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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퇴사 버튼을 누르기 전 생각해야 할 것

퇴사는 도망이 아닌 선택이어야 한다

by 산들


1. 어떨 때 퇴사해야 하는가?

사람들이 이직을 결심하는 데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대략 열에 아홉은 아래 이유들에 해당되는 것 같다. 하나, 이 일이 적성에 안 맞고 미래가 안 보인다. 앞으로 내가 성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고민. 특히, 젊은 직장인들을 갉아먹는 괴물 같은 감정이다. 둘, 일이 너무 많고 힘들다. 워라밸 최악, 저녁 시간이 없다. 생활이 무너짐과 동시에 건강도 악화된다. 번아웃으로 직결되는 치명적인 단점이다. 셋, 나를 무지하게 괴롭히는 사람이 이 있다. 얼굴만 봐도 스트레스인 사람, 이 또한 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넷, 월급이 너무 적다. 어쩌면 이직의 가장 강한 동인이 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직장인은 회사와 계약으로 얽힌 관계, 나는 돈을 받고 회사는 나의 노동을 얻는다. 이 거래가 불공정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모티베이션이 가라앉는 것도 당연한 것. 기타, 일이 무난하지만 너무 재미가 없다거나, 거주지와 직장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출퇴근이 고되다는 경우들도 있을 수 있겠다. 공무원 준비나 의사/약사 자격시험이나 창업처럼 아예 다른 방향으로의 인생 전환의 필요성을 느끼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현 직장을 퇴사하고 새 직장으로의 이직을 생각하게 된다.


본인의 일이 자신에게 너무나 잘 맞고 내가 매일 성장하는 게 느껴지며, 협조적인 동료 및 존경스러운 상사 밑에서, 평일 저녁시간을 자유롭게 오롯이 나만의 것으로 삼아 생활할 수 있는 직장인이 얼마나 될까. 만약 직장인의 전형적인 삶이 이렇다면 모두가 직장인이 되고 싶어 할 텐데. 그러나 우리는 안다. 이런 사람들은 엄마 아빠가 그 회사 오너 거나, 전생에 나라를 구해 아~주 운이 좋게 희박한 확률로 좋은 기회를 잡은 것이라는 걸.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언제 로또 한 번 안되나, 취미로 회사를 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들을 해본 적 있을 테니까.


나의 경우에는 더 이상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매력을 못 느낀 점이 컸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조직 구성 상 그걸 못하게 되어서 좌절감이 느껴지고, 도통 직무전환은 될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매너리즘에 빠지고, 꼭 필요한 일들만 소극적으로 하게 되고, 성과는 크게 안 나고 그게 또 스트레스가 되는 악순환의 반복. 속으로는 열심히 달려보고픈 열정이 있는데 현실은 그냥 편한 게 편한 거지 하고 퍼져버리는 현실에 당도한 순간, ‘이렇게 시간을 뭉개기에 내가 너무 아깝다!’를 외치며 새로운 영감과 에너지를 줄 다른 일에 휙 뛰어들어버렸던 것 같다. 나는 회사를 50살까지는 다니고 싶은데, 이래선 그냥 재미없는 회사 생활을 이어나가게 될 뿐이라는 위기감.


퇴사는 직장인 인생에 있어 아주 큰 이벤트다. 퇴사한다고 해서 무조건 현 상황에서 나아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현 직장의 상사가 싫어서 이직했다가 더 강력한 미친 자를 만나게 될 수도 있고, 성과급을 많이 준다고 해서 옮겼는데 내가 옮긴 뒤부터 사업세가 고꾸라져 성과급이 0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이게 너무 싫다' 하고 도망치듯 이직하면 후회할 가능성이 크다. 현 직장과 옮길 직장을 나란히 두고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이직하게 되면 새로운 직장의 시스템과 분위기, 사람에 적응해야 하는데 이것도 꽤나 큰 에너지가 소진되는 부분이므로 이직할 때 내게 오는 메리트가 확실히 큰 것이 아니고서야 이직 생각은 쉽사리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이직 시 고려해야 할 것은 월급, 성과급, 복지(건강검진, 법인콘도, 임직원 할인 등), 평균 근속연수, 평균 나이, 사내 경력직/공채 비율. 주거지와의 거리, 통근 방법(버스, 지하철 동선), 구내식당 보유 여부 등이 있겠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할 것!



2. 퇴사를 준비하는 방법

어떤 이유에서든 이직만이 답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면, 본인의 이력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는 이직 준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직장인이라면 평소에 해두는 게 좋다. 시기별로 내가 해왔던 업무들, 프로젝트들, 그 규모와 성과를 기록해 두는 것은 좋은 습관이다. 특히 정량적인 수치가 나올 수 있다면 반드시 챙겨서 기록하자. 그 기록을 처음 보는 사람으로서는 '성공적으로 수행' 보다는 '신규 가입자 20만 명 획득'이 훨씬 더 설득력 있다. 그리고 내 업무의 성과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면 빠짐없이 챙겨 두자. 나는 플랫폼을 하는 사람이라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하면 해당 서비스 화면들도 다 캡처해서 보관해 둔다. 뿐만 아니라 내 업무와 관련된 사내 뉴스나 신문기사가 있다면 그것들도 챙긴다. 나중에 신뢰성 있는 포트폴리오가 된다.


이력서가 어느 정도 준비되면 구직사이트에 올린다. 본격적으로 준비된 나를 홍보하고 팔아보는 단계. '링크드인'이나 '리멤버'같은 구인구직 사이트에 프로필을 작성해 두면 헤드헌터들로부터 1촌 신청이 오고 인메일 기능으로 오퍼가 온다. 링크드인은 모바일로도 많이 쓰기 때문에, 열람이 편하고 프로세스가 빠르다는 것이 장점인 것 같다. 대신 기업들의 광고성 메시지나 심히 의심스러운 ‘사업가’들의 스팸메시지가 오는 것도 각오해야 한다. 프로필 작성을 할 때는 반드시 잘 나온 증명사진을 등록하고, 짧은 문장으로 본인을 잘 어필할 수 있도록 하고 이력과 성과를 함께 등록해 두자. 외국계 기업에 관심이 많다면 '피플앤잡'이 유용하고, '잡코리아'나 '인크루트', '잡플래닛'처럼 다양한 이용자가 많은 사이트도 괜찮다.


다만 본인이 해왔던 업무들과 향후 이직을 원하는 업무 분야나 그 내용을 최대한 명확하게 기입해 두어야, 엉뚱한 오퍼를 받는 황당함이나 시간낭비를 줄일 수 있다. '기획'의 경우에도 개발 베이스의 기획인지, 마케팅 관점의 기획인지를 명시해야 헤드헌터들이 혼란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력서를 대충 보고 콜드메일성으로 오퍼를 뿌리는 헤드헌터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특히 늘 새로운 인력이 필요한 보험회사 담당자 채용 자리 같은 건은 스팸성으로 느껴질 정도로 자주 온다. 개발자 같은, 나의 전공과 이력에 맞지 않는 채용 오퍼를 받은 적도 많은데, 그런 메일을 받으면 어이가 없어도 회신은 하는 게 좋다. 이직 시장에서는 그래도 헤드헌터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두는 게 유리하고, 거기서 오가는 이메일 소통도 나의 평판을 쌓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에. 나에게 맞지 않는 오퍼라도 무시하기보다는, ‘제안은 감사하지만 지금 제가 원하는 커리어 방향과는 맞지 않는 듯하다’ 하는 톤으로 적당히 예의 바르게 거절하기를 추천한다.


헤드헌팅 사이트 외에도, 학연이나 지연을 활용해 자리를 찾아보는 방법도 있다. 대학원, 특히 MBA 클래스에 중간관리자 이상의 멤버들이 많은 수업에서는 스카우트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간혹 선배가 본인 회사에서 사람을 찾고 있다는 귀가 쫑긋해지는 소식을 전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회사에서는 급하게 신뢰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찾을 때 임직원의 지인 찬스를 유용하게 이용한다. 나도 지금 회사에서 임직원 지인 채용 공고가 있어 전 직장 동료를 추천했고, 실제로 그 동료가 입사해서 나와 함께 일하고 있다. 이게 될까? 싶은 일이 될 때도 있더라! 그러나 이런 케이스는 그리 흔치는 않으므로, 일단 이직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조용히 헤드헌팅 사이트에 이력서 등록은 꼭 해두는 것이 좋겠다. 중요한 것은 조용히, 비밀스럽게 하는 것이다. 이직준비를 하고 있지만 내가 원하는 회사를 찾지 못해서 현 회사에서 오래 일해야 할 수도 있는데, 회사에 마음이 떴다느니 다른 데로 이직하려고 이력서 썼다느니 하는 말을 하는 게 득이 될 리가 없다. 이직 키워드는 옮길 회사에서 최종 오퍼레터를 받고 나서 신중하게 뱉는 게 좋겠다.



3. 회사에 안녕을 고하는 법

짜증 나는 전 회사의 자료를 다 삭제하고 퇴사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던데, 정말 큰일 날 소리다. 전 직장에서 너무 힘들었다면 오히려 나중에 책잡힐 일이 없도록 인수인계를 확실히 하고 나오고 선을 긋는 게 좋겠다.

아름답게 이별한다는 것이, 현 직장을 배신(?)한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굽신거리며 나가라는 뜻은 아니다. 길든 짧든 회사에서 나와 함께 했던 동료들에게 최소한 안녕을 빌어주는 예의를 발휘해 보자. 이직을 해보니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업계가 내 생각보다 좁다는 것이었다. 특히 비슷한 직무의 경우, 서로 엮여서 의외의 아는 인물이 나오기도 한다. 심지어 나는 이직하게 될 회사의 팀이 나의 현 직장 옆 팀과 협업하고 있었던, 소름 돋는 경험이 있다. 세상 참 좁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직하신 분의 연줄로 업무적 협업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퇴사하신 분이 FMCG 부분 회사로 이직하셨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는데, 나중에 그분이 우리 플랫폼과 협업 제안을 주셔서 샘플링 이벤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우리는 고객 혜택을 제공할 수 있어 좋고, 그분은 회사 신제품을 알릴 수 있어서 좋고. 이렇듯 회사원의 인맥도 중요한 자산이므로, 이직하게 되어도 이전 회사에서 친했던 사람들과는 주기적으로 연락하고 이따금씩 서로 안부를 물어봐주자.


생각해 보면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들이다. 내가 이직할 때 레퍼첵을 해줬던 선배가 이직을 하게 되어서 그 선배 레퍼첵을 내가 하게 되기도 하고. 전 회사와 협업해서 업무를 할 일이 생기기도 한다. 직장인의 세상은 생각보다 좁다. 내가 상처받기 싫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상처받기 싫다. 껄끄러운 관계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기왕이면 서로 웃는 얼굴로 일할 수 있도록 조금 더 배려해 주는, 직장인들의 연대감을 높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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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https://kr.pinterest.com/pin/492649952774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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