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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공부로 커리어를 다시 설계하기

학교에서 배운 것들

by 산들
1. 회사를 뛰쳐나오다


주변에 퇴사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행보를 보면 크게 아래와 같이 나누어지는 것 같다. 하나, 이직. 둘, 학업. 셋, 창업. 넷, 휴식. 전체적으로는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케이스가 가장 많은 듯하고, 젊은 직원들의 경우 공부 더 하겠다고 경영대학원이나 전문대학원을 등록하고 퇴사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최근에는 재취업 시장이 얼어붙어 있어 회사를 다니면서 야간대학원을 다니는 사람들도 꽤 있는 듯하다. 내 주변에는 사업을 하겠다고 퇴사하는 경우도 있는데, 절대적인 자격증이 있거나 회사 다니면서 조금씩 실험해 보고 성공 가능성이 확실한 아이템이 아니고서야 절대로 비추천. 건강 회복, 번아웃 등의 이유로 퇴사하는 케이스도 요즘은 종종 있는 것 같다. 정말로 내 건강보다 중한 것은 없다, 회사가 너무 괴로우면 휴직이나 퇴사를 택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나 같은 경우 첫 직장에서 적성에 맞는 업무를 잡았는데 능력의 한계를 깨달아버렸다는 것이 일종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앞으로 이 길로 쭉 커리어를 키우고 싶은데, 내가 이해하는 세상이 너무 좁다고 느꼈다. 그래서 방법이 없을까 찾아보다가 선택한 것이 국내 1년짜리 MBA로 진학하는 것. 용감하게도 퇴사 질러놓고 입시를 치렀다. 심지어 딱 한 군데만 지원했다. 지금의 나였다면 회사 다니며 입시를 준비하고 합격 발표가 난 후 퇴사를 했겠지만, 당시에는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렇게 지르고 봤는지 모르겠다. 29살의 패기였을까. 그래서 지금 대학원 진학 등을 생각하는 후배들이 상담을 청해 오면 나는 절대로 지금 회사를 유지하며 몰래 준비하라고 조언한다.


회사에서는 퇴사하겠다고 하니 선배들이 많이 말렸다. 그래도 공채로 입사했고, 무난하게 회사 생활을 하는 듯했는데 느닷없이 퇴사라니. 그것도 학교 가겠다고 퇴사라니. 내가 선배였어도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렸을 법 한데, 당시의 나는 뭘 믿은 건지 모르겠지만 너무도 확고하게 퇴사하고 공부하리라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고 선배들도 곧 설득을 포기했었다. 그때 선배들의 마음을 선배가 된 지금은 100퍼센트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퇴사를 하고 나서 입시 준비를 하기 전, 동생이랑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회사 생각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은 생각보다 쉽게 잊혔다. 늘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기에 회사 생활에도 후회가 없었다. 6월이었는데, 동생과 함께 걸었던 초록빛 가득 싱그러운 마드리드의 공원, 땡볕이 내리쬐었지만 남는 건 사진이라며 뜨거운 공기 소게서 열심히 셔터를 눌렀던 세비야의 광장, 예쁜 장식용 분수가 시선을 사로잡았던 아름다운 그라나다 알함브라 성의 여름정원, 말라가의 다디단 체리와 푸른 바다, 포카리스웨트가 연상될 정도로 푸르고 희었던 프리힐리아나의 발콘 데 에우로파, 그리고 내가 너무도 사랑해 마지않은 바르셀로나의 캄프 누. 29살의 나는 그렇게 사회인으로서 4년 간 쌓아두었던 스트레스를 이국에서 떨쳤다.



2. 대학원 준비하기


대학원 준비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MBA 과정에 진학할 거였지만, 나는 이과적 두뇌에 열등감이 있었으므로 그걸 돌파하기 위해 공대 이미지가 강한 학교를 목표로 했다. 개발자가 무서우니, 개발자 같은 애들이 잔뜩 있는 학교로 가보자! 하는 단순한 생각. 서류 전형에서 요구하는 것은 경력증명서, 대학교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같은 증빙자료들과 토익, 에세이, 우수성입증자료 정도였다. 증빙자료는 그냥 수치이니 여기서 추가로 더 어필할 수 있는 것은 에세이와 우수성입증자료겠구나 싶었다. 에세이는 질문 네 가지 중 두 개를 선택하여 답하는 거였는데, 나는 왜 지원하고자 하는지와 지난 5년 중 리더십을 발휘해 본 경험을 선택했다. 취업준비하며 열심히 써왔던 레퍼토리가 있어서 어렵지 않았다.


우수성 입증자료가 조금 애매했는데, 딱히 제한 사항이 없었기에 나는 영어와 일어의 어학성적표, 봉사활동증명서와 대학 시절의 상장 몇 개를 준비했다. 논문이나 공모전이나 누군가의 추천서를 활용해도 좋을 듯싶었다. 서류 전형 이후에는 면접인데 홍릉의 캠퍼스에서 이루어졌다. 면접에는 교수님 세 분이 면접관으로 오셨는데,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시려는 모습이었다. 퇴사하고 남아도는 시간에 도서관에 가서 MBA 관련 서적도 많이 읽었고, MBA 카페에 들어가 관련 글들을 읽으며 준비해 왔어서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처음부터 이곳을 목표로 퇴사까지 하고 왔기에 기합으로도 그 마음이 전해졌을 것 같기도 하다. (단순하면 이렇게 용감하다) 교수님들은 퇴사를 하고 왔는데, MBA 졸업 후 취업이 안되면 어떡할 거냐는 걱정 어린 말씀을 주셨는데, 기억이 명확히 나진 않지만 그간의 경력과 이곳에서의 배움과 경험을 토대로 하면 더 좋은 곳에 취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한 것 같다. 무엇보다 MBA에서는 본인이 얼마나 열심히 활동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열리기 때문에.


그렇게 입시 전형이 끝나고 12월 5일, 최종 합격 통보를 받고 서울의 홍릉 기숙사에 입소하게 된다.



3. 대학원에서 내가 얻은 것


내가 입학한 과정의 총원은 스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모든 인원이 이웃한 연구실 두 곳에 각자 자리를 배치받고 1년을 보냈다. 멤버들도 연령, 배경 모두 다양했는데, 회사에서 보내준 부장급 40대 언니 오빠들도 있었고, 외국에서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중반의 막내도 있었다. MBA 과정이다 보니 현업에서 일하다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분야도 통신, 언론, 증권, 패션 등 다양했다. 그래서 수업을 들으면서 저절로 팀플이 완성되었다. 특히 심화 수업의 경우 수업 내용이 어려워 우리들끼리 클래스를 열어 서로 모르는 걸 알려주곤 했는데, 회계 관련 수업을 들을 때는 증권회사에서 일하다 온 멤버가, 통계학의 경우 대학시절 통계를 전공했던 멤버가 가르쳐주길 자처하는 방식이었다. 저마다 다른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거기서 얻는 지식도 많았고, 과정에 임하는 태도나 스타일도 서로 달라서 많은 공부가 되었다. 1년의 집중 코스를 들으며 내가 배운 것은 아래와 같다.


1)강인한 체력과 멘탈이 길러진다

MBA는 보통 2년 과정인데 나는 그걸 1년에 압축해 듣는 코스를 선택했다. 짧은 시간에 졸업 요건을 채우기 위한 학점을 따야 하다 보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수업이 다 있고, 방학도 딱히 없이 지냈다. 매 수업 과제와 팀플이 있어서 수업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과제를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바쁘다 보니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장려했는지도.. 나도 기숙사에서 지냈는데 늘 잠이 모자랐다.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내가 왜 여기에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싶기도 했고, 이 힘든 과정이 끝나면 다시 잘 취업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 모든 불안과 압박을 견딜 수 있는 체력과 멘탈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이 길이 내가 바라는 것이 맞는지, 이 과정을 이수했을 때 내게 정말 도움이 될지를 잘 판단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용기 있게 그만두는 것도 필요하다. 실제로 우리 과정에서 두 친구는 학기 초에 퇴소했다. 하지만 1년의 과정을 겪어내고 나니 깨닫는 것(득도한 것)도 많았고, 맷집도 꽤나 늘어서, 학교에서 느낀 것들이 회사생활에서도 적용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영어 실력이 많이 늘어난다

입시할 때 영어 성적을 필수로 제출해야 하지만, 토익은 토익일 뿐.. 대학원 수업에서는 원서를 보는 비중이 크게 때문에 영어 실력이 정말로 중요하다. 원어민처럼 능통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수업 자료가 원서인 경우가 많고, 타 과정의 외국인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팀플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읽어야 할 아티클이 산더미인데 영어를 잘 못한다면 과제할 때 밤을 새야 할지도. (그렇기 때문에 대학원을 준비한다면 미리 영문 잡지나 아티클을 읽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렇게 강제로 트레이닝이 되고 나니 대학원 졸업할 즈음에 영어 실력이 내 인생의 정점이었던 듯싶다. 뭐든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면, 하게 되어있다!


3)학교의 네임밸류와 수업 중에 배운 것들

경력 이직할 때도 출신 대학교와 대학원 기입이 필수인 회사들이 대부분이라 일단 석사 학력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학교의 네임밸류가 좀 높다면 그것도 가점이 되는 듯. 문과 직무, 그중에서도 마케팅처럼 평범한 직무의 경우 석사 과정을 요구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일부 포지션에서는 메리트가 된다. 그리고 입사 후 요즘은 회사에 대학원 출신도 많은데 그들과의 연결이 더 쉬워지기도 한다.

특히 나는 개발/IT 부문에서의 약점을 극복하고자 진학한 목적이었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커버가 된 듯하다. 실제로 학교 수업 및 학교 내 교류로 인해 소위 말하는 '개발자의 언어', '데이터의 결을 보는 법'을 배울 수가 있었고. 본격적으로 코드를 짜거나 하진 못해도 기획을 함에 있어 전보다는 한결 뾰족해졌다. 기존의 나였다면 생각하지 못했을 관점들을 고려할 수 있게 된 것도 수확이다. 사회 초년생일 때 개발회의에 들어가서 동공지진 나던 시절과 비교하면 정말이지 장족의 발전이다. 무엇보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자기 의심을 하던 것이 많이 극복되었고, 스스로를 믿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기뻤다.


4)취업까지 연결되는 인연도 있다

MBA의 경우 경력직들이 대부분이고, 회사에서 보내준 케이스도 많기 때문에 학교에서의 인연을 계기로 추천 입사를 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다. 그렇기에 그런 기회를 노린다면 MBA 중에서도 경영자 코스의 수업을 청강하거나 해서 회사 리더들과 친분을 쌓는 것도 추천한다. 나의 경우, 대학원 행사에서 사회를 보게 되었는데, 강연자로 오신 모 회사 팀장님과 인연이 닿아서 이력서를 전달드리고 이것이 취업으로 연결되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 회사에서도 다른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지만, 관심 있는 분야의 업무였어서 개인적으로 정말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 교수님이 아는 회사에 면접 자리를 주선해주시기도 했다. 이렇듯, 대학원에서도 잘 찾아보면 취업의 기회가 많다. 노력하는 만큼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배운 세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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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kr.pinterest.com/pin/3476222836904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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