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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실패한 프로젝트가 알려준 것들

일이 잘 안 될 때 그 사람의 진가가 드러난다

by 산들

일을 하다 보면 크고 작은 실패를 겪게 된다. 나도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을 살펴보면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가능성 있어 보이는 아이템들을 여러 개 쏘아 올려서 성공하는 건 극히 일부이기 때문에. 실패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더 치열하게 이것저것 많이 도전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실패하는 것에 겁먹지 않고 단련할 수 있는 멘털을 길러야 한다.



1. 업무를 어디까지 감싸 안아야 할까 — 일과 나 사이의 거리두기


나도 14년 동안 크고 작은 실패를 수도 없이 겪었는데, 그중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순간은, ‘일의 실패를 나 자신의 실패’로 착각했을 때였다. 기획이 틀어지고, 수치가 안 나오고, 상사가 실망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내가 부족했나’라는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회사 일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나의 의지’보다는 ‘조직의 방향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걸. 나는 한 명의 추진자이자 조율자일 뿐,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는 없다.

나는 반대했지만 리더십의 결정으로 밀어붙인 프로젝트가 있었다. 나름대로 배정받은 예산 규모도 상당했고, 기대도 컸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냉담했다. 그때 가장 힘들었던 건 결과 자체가 아니라, 이렇게 진행하면 잘 안될 것 같은데라는 찝찝함을 느끼면서도 멈추지 못했다는 무력감이었다. 내가 우려하는 바를 이야기해도 이미 회사에서 생각한 궤도대로 달리는 프로젝트는 달라질 수 없었다. 아마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때부터 마음의 ‘경계선’을 세웠다. 업무는 나의 일부이되, 나의 전부는 아니다. 몰입하되, 과몰입하지 않기로.


회사 일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과열되면 쉽게 번아웃되고, 무너졌을 때 다시 일어나기 어렵다. 때로는 프로젝트가 잘 안되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실패자’라 느끼는 사람들을 본다. 하지만 진짜 실패는 결과가 아니라 태도의 상실이라고 생각한다. ‘왜 실패했는가’를 냉정하게 복기하고, 다시 설계할 수 있다면 그다음 성공의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다.



2. 실패도 결국 내 이력의 일부가 된다 — 거기서 뭘 얻느냐는 나의 능력


몇년 전 시니어 타깃 플랫폼을 론칭한 적이 있다. 리서치부터 콘텐츠 방향성, UX 설계까지 모두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팀에서 모여 왜 실패했을까 논의했을 때 나온 결론은 ‘시니어’라는 타깃을 너무 정형화된 프레임으로 본 것 같다는 거였다. 우리는 데이터를 근거로 60대 이상을 하나의 군집으로 묶었지만, 그 안엔 디지털에 익숙한 60세와 여전히 오프라인을 선호하는 70세가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행태 차이는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더 컸다. 결국 우리는 비슷한 연령대의 시니어들이라도 그 속에서도 아주 다양한 구매 패턴과 행동을 나타낸다는 것을 간과했던 것이다.


이 실패를 통해 배운 건 두 가지였다. 하나, 데이터 패턴의 경향성에 너무 의존해서는 안되고 그 속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 둘, 실패를 기록해야 성장할 수 있다는 것. 당시 나는 기획전을 구성하고 서비스를 붙일 때마다 기록을 다 남겼다. 어떤 의사결정이 있었고, 왜 그 선택을 했는지, 성과는 어땠는지, 잘 안 된 경우에는 무엇이 어긋났는지. 처음엔 자존심도 상했지만, 몇 달 뒤 다른 프로젝트를 설계할 때 그 기록이 결정적 도움이 됐다. 스티커든 메모장이든 지라나 두레이, 노션 같은 툴을 쓰든 기록하기 편한 방식으로 남겨두자. 다음 프로젝트를 하는 나 자신에게 꽤 괜찮은 참고자료가 된다.


3. 실패 이후, 멘털을 회복하는 일상의 루틴을 만들자


일이 망했을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건 시스템이 아니라 멘털이다. 성과 지표를 보는 것도, 회의에 참여하는 것도 괴로울 수 있다. 업무에 너무 과몰입하지 않기 위해서는 개인시간에 업무 외 숨통 트일 수 있는 일들을 만드는 것이 좋다. 그런 영역은 꼭 생산적일 필요도 없다. 가볍게 산책하기도 좋고, 매주 요일을 정해 저녁에 맛집 탐방을 한다든지,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몰아보기 한다든지, 공연을 보러 다닌다든지. 중요한 것은 회사 일과 의식적으로 거리를 둘 수 있는 아이템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게 다른 것에 집중하다 보면 업무로 인해 생긴 마음의 잡음이 줄어든다.


일에서 완전히 도망치는 게 아니라, 잠시 떨어져 다른 시야로 바라보는 것. 그럴 때 비로소 실패가 ‘사건’이 아니라 ‘자원’으로 전환된다.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그 프로젝트를 돌아보면,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구조적 문제나 의사소통의 미스가 선명하게 보인다. 결정을 잘못했을 수도 있고 타이밍이 안 맞았을 수도 있다. 업무와 개인시간의 균형을 잘 지키면서, 회사에서의 실패를 너무 자책하지 않고 한 발 물러서 과거를 복기해 볼 수 있다면 된 거다.



4. 실패의 순간에 드러나는 팀의 진짜 얼굴


프로젝트가 잘될 때는 모두가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일이 꼬이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본질이 드러난다. 누구는 책임을 회피하고, 누구는 끝까지 버티며 복구를 시도한다. 결국 위기가 닥치면 ‘함께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기 어려운 사람’이 구분된다. 내가 존경하게 된 리더들의 공통점은 한 가지였다. 본인의 리딩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살펴보고 실패를 구성원의 탓으로 보지 않고 않고, 원인을 구조적으로 분석했다. 누가 틀렸냐 보다 어디서 틀어졌냐를 생각했다. 그런 태도가 비록 실패했다 하더라도 팀의 사기를 살리고, 사람의 마음을 붙잡는다. 리더는 실패의 순간에 팀의 안전망이 되어야 하고 중간자는 리더의 시선을 아래로 전달하는 완충 장치가 되어야 한다. 실패는 두려워하고 기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학습의 가장 빠른 형태일 수 있다. 다만 그 학습을 ‘함께’할 수 있는 조직만이, 다음 성공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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