카 사료(Kagurazaka Saryo)


 따끈한 소바 한 그릇하고 나와서 골목을 걸으며 올려다본 하늘은 여전히 흐림. 하지만 흐린 하늘과 카구라자카의 골목이 조화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짠 거 먹었으니 이제 단 걸 먹을 차례지! 골목을 느릿하고 여유롭게 걸으며 찾아간 곳은 '카구라자카 사료 본점'. 구글맵에서는 영어로 'Kagurazaka Saryo'라고 하면 위치가 나온다. 일본식 차가 유명한 곳이라고 하는데, 정식이나 우동, 카레 같은 식사류도 판매한다. 나는 일본식 디저트가 먹고 싶어서 찾아갔다. 일본 느낌 낭낭한 노렌을 걷어 들어가니 차분한 톤의 인테리어가 돋보였다. 점심시간을 살짝 넘긴 시간에 방문해 웨이팅 없이 2층 좌석으로 안내받았다. 여기 말차 디저트가 맛있다고 하는데, 메뉴판을 보니 가을이라 그런지 밤을 활용한 메뉴들이 눈에 띄었다. 몽블랑에 환장하는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몽블랑 말차 파르페'. 차를 잘하는 집이라고 하니 일본차도 마셔보고 싶어서 몽블랑 파르페에 차가 딸려 나오는 세트로 주문했다. 가격은 세금포함 1980엔. 친절한 직원 분이 주문을 받아주셨는데, 카페인이 덜 들어간 차를 마시고 싶어 직원 분께 여쭤봤더니 가고시마의 호지차로 추천해 주셨다.


 이 맘 때쯤 일본을 방문하면 밤을 활용한 디저트를 맘껏 막을 수 있어서 좋다. 특히 카페마다, 백화점 지하 디저트 가게마다 몽블랑을 파는데, 나는 백화점 지하에서 예쁜 몽블랑들을 구경하다가 하나 포장해 와서 숙소에서 먹는 걸 참 좋아한다. 하물며 카페에서 갓 나온 밤 디저트라니, 더할 나위 없지.


차분한 느낌의 거리
카구라자카 사료 입구에서부터 분위기가 좋다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직원 분이 오셔서 오늘날이 많이 춥다며 담요를 주신다. 직원분의 따뜻한 마음씨에 감동.. 곧이어 차가 먼저 나왔다. 뜨끈한 물을 차주전자에 부어 직접 우려 마시는데, 쉽게 우러나는 찻잎이나 물 부어서 금방 드시라고 조언도 해주셨다. 차주전자에 온수를 붓고 잠시 기다렸다가 조심스레 찻잔에 따라낸다. 조용하게, 느릿하게 움직이는 이 일련의 과정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한 모금 머금으니 호지차 특유의 구수하고 쌉싸름한 맛이 확 밀려들어왔다. 쓰지 않은 게 좋다고 했더니 직원분이 부드러운 맛으로 추천해 주신 듯, 가고시마의 호지차는 동그란 보름달 같은 맛이었다. 가게 안의 사람들도 조곤조곤 이야기해서 시끄럽지 않아 좋았다. 여기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흐뭇한 얼굴하고 앉아 있던 와중에, 오늘의 히로인 몽블랑 파르페가 등장했다!

 

맛있었던 호지차

 

 어쩜 이리 아름답게 층층이 쌓아 올렸는지! 말차와 제철 밤을 활용한 파르페지만, 과자와 경단, 젤리, 무스 등을 활용해 파르페 본연의 화려함을 잃지 않는다. 잘 졸여진 밤을 통째로 한 입하니 가을을 씹는 느낌이었다. 말랑말랑한 경단, 오독하게 부서지는 초콜릿 과자, 사부작거리며 입에서 녹는 얇은 패스츄리 모두 저마다 다른 식감으로 먹는 재미가 있었다. 달달한 생크림과 밤크림 사이에 상큼한 블루베리 크림이 들어가 변조를 주는 점도 좋았다. 너무 달다 싶으면 호지차를 한모금하고 다시 부지런히 스푼을 움직였다. 좀 전에 배부르게 소바를 먹고 왔지만 역시 디저트 배는 따로 있나 봐. 너무도 호사스러운 시간을 가졌다. 이곳은 식사메뉴도 괜찮은지 식사를 주문해 먹는 사람들도 많았다. 정원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구성한 창도 운치 있었고, 화장실도 깔끔하니 괜찮았다. 다음에 또 방문하고 싶었던 곳.


몽블랑 말차 파르페의 아름다운 자태
이런 돌길이 카구라자카에 운치를 더해주는 듯


 사료 근처에 일본 천연 화장품으로 유명한 '마카나이 코스메'가 있다고 해서 방문했다. '마카나이'는 식사를 준비하는 시중을 드는 일, 혹은 시중을 드는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의역하자면 식당에서 손님에게 파는 요리라기보다는 식당 직원들이 먹는 요리 같은 개념. 가나자와의 금박가게에서 일하던 여성들의 피부를 지키기 위해 만든 화장품이 시초라고. 최근에는 미용가전업체인 '야만'에 인수되어, 스킨케어 화장품에 집중하며 기존 브랜드 느낌에서 조금 변한 것 같다는 듯. 매장은 깔끔했고, 점원들도 친절했다. 매장이 조용하고 다른 고객이 없어서 둘러보는데 뭔가 더 조심스러운 느낌이었다. 라벤더와 유자허니향 핸드크림 중 고민하다가 유자 핸드크림을 하나 골랐다. 많이 달지 않은 향기. 그리고 이곳의 기름종이가 꽤 괜찮다고 해서 그것도 하나 사기로. 가격이 그렇게 저렴한 편은 아니었지만(핸드크림과 기름종이 총 2530엔), 깔끔하고 정갈한 패키지가 예뻐서 선물용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전통적인 형태의 나무틀의 유리문을 쓰고 있어서 레트로한 느낌을 자아낸다
마을의 전통 있는 화장품 가게 느낌
테스트해 보고 마음에 들었던 유자 핸드크림






보물 같은 공원을 품은 여유로운 동네, 키치죠지


선로드 상점가


 선로드 상점가는 키치죠지역 지척에 있다. 이 상점가를 찾은 나의 목적은 명확했다. 상점가 구경도 좋지만, 무엇보다 사토우(Satou)의 멘치카츠 먹기! 제대로 된 멘치카츠를 먹어본 적이 없기도 하고. 일본 드라마 같은데 보면 사람들이 멘치카츠나 고로케를 사서 벤치에 앉아 먹던데, 그걸 해보고 싶기도 했다. 사토우는 정육점을 겸한 식당으로 질 좋은 고기로 유명한 가게. 긴자에도 지점이 있다고 한다. 키치쵸지 점은 2층에 식당도 겸하는 것 같았는데, 나는 오직 멘치카츠가 목적이어서 테이크아웃 하려고 상점가 들어서자마자 냅다 달려갔다. 도착해 보니 사토우는 개점했는데 멘치카츠가 10시 30분부터 나온단다. 어쩐지 줄 서기 좋아하는 이 나라에서, 맛집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사람들 줄이 안 보인다 했다. 멘치카츠가 워낙 인기 있어서 그런지, 계산대도 멘치카츠 계산줄과 그 외 제품 계산줄로 나뉘어 있었다.


선로드 상점가 입구
멘치카츠 계산줄은 2번, 그 외 계산줄은 1번에서!


 시간이 좀 떠서 상점가 구경을 먼저 해보기로 했다. 사토우 근처에 '오카시노마치오카'라는 과자가게가 보였다. 과자? 못 참지! 하고 들어가 봤더니 가격도 좀 저렴한 듯하다. 구경만 할랬는데, 못 참고 사탕이랑 젤리 종류, 멘치카츠랑 같이 먹을 카루피스를 샀다. 일본 과자종류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방문하길 추천하는 곳.

 

과자를 싸게 파는 가게
종류가 다양해서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상점가 안에는 100엔 샵인 캔두(CanDo)도 있었다. 다이소 같은 곳이라고 보면 되는데,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상품이 많은 곳이라 얼씨구나 하고 들어갔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산리오는 물론이고 오빤쮸, 짱구, 도라에몽, 디즈니 등 캐릭터 제품들과 포토카드 홀더, 인형 옷 등 덕질(타쿠카츠)용 아이템도 있었다. 3월에 왔을 때는 신주쿠 페페점 캔두에서 치이카와, 산리오 키링 인형을 보고 눈이 뒤집혔었는데. (지금도 출퇴근 가방에 한교동 인형이 달려있다!) 여기에도 산리오 키링 인형이 있길래 친구 주고 내 가방에도 달고 다니려고 마이멜로디, 시나모롤, 포챠코, 폼폼푸린을 담았다. 이곳의 제품 대부분이 100엔인데, 산리오 키링 인형 제품은 각 220엔이다. 친구 줄 인형옷도 하나 담고, 귀여운 양말, 캐릭터 지퍼백을 담았는데도 총 1,320엔! 가성비 넘치는 쇼핑이다.


캔두 입구! 자동 입장!
캐릭터 상품들 우측 하단에 내가 좋아하는 산리오 인형들이 보인다
이거 다해서 1320엔!


 10시 20분쯤 다시 사토우로 갔더니 역시 멘치카츠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50개 한정으로 멘치카츠 버거도 나와 있던데, 그것도 간단한 식사용으로 좋을 듯싶다. 하지만 나는 멘치카츠만 먹고 싶었단 말이지. 다 만들어진 멘치카츠를 계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줄은 비교적 금방 줄었다. 멘치카츠는 하나에 270엔, 5개 이상 사면 개당 가격이 250엔으로 내려온다. 점심은 따로 먹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하나만 구매. 현금만 받는 것 같았다.

 

사토우의 멘치카츠를 사기 위해 줄 선 사람들
가게의 고기질도 좋아 보였다!
멘치카츠를 손에 넣었다!




이노카시라온시공원, 이노카시라 벤자이텐


 멘치카츠는 근처의 이노카시라온시공원에서 먹을 생각이었다. 멘치카츠를 가방에 소중히 넣어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은 상점가로부터 걸어서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데, 붐비지 않는 거리 모습과 연륜이 느껴지는 가게 간판들을 보며 걷는 게 즐거웠다. 가는 길에 주인을 얌전히 기다리는 강아지들도 만나고. 물론 이곳도 도쿄 중심가의 동네라, 백화점과 쇼핑몰들도 있었다. 차이라면 심하게 붐비지 않는다는 것 정도. 키치조지 역과 연결된 atre라는 쇼핑몰에서 본 후르츠산도가 눈에 아른거렸지만, '나는 오늘 이 동네에서 점심을 먹을 거다' 하는 생각으로 다른 군것질 생각은 껐다. 곧 이노카시라온시공원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평일 오전이기도 해서, 공원 안은 한적했다. 날씨가 흐려 그런지 더욱 차분한 인상이었다.


올망졸망 주인을 기다리는 의젓한 강아지들
공원입구를 안내하는 사인이 보였다


 조용한 공원. 나는 호숫가 근처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책을 읽거나 탐조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바람도 살살 부는데 나뭇잎 냄새가 묻어나고, 새소리가 들리고. 아, 정말 좋다.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주섬주섬 멘치카츠를 꺼냈다. 아직도 따끈따끈했다. 동그란 멘치카츠를 한입 베어 물었는데 육즙이 예술이다. 튀김옷은 바삭한데, 고기를 너무 잘게 썰지 않아서 식감도 좋았고. 살짝 기름진 느낌마저 맛있었다. 조용한 호수를 바라보며 먹는 맛있는 멘치카츠라니, 최고의 호사다.


 상점가 과자가게에서 산 카루피스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물티슈로 손을 슥슥 닦았다. 호수를 바라보니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를 새가 횟대에 앉아 있었다. 새에 무지한 내가 보기에도, 쉽게 볼 수 있는 새가 아니란 걸 알겠다. 이 공원 안에는 호수가 있어 새들이 많이 모여들기 때문에 탐조하는 사람들도 자주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카메라를 짊어진 사람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새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었다. 좋아하는 걸 바라보는 사람의 순수한 웃음을 보는 건 기분이 좋다. 새들이 놀라지 않도록 나도 조용히 걸어야지 싶었다. 소화 좀 시킬 겸 공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한적한 공원 입구
친구를 그려주고 있는 아마추어 화가, 로맨틱해!
이 와중에 멘치카츠 너무 맛있고요!
시기마다 새들이 찾아오나 봅니다
너희들도 오리배 타러 왔니?
가만히 앉아서 멍하니 있어도 좋을 듯

 

 공원은 꽤나 넓었다. 슬슬 걷다 보니 동물원도 보였고. 하긴 이 공원에 지브리 박물관도 있다고 하니, 규모 있는 공원인 건 확실하다. 그런데 절도 있다는 건 몰랐는데? 걷다 보니 적나라한 붉은색이 시선을 끌었다. 홀린 듯 들어가 구글맵을 찍어보니 '벤자이텐'이란다. 벤자이텐은 본래 인두 힌두교의 신 살라스바티로 예술과 학문을 관장하는 지식의 신이자 물과 풍요의 여신이라고도 한다. 한쪽에 약수터 마냥 물 웅덩이와 작은 바가지가 놓여있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걸로 손을 헹구길래 따라 해 봤다. 벤자이텐에게 공양을 올리면 돈이 들어온다고들 한다. 그런 흑심도 살짝 품고, 새전함에 동전을 넣고 소원을 빌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공원의 커다란 나무며 호수와 조화를 이룬, 멋있었던 사찰. 나는 특별히 종교가 없고, 친구들이나 가족을 따라 교회도 성당도 절도 가봤는데. 일본 여행을 하다 보니 곳곳에 있는 절이나 신사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절과 신사는 기본적으로 자연과 어울리게 지은 곳이 많아서 마음에 든다. 벤자이텐에서도 가만히 분위기를 느끼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이런 곳에서는 늘 다른 사람에게 휩쓸리지 말고 내 중심을 잘 잡고 살아가자는 다짐을 하게 되는데, 절의 분위기가 다짐하는 나를 감싸 안아주는 듯해서 마음이 편해졌다.


호수 옆에 있어서 더욱 멋있었던 벤자이텐
홀린 듯 들어갔다
본당
여기서 손을 씻었다
고즈넉한 느낌
여기 사람들이 동전을 올려놓았던데


 벤자이텐 구경을 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나섰다. 기치죠지 역 쪽으로 가기 위해서 호수를 둘러 걷는데, 사람이 정말로 없어서 걷는 맛이 났다. 조용하고 넓은 공원이다 보니 강아지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는데, 우리 뿌꾸 생각도 나고. 아무튼 오전 산책하기 딱이었던, 멋진 공원이었다. 이 동네 살면 아침저녁으로 산책하면 참 좋겠구나. 벚꽃이나 단풍이 한창때 왔었으면 더욱 좋았겠다 싶었다.


조용했던 공원 산책길




잇푸도 라멘


 원래는 오므라이스 가게에 가려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집이 휴일이어서.. 어떡하지 하다가 눈에 딱 들어왔던 잇푸도 라멘. 이번 여행에서 아직 라멘을 먹지 못했고, 이곳의 진한 돈코츠 라멘을 좋아하기도 해서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12시가 조금 되기 전 방문해서 그런지 웨이팅도 없었다. 입장하면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하게 되는데, 나는 토핑이 모두 올라간 돈코츠 라멘에다가 미니교자와 쌀밥 세트로 주문했다. 가격은 1500엔. 에너지 넘치는 스태프가 카운터 석으로 안내해 주셨다.


 '잇푸도'도 '이치란'처럼 라멘 체인점인데, 이치란 라멘의 인기가 너무 올라가서 요즘 웬만한 이치란에는 웨이팅이 있더라. 올해 6월에는 오사카의 아베노 텐노지 근처의 이치란에 갔는데 거의 50분을 기다려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심지어 밤 9시 무렵이었는데. 이치란 맛있긴 한데 그 정도 줄 서서 먹을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주변 다른 식당이 다 문 닫은 시간이라 어쩔 수 없었지만..  일본은 로컬의 작은 라멘집도 충분히 맛있으니까. 아무튼 가끔 이런 라멘이 먹고 싶어 질 때가 있는데, 웨이팅이 없다면 바로 들어가야지!


잇푸도 키치죠지점


 주문하고 자리 안내받아 앉고 얼마 안 되어 라멘이 나왔다. 진하고 짭짤한 수프. 고명 다 올라간 걸로 골랐더니 한결 더 푸짐하다. 일본 라멘 대부분이 그렇지만, 잇푸도 라멘도 내 입엔 좀 짠 편이라 밥이랑 같이 먹는 게 좋다. 그리고 교자도 빠질 수 없지! 이치란에서는 교자 메뉴가 없어서 아쉬웠는데, 잇푸도에는 있다! 고추나 베니쇼가(생강초절임), 마늘이 필요하면 스태프에게 요청하면 된다. 후추나 간장 같은 양념은 테이블 위에 비치되어 있다. 뜨끈하고 진한 국물 한 모금하면 찬 바람에 얼었던 몸이 살짝 풀리는 기분이다. 초간장에 후추를 풀어서 교자 찍어먹으니 꿀 맛! 밥은 짠맛에 조화를 맞추기 위해 거들뿐. 식사하다가 양이 아쉬우면 라멘 토핑이나 면추가, 교자 같은 메뉴 추가도 스태프에게 요청할 수 있다. 여기 스태프들은 에너지가 넘치는데 친절하기도 해서(소위 말하는, 고객 입장하면 우렁차게 '이랏샤이마세!!'가 가능한 매장) 무언가 요청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나는 생강초절임을 좋아해서 라멘 먹으면서 꼭 곁들이는 편인데, 요청하니 스태프분이 금방 듬뿍 가져다주셨다. 덕분에 느끼함을 조절하며 식사할 수 있었다. 한참 열심히 먹고 있는데, 본격적인 점심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점차 들어서더니 금방 만석이 되었다. 역시나 인기 많은 가게. 글로벌 지점도 몇 군데 있다는데, 한국에도 들어왔으면 좋겠다.


든든한 점심식사
'24년 직원 채용 하고 있나 보다, 추가 메뉴 주문에 대한 안내도 벽에 붙어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근처 도큐 백화점을 구경했다. 조용한 동네라도 역시 백화점과 쇼핑몰이 빠지지 않는 도쿄. 여기 8층에 100엔 샵, '세리아'가 있어 여유롭게 구경하다가 다시 신주쿠로 향했다. 도쿄는 역시 넓고, 지하철 타고 조금만 이동하면 지역에 따라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멋진 곳이다. 카구라자카와 키치조지, 이 두 동네를 맛보기 하면서 다음에 오면 더 여유롭게 둘러보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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