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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회사 안의 일은 결국 사람의 일

일은 혼자 할 수 없다

by 산들

4번째 회사를 다니며 배운 것이 있다면, 회사는 생각보다 더 사람의 힘으로 돌아가는 구조라는 것이다. 규모가 큰 회사도 시스템 자체에 의지하기보다는 여러 부서의 협업의 산물이나 아이디어로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에이스'나 '정신적 지주'같은 포지션의 사람이 생겨나는 듯하다. 이직을 겪으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성격도 취향도 업무 스타일도 제각기 조금씩 달랐지만 일 잘하는 사람은 결국 성격 좋은 사람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일 잘하지만 성격이 독선적이라 말 한마디 건네기 어려운 사람보다는 일 실력은 보통이지만 성격이 유해서 누구와도 잘 섞이고 부담 주지 않는 사람과 일하고 싶달까. 후자의 사람이 일정 비율 있는 조직은 주니어가 번아웃 오는 확률도 낮은 듯하다. 측정 지표가 왜 주니어 냐면, 팀 분위기가 안 좋을 때 가장 잡일을 떠맡고 압박을 많이 받는 집단이 주니어들이기 때문이다.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조직을 만드는 데에는 정말로 소속된 사람들의 퀄리티, 그중에서도 성향적인 퀄리티가 중요하다.



1. 성과보다 중요한 건 ‘사람’

회사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건 일의 난이도가 아니라 사람의 관계다. 기획안을 잘 써도, 데이터로 설득해도, 결국 그걸 ‘함께 추진할 동료’를 얻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나는 플랫폼 기획/마케팅 관련 업무를 하고 있고 지금은 리뉴얼 프로젝트의 프로젝트 매니저(PM)를 맡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개발자, 디자이너, 고객센터, CRM 담당자, 개인정보담당자, 법무팀, 구매팀, 회계팀 등 다양한 부서의 담당자 및 대행사 담당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사람의 성격이 워낙 다양하기에 모두 나와 일하는 스타일이 같을 수 없다. 누군가는 이메일이나 메신저로 소통하는 걸 좋아하고 누군가는 대면회의를 선호한다. 누군가는 이슈 발생 시 바로 수면 위로 띄워 전체 공유하고 해결하기를 원하고 누군가는 직접 관계된 인원들이 어느 정도 해결을 한 뒤 공식적으로 공유하기를 원한다. 모두 다른 업무 스타일을 서로 맞춰나가면서 일이 진행되는데, 그 사이에서 PM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의견을 모아 끌고 나가는 역할을 맡는다. 여러 실무자들을 각자의 영역에서 병목현상 없이 일할 수 있게 하고 그걸 한데 그러모으고 납기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계획한 마일스톤대로 무난히 움직이도록 프로젝트를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꼭 예상치 못한 이슈들은 발생하고, 그 와중에 또 사이가 좋지 않은 멤버들이 있을 수 있다. 그걸 어느 정도 봉합시키지 않고서야 일이 진행되지 않기에, 나도 분위기 읽는 눈치와 넉살이 많이 늘었다. 개인적인 경험 상, 프로젝트는 엄격하게 가기보단 다소 유연하고 말랑한 분위기를 형성해 진행하는 것이 나은 듯하다. 딱딱한 분위기로 가는 경우 이슈가 발생했을 때 비난받을까 봐 숨기거나 상황을 공유하는 게 늦어질 수 있고 그게 나중에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진행 사항에 대해 있는 그대로 빠르게 공유하고 부족한 부분들을 서로 서포트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프로젝트 멤버들끼리 조금은 친해질 수 있도록 같이 밥을 먹는다든지, 업무 외 라포를 형성한다든지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생활을 공유하고 가깝게 지내라는 의미가 아니다. 종종 다 같이 카페로 가서 커피 마시면서 캐주얼하게 의견 교환하는 자리를 만들어보고, 날이 좋은 금요일 오후에는 멤버들끼리 회사 근처를 같이 산책한다든지 하는 정도가 좋겠다. 특히 PM이라면 업무 진척사항과 함께 멤버들의 컨디션도 살펴야 하는데, 멤버들이 좋아하는 취향이나 일하는 스타일을 고려해서 거기에 맞춰주는 것이 필요하다. (PM은 마치 메타몽처럼 이리저리 변신해야 하는 존재!)


비단 업무를 리딩하는 PM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들과 업무를 함께 하는 직장인이라면, 나와 잘 안 맞는 사람과도 일해야 하는 경우가 당연히 발생할 텐데 '저 사람은 왜 저럴까'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럴 수도 있지~'하고 쿨하게 넘어가는 것이 나의 정신건강에도 조직의 분위기에도 이롭다. 내가 저 사람을 참아주고 있는 것처럼 저 사람도 나를 참아주고 있다고 생각하자.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과의 협업에서는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관점을 발견하거나 예상치 못한 시너지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은 보너스! 무엇보다 제대로 된 ‘일’은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해야 완성되기 때문이다.



2. 일할 때는 논리뿐 아니라 감정도 중요하다


보통 일을 ‘논리로 설득하면 된다’고 믿는데 사실 회사의 의사결정의 상당수는 감정적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많은 직장인들이 이용하는 이 법칙 중 하나가 상사의 기분이 좋을 때 이슈를 보고하는 것. 상사가 가뜩이나 골치 아플 때 문젯거리 하나 더 듣게 되면 더욱 기분이 안 좋아지고 평소보다 가혹한 피드백을 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상사가 휴가를 앞두고 있다거나, 팀 성과가 좋아서 입지가 더 좋아졌다거나 하는 타이밍에 이슈를 보고하면 큰 불호령 없이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 사실. 일도 어차피 '사람'이 하는 거다 보니 감정을 배제할 수가 없다.


다른 팀과 어려운 회의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나의 쟁점을 두고 양 팀의 입장이 대립하는 상황이라 결론을 내지 못하고 모두 마음이 상한 상태로 회의가 끝났는데, 그나마 나와 조금 친분이 있던 상대 팀 분이랑 이야기하면서 그 팀이 요즘 챌린지 받고 있는 상황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우리 팀이 강력하게 주장하던 게 조금 민망해지더라. 그때부터는 단순히 이게 옳다 저게 옳다 보다는 상대팀에게서 진짜 중요한 게 뭔가를 생각해 보는 관점이 생겼다. 사실 논리나 숫자만큼이나 중요한 건 상대가 어떤 감정 상태에서 그 말을 듣고 있는가였다. 그때부터 나는 말을 준비하기보다 듣는 자세도 준비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외부 파트너와의 일정 협의 중 서로 일정이 맞지 않아 갈등이 생겼을 때, 나는 “이 일정이 우리 쪽엔 왜 중요한지”만 이야기하던 걸 멈추고, “그쪽은 어떤 상황이세요?”라고 묻는다. 그러면 분위기가 약간 달라진다. 대화의 무게 중심이 내 입장에서 ‘우리’의 입장으로 옮겨지면서 이 일을 우리가 함께 잘해야 한다는 인상이 생기게 된다. 일만 잘하면 되지 내가 감정까지 신경 써야 하는가가 아니다. 일이 원만히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는 감성의 영역도 생각해 보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 일하며 만들어 내는 엑셀과 보고서 뒤에 사람이 있다는 걸 잊지 말자.



*사진출처 : https://kr.pinterest.com/pin/23503229299649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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