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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직장인으로서 갖춰야 할 소양, 전문성

나는 왜 ‘기획’이라는 일을 계속하게 되었을까

by 산들

나는 마케팅과 기획, 운영에 걸친 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 기획 일을 더 좋아한다. 처음 ‘기획’이라는 업무를 마주했을 때는 막연했다. 마케팅 기획, 서비스 기획, 제휴 기획, 플랫폼 기획… 회사마다, 부서마다, 그 의미가 다 달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기획이란, ‘문제를 발견하고 정의하는 사람’의 일이라는 것. 처음 맡았던 기획서는 지금 생각해도 참 어설펐다. 아이디어는 많았지만, 상사의 피드백은 단호했다. “좋은 생각이네. 그런데 이게 왜 필요한 거야?”


그 한마디에 할 말이 없어졌다. 그때부터 내 일의 기준은 ‘멋있게 보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옮겨갔다. 기획자는 결국 ‘관찰자’다. 세상의 불편함을 보고, 그 안에서 기회를 찾아내며, 그걸 누구보다 먼저 언어화한다. 기존에 없어서 불편했던 것들을 개선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어떤 날은 고객의 행동을 보며 데이터로 이유를 찾고, 또 어떤 날은 데이터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결을 읽으려 애쓴다. 어떤 서비스 아이디어들은 일견 고루하고 뻔해 보이지만, 고객들의 감성적인 수요를 채워주는 것만으로도 높은 ROI의 시장성이 나오기도 하기 때문에.


편리한 것이 많은 세상에서 수고로운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나는 책 읽는 걸 좋아하는데 요즘 눈에 피로도도 적고 엄청나게 많은 권수가 들어가는 가벼운 전자책들이 잘 나와 있지만, 굳이 종이책을 고집한다. 손으로 페이지를 넘겨야만 글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동네 도서관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추리 소설책을 두어 권씩 빌려다가 읽고 반납하고 다시 다른 책을 빌리는 것을 반복한다. 무거워서 여러 권 빌리지 못하기 때문에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도서관을 자주 들락거릴 수밖에 없는데, 도서관에서 소설 코너를 서성이며 끌리는 책들을 꺼내 서두를 읽어보고 흥미가 생기는 걸 고르는 그 경험도 좋다. 전자책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경험. 발품 팔고 무겁고 수고롭지만 그게 내가 책을 읽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이런 비효율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상, 기획은 논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 것이다. 혜택을 잘 설계한 무수히 많은 카드를 제치고 K은행 카드가 성공한 이유는 카드 디자인이 '귀여워서'라니까. 성능과 호감을 모두 건드릴 수 있는 생각을 해야 한다.


기획을 하다 보면 늘 모순과 마주친다. 논리와 직관, 현실과 이상, 비용과 가치의 사이. 그 복잡한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필요한 건 기획서 작성 스킬보다 사고의 유연함이라고 생각한다. 기획을 단순히 직무라기보다 일종의 사고방식이라고 보는 게 맞는지도 모른다.



1. TO-DO LIST는 꼭 만들자

회사에서는 늘 바쁘다. 아이디어 회의, 일정 조율, 보고서 작성, 미팅 준비…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이 뒤섞이기 쉽다. 일에 쫓기지 않기 위해서는 TO-DO LIST를 만드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 단순히 해야 할 일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중요하다.


오늘 반드시 끝내야 할 일

내일로 미뤄도 되는 일

오늘 생각만 해볼 일


이렇게 나누어 보면,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지금 당장 할 필요 없는 일’ 임을 깨닫는다. 우선순위에 따라 일을 나눠서 생각해 보면 내가 일을 통제할 수 있다. 리스트를 만드는 습관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게 업무의 리듬을 결정하고 누락 없이 일을 진행할 수 있게 해 준다. TO-DO LIST는 그 중심을 잃지 않게 해주는 일종의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하고, 이것들이 합쳐지만 내가 올해 해 온 일이 된다.



2. 일정 관리하는 법

나는 혼자 일하기보다 여러 명과 협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일정 관리는 자기 효율을 높이는 길일뿐 아니라, 타인과 신뢰를 쌓는 일이 되기도 한다. 기획의 결과물은 대부분 조율의 산물로, 디자이너, 개발자, 마케터, 영업 등 여러 사람의 스케줄에 맞춰야 한다. 내 일정이 어그러지면 그들의 일정도 함께 무너진다. 그래서 일정 관리는 개인 스킬이 아니라 팀워크의 기본 예의다. 내가 쓰는 방법은 단순한데, 하루를 크게 세 블록으로 나눈다.


오전: 집중이 필요한 사고형 업무 (기획서, 보고서, 전략 안 작성)

오후: 커뮤니케이션 중심의 업무 (회의, 피드백, 협의)

저녁: 정리와 복기 (메일 확인, 내일의 TO-DO 작성


이 패턴을 유지하면 ‘급한 일’보다 ‘중요한 일’에 시간을 쓸 수 있다. 물론 중간중간 내가 조율할 수 없는 일정의 미팅이나 교육이 있기는 하지만 보통 이렇게 규칙을 정해두고 일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적응이 된다. 중요한 것은 ‘빈칸’을 남겨두는 것이다. 모든 칸, 모든 일정을 빽빽이 채우면, 예기치 못한 일 하나로 전체 일정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일정 관리는 어느 정도의 유연성을 고려해야 한다. 언제 어떤 이슈가 발생할지 모르기에 그에 대한 최소한의 대비를 하고 번아웃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하루의 일정 부분은 약간 비워두는 게 좋겠다. 문제가 생기면 그 시간으로 대응하고 아니면 업무를 한 번 더 점검해 보는 시간으로 쓰면 된다. 결국 일정 관리의 본질은 시간을 통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내 업무의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3. 회사 밖에서의 나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회사뿐인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사실 회사와 나는 월급 주는 계약으로 이루어진 관계일 뿐, 그 계약이 없어지만 회사와 나는 남남이다. 그렇기에 미리 회사를 떠나면 뭘 하고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해두어야 한다. 한 때 직장인 유튜버, 인플루언서도 유행했고, 코인이나 주식을 잘해서 월급 이상의 수익을 창출하는 사람들도 많다지만 그 정도로 당장 현금화를 고려한 방향이 아니라도 취미 수준으로나마 회사 일 외에 오랜 시간 몰입할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어 두는 게 좋겠다.


자격증을 준비하는 것도 좋고, 언어 공부를 하거나 러닝, 테니스 같은 운동을 하거나 책을 탐독하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이런 시간들은 회사의 스트레스를 잊게 해주기도 하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스펙이 되어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내가 스스로 결정권자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 안에서는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그대로 밀어붙일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고 누군가의 검토와 결재를 거쳐야 하지만, 회사 밖의 생활 스스로 하고 싶은 걸 정하고, 할 수 있는 만큼 배우고 단련하고 그에 대한 성과도 내가 오롯이 얻는다. 내가 나를 경영하는 느낌, 이 경험이 아주 값지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인생에 대해 추구하는 가치관도 또렷해질 수 있다. 그리고 회사를 은퇴하고 난 뒤 하고 싶은 일을 정하는데 도움이 된다. 나와 친한 선배는 검도를 아주 좋아하는데, 은퇴하면 검도 도장을 차리고 싶어서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때의 삶이 직장인인 지금의 삶보다 훨씬 더 기대가 된다고. 회사를 떠났을 때의 나를 강하게 만들고 싶다면, 미리미리 회사 밖에서의 나를 브랜딩 하고 강점을 갖추어 놓도록 하는 게 좋겠다.


*사진출처 : https://kr.pinterest.com/pin/682583692972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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