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가는 커리어를 위해서는 ‘방향’이 중요하다
첫 출근 한 날이 기억난다. 나는 모 통신회사에서 채용전제형 인턴을 했고, 인턴 끝나고 최종 면접을 본 뒤 합격 통보를 받았다. 당시 같은 부문에서 인턴을 했던 동기들과 함께 총 5명이 한 조가 되어 최종 면접에 들어갔는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없냐고 하는 면접관의 질문에 'LTE는 우리가 일등이다!'를 호기롭게 외쳤더랬다. 회사가 신입사원에게 바라는 것이 패기였는지 나는 운이 좋게도 인턴을 했던 부서로 그대로 발령이 나, 낯설지 않은 환경에서 직장인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6개월 간의 인턴생활을 끝내고 정식 입사를 했는데, '어서 와~' 하고 반겨주던 선배들의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선배들 뒤에 후광이 비쳐 보였다. 사원증과 회사 배지를 받고서, 나도 이제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1인분을 할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당시 내 직무는 멤버십. 다양한 이벤트와 제휴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예산에 맞게 짜는 파트였는데 내가 해당 서비스의 메인 타깃이기도 해서 일이 재미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위주로 아이디어를 내면 됐으니까. 팀 분위기도 무난한 편이었고. 특히 같은 업무 파트에 나보다 서너 살 정도 연상인 여자 선배들이 3명 있었는데 이 분들 덕에 회사생활에 더욱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고작 25살, 회사 생활이나 예의에 대해 어설펐던 부분이 분명 많았을 텐데도 선배들은 웃으면서 가르쳐주고 내가 실수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지~'하며 감싸주었다. 당근을 주면 더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선배들은 진작에 알아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때 당시의 선배들이 내게 보여주었던 모습을 배워 나도 저런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첫 회사에서 적응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일단 돈을 버는 것이 즐거웠고, 처음 쓰는 기획서, 처음 진행하는 행사, 처음 찍어보는 계약서 도장. 모르는 게 많아서, 해보지 않아 두려운 것들도 있었지만 선배들에게 물어보고 한 번 해보고 나니 '별 거 아니구나. 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기 다른 부서로 배치받은 동기들과 메신저로 나누는 수다도 재미있었다.
그러다 중간에 업무가 살짝 바뀌었다. 기존보다 좀 더 사업기획, 숫자와 계약에 집중해야 하는 건이었고, 시스템의 개발 업무도 수반되었다. 같이 일하는 파트 선배들도 나와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남자 선배들이 되었다. 내가 기본적으로 가진 성향과는 다른 방향의 일이라 첫 업무보다는 적응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생활을 2년 쌓으면서 나름대로 배운 것은 있어서, 막연히 어렵다기보다는 알아가야 하는 게 많겠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새 파트의 선배들도 자상해서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잘 지낼 수 있었는데, 이전 업무를 할 때와는 또 다른 공부가 되었다.
개발 회의가 제일 강적이었다. 당시 우리 그룹사의 SI 계열사 분들이 개발을 담당해주고 계셔서 개발 미팅을 할 때면 개발자들이 있는 상암으로 이동했었다.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가도 회의 때 오가는 전문적인 단어나 프로세스가 너무 어려워서 동공 지진되기 일쑤였고, 결국은 약간은 풀이 죽은 채 나오곤 했다. 그러면 같이 간 선배가 아직 너무 어렵지~ 하지만 곧 익숙해질 거다 하고 달래주었다. 그때 깨달은 것 같다, 제대로 모르고 일을 진행하는 불안함에 대해서. 회의록을 쓰면서도 이게 맞는 내용인가 스스로를 의심하고야 마는 그 찝찝함에 대해서. 사수가 진행하는 업무였지만, 나도 100퍼센트 이해하고 싶었다. 첫 직장의 직무들이 나와 잘 맞는 것 같기는 한데, 내 내공이 너무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채우기 위해서는 뭔가 강력한 전환점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 가장 필요하다고 느낀 것은 개발자와 대화하는 법, 시스템을 이해하는 법, 나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뭔가 만들어 내는 경험을 쌓는 것이었다.
첫 직장이 평생직장이 되는 사람도 있다. 회사에서 내가 잘 성장할 수 있고, 보상이 만족스럽다면 한 회사만을 다니는 로열 한 직장인,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성골 귀족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어떤 연유에서든 퇴사하는 루트를 타게 되면, 퇴사 한 번으로 끝나기보다는 공부, 이직, 창업 등의 사유로 여러 번 퇴사를 하는 경우가 많고 그렇게 되면 뭔가 스스로 용병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그러므로 처음 회사에 입사하면 다음 세 가지를 꼭 생각해 보길 추천한다. 하나, 신입 사원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우당탕탕 마음고생은 누구나 겪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너무 자책하지 말고 배워나갈 것, 둘, 직장인으로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이 무엇인 지 정립할 것, 셋, 커리어의 나침밤을 세팅할 것.
첫 회사에서 배운 것들은 참 많다. 업무적으로나 사회인으로서의 책임과 처신, 인간관계에 대한 것 등.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커리어를 쌓아가서 어떤 직장인으로 남고 싶은가 하는 방향성을 잡은 것이다. 나는 어떤 업무가 작성에 맞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회사를 다니고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
그래서 나는 첫 회사를 4년 만에 퇴사하고 학교로 갔다.
+다음 편 : 네, 퇴사하고 대학원을 갔습니다. 대학원 준비와 생활, 얻은 것들에 대해서.
* 사진출처 :https://stockcake.com/i/sailing-serene-seas_706087_55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