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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an 14. 2024

도쿄, 이거 진짜 맛있었는데..

소바부터 스키야키까지, 도쿄에서 맛있게 먹은 음식들

 일본 여행을 가면 하루에 최소 2만 보 이상은 걷는다. 교통비가 비싸기도 하고 음악 들으며 풍경 보면서 걷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지하철 한 두 정거장 정도는 그냥 걸어 다니는 편. 평소 보다 두 배 이상 많이 걷는데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보면 묘하게 더 토실토실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도 그럴게, 먹는 것도 한국에서의 두 배 이상이기 때문에! 나는 날 생선을 먹지 않아서 초밥 종류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데도, 일본에는 맛있는 게 정말 많다. 편의점만 들어가도 과자, 샌드위치, 논알코올 맥주, 우유, 디저트 종류를 고르느라 눈 돌아가고 그걸 또 앉은자리에서 부지런히 먹어치운다. 하물며,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나기라도 하면 위장 본격 오픈! 혼자 여행 다니며 먹었던 인상 깊었던 음식들을 공유해 본다.


1. 니혼바시 카모소바 전문점 ‘아마네’

(2023년 11월 14일 방문)


아마네의 전경

 

 교토 스타일의 카모소바(오리고기 소바) 전문점이다. 이 날 가마쿠라를 여행하고 조금 몸이 으슬으슬했었는데,  도쿄역 가는 길에 뜨끈한 국물의 온소바가 먹고 싶어서 찾아간 집. 사실 이곳은 내가 좋아하는 일본 연예인 '아라시'가 하는 방송인 '아라시니시야가레'의 맛집 퀴즈 데스매치에도 나왔던 집으로, 쇼짱이 여기 카모소바의 국물을 한 스푼 마시고는 '아~ 교토다~' 하고 말한 적이 있다. 그게 정말로 맛있어 보여서 솔깃하기도 했다. 구글맵에서는 오후 5시 30분부터 저녁 영업이라고 되어있었고, 영업시작 10분 전에 도착했는데 가게 앞을 직원 분이 물청소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손님맞이 하기 전에 가게 앞에서 정갈하게 물 뿌리며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가게는 오모테나시(최고의 환대)가 있어 보이고 기분이 좋다. 전통 있는 가게 같아 보인달까. 기웃기웃하고 있는 나를 보더니 직원분이 들어오셔도 된다고 해서 쓱 입장해 카운터 좌석에 안내받았다. 저녁 먹기에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가게 안 손님은 나보다 먼저 오신 남자분 한 분밖에 없었다.


기본 세팅, 메밀면 튀긴 것과 따끈한 메밀차를 주신다


 메뉴판에는 다양한 소바 메뉴와 튀김종류, 오리고기 종류가 있었는데, 나는 역시 이곳의 대표메뉴 같아 보이는 따뜻한 카모소바를 주문했다. 소바면 튀긴 것과 따뜻한 메밀차도 내주셨다. 카운터 너머로 분주히 요리를 하는 모습이 보여서 기다리는 재미가 있었다. 곧이어 뜨끈한 소바 한 그릇이 나왔다.


등장한 카모소바! 산초가루도 같이 주셨다

 

 이곳 소바에는 대파가 많이 들어간다. 대파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취향 제대로 저격! 국물부터 한 모금 먹었는데 몸이 사악 풀리는 기분이었다. 소바 특유의 짭짜름한 맛인데, 대파의 시원함이 더해진 느낌. 파만 건져먹어도 맛있었다. 오리고기도 쫀득쫀득한 식감. 면은 잘 끊어지는 것으로 봐서, 주와리(메밀 100%) 내지는 메밀 함량 최소 80% 이상이 아닐까 싶었다. 밀가루 함량 높은 소바와는 느낌이 확 달랐다. 대파를 곁들여 면을 먹으니까 물리지도 않고 후루룩 들어갔다. 직원분이 산초가루를 넣어 먹어도 맛있다고 하면서 주셨는데, 소바를 절반 정도 그냥 먹다가 산초 가루를 넣어 먹으니 또 새로웠다. 향신료를 좋아하는 편이라 산초 특유의 펀치가 느껴지는 것도 취향이었다.


 나는 많이 먹는 편이 아니고 여행하면서는 중간중간 간식을 먹으며 다녀서, 식사할 때 요리를 완식 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일본 면 요리는 대부분 국물이 짜서 좀 남기는 편인데, 이곳에서는 면은 전부 먹어치우고 국물도 많이 마셨다. 그만큼 취향에 잘 맞았던 카모소바. 가게는 한 층짜리이고 카운터 석과 테이블 몇 개가 놓여 있다. 식사를 하는 중에 다른 손님들이 조금씩 들어왔는데, 확실히 젊은 사람들보다는 중년의 손님들이 많았다. 가게 분위기도 차분한 편이고, 직원분이 친절하신 데다 다 먹고 나올 때 따라 나와서 마중인사까지 해주셔서 기분이 좋았던 가게. 카모소바 1200엔.


맛있었던 한 그릇!



https://maps.app.goo.gl/Ud3mVf5cqkFCvF6XA

 



2. 신주쿠 오뎅야 '오타코' 신주쿠점

(2023년 11월 13일 방문)


 도쿄 여행을 하면서 회사 동료를 만난 적이 있다. 서로 도쿄 여행을 한다는 것은 사전에 알고 있었지만, 나는 디즈니 랜드, 동료는 디즈니 씨에서 종일 실컷 놀다가 신주쿠로 돌아온 타이밍이 딱 맞았던 날이었다. 친한 친구였기 때문에 둘이서 식사하는데 부담이 전혀 없는 사이. 하지만 동료는 남편분과 함께 여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졸지에 처음 뵙는 동료의 남편 분과 셋이서 함께 밥 먹기라는 높은 레벨의 미션을 만족시키면서도, 추운 날씨에 어울리는 메뉴를 생각하다 보니 떠오른 것은 오뎅! 동료도 나도 숙소가 신주쿠에 있어서 근처의 오뎅야를 찾다가 '오타코'라는 곳을 발견했다. 신주쿠점이라고 붙어있는 걸 보니 체인점인 듯했다.


 평일 저녁의 8시 넘은 시간에 도착했는데 가게는 만석이었다. 직원분에게 우리는 기다리겠다는 것을 어필하니, 가게 앞에서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안내를 받았다. 기다리면서 저마다 디즈니에서 어떻게 즐겼는지 잔뜩 들떠서 이야기하다 보니 20분쯤 기다려 입장할 수 있었다. 가게의 분위기며 손님들을 보니 현지인들에게 꽤나 맛집으로 소문난 곳인 듯했다.


 2층 자리로 안내받았다. 메뉴는 영어와 한국어로도 써져 있기 때문에 주문이 어렵지 않다. 다 맛있어 보여서 고민하다가 추천 모둠 8종에다 한펜, 곤약, 규스지(소힘줄) 등을 추가했다. 생맥주와 따뜻한 사케, 우롱차도 함께 주문. 기다리며 둘러보니 우리 빼고는 다 현지사람들인 듯했고, 술을 곁들이는 오뎅야임에도 가게가 시끄럽지 않았다. 구글 리뷰에는 흡연 관련한 이야기가 몇 개 있던데, 지금은 흡연금지인지 담배냄새도 나지 않았다.


 곧이어 큰 접시 가득 음식이 나왔다. 일본의 오뎅은 한국과 달리 국물이 자작하고 다양한 재료들이 푹 익혀져 나온다. (이 가게에는 없는 것 같았지만 나는 오뎅야에서 파는 토마토, 치즈도 정말 좋아한다) 여러 가지를 먹어보는 재미가 있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건 무와 한펜. 다시가 충분히 스며든 부드러운 무는 겨울밤에 먹으면 최고다! 집에서 만들면 좀처럼 구현할 수 없는, 육수가 충분히 스며든 진한 색의 무. 그리고 마를 갈아서 반죽에 넣은 부드러운 식감의 오뎅인 한펜도 별미다. 두부 등 다른 재료들도 맛있었다. 짜지 않고 감칠맛 충분. 사실 오뎅은 뜨끈하게 먹는 게 가장 맛있기 때문에 그때그때 원하는 걸 주문하는 게 좋지만, 우리는 인원이 셋이다 보니 나눠서 주문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한 번에 꽤 많이 시켰고 음식들도 금방 줄었다. 배는 부른데 뭔가 입이 심심해서 벚꽃새우튀김도 주문했다. 소위 한국 술집에서 말하는 새우깡. 배 부르다고 하면서도 입으로는 갓 튀긴 고소한 작은 새우가 자꾸 들어갔다. 우리는 주문하지 않았지만 오뎅 외에도 회나 튀김 메뉴도 있는 듯하다.


우리가 주문한 오뎅들

 

 이런 소박한 오뎅야는 사람을 가깝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뜨끈한 오뎅에 저마다 좋아하는 음료를 곁들이면서 천천히 즐기는 시간. 음식의 힘인지, 우리는 낯설다는 감정을 느낄 새 없이 오늘 디즈니에서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어제는 어딜 갔고, 내일은 또 어딜 구경할 것인지 조잘조잘 떠들었고 그러다 보니 어느덧 가게 마감 시간이 다가왔다. 오뎅의 힘(+동료와 그녀의 남편은 술의 힘)인지 몸이 데워져서 신주쿠의 밤거리가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1층에는 카운터 좌석도 있기 때문에 혼자 가서 먹기도 괜찮은 가게다. 오뎅은 종류마다 한 두 개씩 나오기 때문에 혼자서도 여러 개를 맛보기 좋을 듯. 단체로 온다면 식사를 하고 2차로 오기에도 좋은 곳이다. 아주 훌륭한 킥이 있다기보다는 전반적으로 무난하게 맛있는 가게였다. 생맥주 1잔, 따뜻한 사케 360ml, 우롱차 1잔, 모둠오뎅 8종+추가 주문 서너 개, 벚꽃새우튀김 합쳐서 총 6,790엔.

  

좋은 밤이었다


https://maps.app.goo.gl/xnMaTfgTYyX71vDYA




3. 신주쿠 '야키니쿠 라이크' 신주쿠 서출구점

(2023년 11월 12일 방문)


 혼자 여행하면서 야키니쿠 먹기는 쉽지 않다. 괜찮은 야키니쿠 집은 예약을 하지 않으면 한없이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고 가격도 비싸다. 1인 손님은 안 받는 가게도 있고. 혼자서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야키니쿠집을 찾다가 알게 된 야키니쿠 라이크는 가성비가 좋은 1인 야키니쿠 체인점인이다. 신주쿠 서쪽 출구점은 JR 신주쿠역에서 도보 15분 정도 거리에 있다.


요란한 가게 입구

 

 평일 저녁 7시 즈음 방문했는데 웨이팅이 있었다. 그래도 오래 앉아 먹는 곳은 아니어서 줄은 금방 빠진다. 직원이 안내해 주신 자리에 앉았다. 다 1인 좌석이고, 자리마다 태블릿이 붙어있다. 이 태블릿 통해서 주문하면 되는데, 메뉴명은 그림과 함께 영어로도 나와있다. 규탄(소 혀) 부위를 많이 드시는 것 같은데 나는 규탄을 못 먹기 때문에 삼겹살, 소갈비, 안창살 등의 부위를 타레(소스)로 주문. 이런 곳에 오면 소금구이보다는 양념구이로 먹고 싶어 진다. 쌀밥+김치+미역국 세트가 있어서 이것도 주문했다. 가성비 고깃집인 만큼 대부분 셀프서비스다. 자리에 정수기처럼 물을 따라 마실 수 있는 기계가 있고, 고기 찍어 먹는 소스들도 종류별로 있어 취향 따라 고르면 된다. 자리에 있는 서랍을 열면 수저랑 물수건도 있다.

  

태블릿 통해서 주문

 

 고기는 금방 나왔다. 작고 귀여운 불판에 직접 구워 먹으면 된다. 직원분이 불판을 켜주셨고 불 조절 하는 법도 알려주셨다. 얇은 삼겹살부터 구웠다. 고기가 얇은 데다 양념 고기라서 타기 쉬우니 조심히. 잘 익은 뜨끈한 고기를 흰쌀밥과 함께 먹으니 꿀맛이다. 쉬는 타이밍 없이 계속 흡입하기 위해 쉴 새 없이 고기를 올렸다. 안창살, 갈빗살은 조금 더 두툼해서 씹는 맛이 또 달랐다. 타레는 감칠맛과 단맛, 짠맛이 잘 어우러졌고, 고기는 부드러워서 먹으면서 금세 행복해졌다. 중간중간 미역국과 김치도 먹어가며 페이스 조절을 해준다. 여기 미역국은 뭔가 2프로 부족한 맛이지만 그래도 목을 축여가며 씹어야 음식이 잘 들어가니까. 김치는 조금 달달한 느낌. 뭔가 한식 느낌을 내고 싶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중간중간 기름이 떨어져서 불이 확 일어나는 경우도 있으니, 불조절을 잘해나가면서 아까운 고기가 타지 않게 뒤집어 가며 구워준다. 내가 먹을 고기를 내 페이스에 맞게 굽는 거, 이게 또 은근히 재미있다.


고기가 금방 나왔다
익어가는 고기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든든한 한상


 가게에는 나처럼 혼자 온 손님들이 많았다. 주변 사람 신경 안 쓰고 맘껏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계산은 가게 안쪽의 키오스크에서 한다. 현금 결제를 하려는데 지폐 넣는 곳이 어딘지 헤매고 있으니 직원분이 오셔서 알려주셨다. 직원분들이 은근히 손님들을 보고 있나 보다, 고마워요! 환기구가 잘 되어있는지 고기냄새가 그리 심하게 베지도 않았다. 가볍게 고기 먹고 싶을 때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총 2,040엔.


영수증! 야키니쿠를 양껏 먹고 2천 엔이면 가성비 최고다!


https://maps.app.goo.gl/fxNx8KLHWfn5H3pe7




4. 신주쿠 다카시마야 백화점의 ‘Breizh Cafe Creperie’

(2023년 3월 25일 방문)


 브런치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일본 드라마 ‘나기의 휴식’에서 봤던 ‘갈레트’라는 것이 궁금해져서 선택한 곳. 이곳은 다카시마야 백화점 식당층에 위치해 있는데, 갈레트와 크레페 맛집으로 유명하다. 오모테산도에도 지점이 있다고 한다.


 주말에 오픈 시간 10분 전에 도착했는데 역시 브런치 집이라 그런지 벌써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평일 저녁에도 여길 지나갔었는데 그때는 이 가게, 한산했다고. 다른 데 갈까 싶었지만 비가 오고 있었고, 다른 곳 찾기도 귀찮아서 나도 줄을 따라 섰다. 원래 이곳은 야외 테라스 좌석이 인기라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좌석 수가 더 줄어든 상황이었다.


 마침내 오픈 시간이 되고 예약 손님부터 먼저 들어갔다. 이 레스토랑은 예약도 받는 모양이었다. 실내 테이블 좌석부터 사람들이 차곡차곡 들어간다. 딱 내 앞에서 테이블이 만석이 되었다. 좀 더 기다려야겠구나 하고 앉아있는데, 점원이 와서 몇 명인지 묻더니 실내의 카운터 좌석이나 야외 좌석 중에서 어디에 앉겠냐고 하셨다. 비가 오는데 야외에도 앉을 수 있는 거냐고 물었더니 파티오 아래 테이블은 비가 안 들어와서 괜찮을 거라고. 대신 비가 와서 날이 좀 쌀쌀한데, 자리에 전기매트를 깔아 뒀다고 했다. 바글거리는 실내에 앉기 싫기도 하고 빗소리 들으며 식사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테라스에 앉겠다고 했다. 직원 안내를 받아 테라스로 가니 생각보다 분위기가 더 좋았다. 맑은 날이면 명당이었을 자리였지만, 비가 오는 풍경도 나름 낭만 있었고. 무엇보다 자리에 뜨끈하게 열이 오늘 전기 매트가 깔려 있었던 데다, 직원이 담요도 하나 가져다주었다. 여러모로 배려해 주는 듯해 기분이 좋았다.


비 오던 야외테라스 좌석, 맑은 날에는 여기 앉기 위한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고
이 달의 스페셜! 메뉴명이 너무 어렵다...


 직원들이 단정하게 맞춰 입은 아웃핏에서도 느꼈지만 매장에서 직원 서비스 교육을 신경 써서 시키는 듯싶었다. 메뉴판 보다가 주문하려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니 바로 다가오셔서 주문을  받아주셨다. 구획별로 담당이 있고 손님들을 주시하고 있는 듯. 나는 아스파라거스와 하몽이 들어간 식사용 갈레트를 골랐다. 디저트용 갈레트나 크레이프도 맛있어 보였지만, 그래도 브런치라면 좀 짭짜름한 게 취향이라. 코스로 준비되는 세트 메뉴도 있었고 주류 메뉴도 준비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더 고급 식당이구나 하고 느꼈다.


내가 주문했던 'Galette asperge'


 가게에 손님이 많아서 꽤 기다려야겠다 싶었는데, 음식이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얇은 전병 같은 반죽 안에 반숙 계란과 아스파라거스 같은 야채, 치즈, 하몽이 들어있었다. 반죽 자체만 먹어도 담백하고 쫀득쫀득하니 훌륭했다. 밀가루가 아니라 메밀가루를 쓴 것 같았다. 속재료도 다양하게 들어있어서, 큼직하게 잘 썰어서 입 안 가득 우물우물하고 있자니 느껴지는 맛이 조화로웠다. 짭조름한 하몽에 부드럽게 잘 구워진 아스파라거스가 반죽과 잘 어울렸고, 하몽의 짠맛을 반숙계란이 잘 잡아준다. 생각보다 크기도 작지 않아 적당히 배가 부른 느낌.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여유롭게 한입씩 먹다 보니 참 호사스러운 시간이다 싶었다. 추울까 걱정했는데 자리에 깔린 전기장판 덕에 따끈했고, 중간중간 직원분이 괜찮은지 확인하러 와주셔서 황송할 지경. 갈레트 하나를 먹어치우고 나니, 달달한 게 먹고 싶어서 직원분을 불러 메뉴판을 요청했다. 아이스크림이 눈에 띄어서 직원에게 맛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소바와 캐러멜 맛 아이스를 추천해 주셨다. 소바맛이라니, 유니크한 것 같아서 그대로 달라고 주문했다. 곧이어 귀여운 아이스크림 두 덩이가 나왔다.


아이스크림이 어른의 맛이었다!


 소바 맛은 뭔가 말로 표현이 어려운데 아침햇살 음료수에 파우더감이 느껴지는 맛. 캐러멜 맛은 달기만 한 캐러멜이 아니라 소금 맛과 약간 태운 듯한 캐러멜 맛이 깊게 느껴져서 신기했다. 아이스크림이 이런 복합적인 맛이 나다니. 이것도 삭삭 잘 긁어먹었다. 만족스러운 식사였고 다음에 오면 디저트 종류를 먹어보고 싶다. 갈레트 2180엔, 아이스크림 780엔.


https://maps.app.goo.gl/bSgxhVNje8RPRqVAA




5. 긴자 미츠코시 백화점 '모리타야'


 도쿄 여행을 하면서 꼭 챙겨 먹고 싶었던 것은 스키야키. 사실 간사이식 스키야키를 좋아해서 일본 여행 갈 때마다 먹는 편이고, '22년 11월에 교토 여행 갔을 때도 교토역 이세탄 백화점에 있는 모리타야에서 스키야키를 먹었었는데. 이번에는 도쿄 긴자의 모리타야에 가게 되었다.


(후쿠오카에서 먹었던 닌교초 이마한 스키야키도 맛있었기 때문에 신주쿠 다카시마야 백화점 닌교초 이마한에 오픈런 시도했음에도 종일 예약이 다 차있다고 했다. 유명한 레스토랑은 역시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음.)


 긴자 놀러 갔던 날 근처 스키야키 집 없나 찾아봤는데, 당일 워크인으로 식사는 불가능했다. 아마 저녁 타임이라 자리 찾기가 더 힘들었던 듯. 반쯤 포기하는 마음으로 다른 저녁 메뉴를 생각하며 긴자 미츠코시 백화점 레스토랑층에 들렀는데 웬걸, 모리타야가 있는 거다! 저녁 6시가 조금 안된 시각, 혼자인데 식사 가능하냐고 여쭤보니 가능하다고 메뉴판 먼저 보면서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셨다.


긴자 미츠코시 백화점에 있는 모리타야
스키야키와 샤브샤브 메뉴

 

 이곳의 대표 메뉴는 스키야키, 샤브샤브, 스테이크다. 내가 정한 것은 스키야키 마츠 코스(인당 9,350엔, 점심은 이것보단 가격대가 더 싼 듯하다). 전채요리 두 개랑 흰쌀밥, 디저트가 따라 나온다. 주류 메뉴에 논 알코올 맥주가 있길래 그것도 한 병 주문했다. 6시가 되자 자리로 안내받았는데, 저녁 시간대 오픈하고 바로 들어가 그런지 아직 손님은 나와 두어 테이블 밖에 없었다.


모리타야 내부
기본 세팅

 

 기모노 차림의 친절한 직원분이 접객을 해주신다. 가격대가 있는 스키야키를 먹을 때는 이렇게 친절하게 코스 준비를 다 해주고 눈앞에서 요리해 준다는 게 좋다. 뭔가 음식이 더 맛있어지는 느낌.


기린의 논알코올 맥주
첫 번째 전채 요리

 

 첫 번째 전채 요리로 레몬 젤리를 올린 데친 관자가 나왔다. 나는 해산물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지만 관자가 두툼하니, 신선함이 느껴졌다. 레몬 젤리와 함께 먹으니까 비리지도 않고 상큼하게 입맛을 돋워줘서 좋았다. 젤리 위에는 민트 잎 같은 게 올려져 있었던 것 같다.


두 번째 전채요리

 

 두 번째 전채요리는 제철 야채 구이와 조개, 로스트비프였다. 다 한 입 거리로, 조개는 선호하지 않아서 조개 빼고 다 먹었다. 관자는 좋아하면서 조개는 먹지 않는 이상한 내 입맛. 차갑게 나온 로스트비프는 평범했지만, 야채들이 향긋하고 신선하니 맛있었다.


전채요리에 이어 나온 야채와 소고기


 이후 본격적인 스키야키가 세팅되었다. 가고시마와 나가노의 소고기가 나왔다. 직원 분이 날달걀을 작은 그릇에 깨서 넣고 휘휘 저어서 주셨다. 이는 이제 시작되는 행복한 스키야키 타임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 군침이 흐르기 시작한다. 직원분이 열이 오른 팬에 소 지방을 두르고 굵은 설탕을 뿌리고 질 좋은 소고기를 올린 뒤 소스 간장을 두른다. 일련의 움직임에 낭비가 없다. 고기가 팬에 올라갈 때 나는 그 치이익 소리와 풍겨지는 고기 냄새. 스키야키 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다. 숙련된 직원분의 손놀림을 홀린 듯이 보다가 영상을 찍어도 되냐고 허락을 받고 그 장면을 찍었는데, 볼 때마다 군침이 돈다.


  고기는 얇아서 금방 익는다. 직원분이 잘 익힌 소고기를 달걀을 풀어놓은 그릇에 얹어주신다. 고기 사이즈가 꽤 크지만 얇은 데다 부드러워서 자르지 않고 입안 가득 욱여넣는다. 곧 느껴지는 짭짤하고 달달하고 부드럽고 적당히 기름진 고기의 맛. 날달걀이 자극적인 소스 맛을 중화시켜 준다. 맥주가 절로 들어갔다. 캬아, 이 맛이지. 돈 쓰는 보람이 있는 맛.


자작한 육수에 잘 구워지는 고기와 야채들, 보기만 해도 뿌듯하다
흰쌀밥과 곁들여 먹으니 더할 나위 없다

 

 곧이어 흰쌀밥과 진한 된장국, 야채 절임과 호지차를 내주셨다. 팬에 남은 고기와 야채를 다 올려주고 불을 낮춘 뒤, 천천히 식사하시라며 직원은 물러난다. 이런 사치스러운 한 상이라니. 부드러운 고기 한 점, 육수를 머금어 촉촉해진 파 한 점, 맥주 한 모금. 많이 걸었던 하루의 피로가 싹 풀리는 맛이었다.


디저트로 나온 차와 과일


 식사를 느릿느릿 마치면, 직원분이 지켜보다가 디저트를 내줄까 여쭤보신다. 음식이 나오는 타이밍이 다 너무도 적절했다. 배가 부르다 느낀 게 무색할 만큼 달달하고 상큼한 과일은 또 잘 넘어갔다.


 비 오는 평일 저녁이라 그런지, 가게 안이 북적거리지 않아 좋았다. 가방을 두는 곳, 마스크 넣는 봉투, 따끈하게 데운 물수건 등 요리 외의 요소도 섬세했고, 직원분의 접객도 기분이 좋았다. 느긋하게 음식을 즐기고 식사할 수 있는 곳이다. 1인 스키야키 저녁 마츠 코스 9,350엔.


https://maps.app.goo.gl/gUPmy683PrBvzrUU9?g_st=ic




6. 신주쿠 루미네 1 '아후리 라멘'

(2023년 3월 24일 방문)


  아후리 라멘은 유자라멘으로 유명하고, 유자 특유의 맛에 호불호가 좀 갈리는 편이라고 한다. 나는 진한 돈코츠 라멘이나 파이탄계(닭육수) 라멘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유자처럼 상큼한 맛도 좋아해서 기대하며 찾아갔다. 라멘이라고 하면 기름지고 구리구리한 냄새(특히 돈코츠)가 나는 경우가 많은데, 아후리 라멘은 상큼하고 가벼운 맛이라 특히 여성 고객들 사이에서 인기라고.


 아후리 라멘 신주쿠점은 신주쿠역 루미네 1의 지하 2층에 위치하고 있다. 해당 층은 백화점 지하 식당가 푸드코트 느낌이라 다소 번잡하다. 이곳 아후리 라멘도 여유롭게 식사할 수 있다기보다는, 음식이 빠르게 나와서 후다닥 먹을 수 있는 느낌이었다. 최근 유행하고 있다더니 금요일 저녁에 가니까 기다리는 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래도 회전율이 좋아서 금방금방 빠진다.


아후리 라멘 웨이팅
기다리면서 메뉴를 고민한다, 국물라멘 종류와 토핑,
이건 찍어먹는 츠케멘 종류


 국물이 있는 유자소금라멘과 면을 소스에 찍어먹는 종류인 유자츠케멘 중 뭘 먹을까 고민하다, 츠케멘으로 결정. 둘 다 먹어본 사람들의 후기 보니까 츠케멘 쪽이 호불호가 덜하다고 한다.


 주문은 매장의 키오스크에서 한다. 면 양은 보통과 곱빼기가 있는데 나는 보통으로 선택했다. 중간에 고명을 고르는 단계도 있다. 육수의 기름짐(닭기름으로 조정하는 듯)도 연하게/진하게를 선택할 수 있고, 기본 고명으로 올라가는 고기를 치킨으로 무료로 변경할 수 있다. 면도 소바면(+137엔) 혹은 곤약면(+164엔)으로 변경할 수 있다. 산뜻하게 먹고 싶거나 칼로리를 낮추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선택지를 주기 때문에,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일본 라멘의 묵직한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기본에다가 로스트 차슈를 추가했고 가격은 1840엔. 라멘치고는 가격이 꽤나 나간다. 키오스크에서 계산을 완료하면 영수증이 나오고 그걸 직원에게 주고 잠시 기다리니, 자리를 안내해 주셨다. 전 좌석이 다 카운터석이고 테이블은 없었다.


영수증, 자리에 식초며 시치미 같은 조미료가 있다
마침내 나온 나의 유자츠케멘!

 

 조금 기다리니 츠케멘이 나왔다. 면발이 유난히 탱글탱글 쫄깃했다, 마치 우동 같은 느낌. 고명도 푸짐하고, 찍어먹는 소스는 짭짜름하면서도 유자 특유의 상큼함이 전해져서 느끼하지 않아 좋았다. 약간 싱겁게 먹는 걸 선호하는 내게 일본의 국물 있는 라멘은 내 입에 짜기 때문에 먹으면서도 죄책감이 드는데, 츠케멘은 소스 찍어먹는 정도에 따라 염도를 내가 조절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옵션으로 추가한 로스트 차슈가 불향이 제대로 느껴져서 정말 맛있었다. 반숙란 맛도 평타 이상. 돼지고기 토핑에, 계란, 야채와 김이 조화롭게 올라가 있으니까 이거 라멘이지만 위에 부담스럽지도 않고 건강에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면 양을 보통으로 시켰더니 금세 한 그릇을 뚝딱했다. 아무래도 내 입에 잘 맞아서 더 잘 먹었던 듯. 진한 돈코츠 라멘 계열보다 한결 덜 부담스러우면서도 중독성이 있는 맛. 다음에 방문하면 곱빼기로 먹어 봐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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