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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중간자의 자리에 서면 보이는 것들

차장이 되어버렸다

by 산들

일한 지 14년 차 정도 되니 차장 직급이 되었다. 어느 집단에서나 막내였던 적이 많고, 연상들과 지내는 게 편한 성격이라 선배 노릇하는 것이 영 익숙지가 않다. 우리 회사는 근속연수가 꽤 긴 편이라 아직 나보다 선배인 분들이 훨씬 많지만 계속해서 신입 사원들이 들어오기에 후배도 꽤나 많이 보게 되었다. 누군가의 선배라는 게 아직도 조금 어색해도, 직장인이라면 사회적으로 부여되는 지위를 받아들이고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법. 머릿속은 아직 꽃밭이건만 어른스러운 척을 열심히 해보는 단계라 할 수 있겠다. '이걸요? 제가요? 정말 제가 결정하나요?' 하는 속마음을 감춘다든지 '와 진짜 그만하고 집 가고 싶다'가 입 밖에 튀어나오기 직전이라든지(실제로 튀어나온 적도 무수히 많다) 그런 순간들이 많지만, 다들 그러면서 선배가 되어가는 걸까나.


1. 선배사원이 원하는 것을 찾아주기

일 잘하는 후배를 좋아하겠지? 싶지만 지금까지 내가 겪은 바로는 의외로 후배에게 '후배다움'을 바라는 선배들이 많았다. 여기서 말하는 후배다움이란 굽신거리며 아부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여유 있는 시간에는 '잠깐 티타임 할까요?'하고 천진한 질문을 던진다든지, 가끔은 '점심 약속 있으세요?' 하고 같이 밥 먹자고 권유한다든지. 특히 나이차이가 꽤 나는 경우에는 선배들이 먼저 권유하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친해지고 싶은데 부담스러워할까 봐. 그럴 때 가끔 내가 먼저 말 걸고 따르면 그것만으로도 기뻐하는 선배들이 많았다.

선배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건 존중의 언어를 잃지 않되, 거리감을 적당하게 좁히는 것이다. 중간자일수록 선배를 향해서는 조심해야 한다. 단순히 ‘예의를 지켜라’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내가 그들의 판단을 보완하거나 제안해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는 신뢰할 수 있는 동료로 비치는 게 중요하다. 선배가 원하는 건 아부가 아니라 안정감이다. 내가 맡은 영역에서 흔들림 없이 역할을 다하고, 이슈가 생겼을 때 먼저 알려주고, 결정이 필요한 타이밍에서는 지원하는 것.

때로는 선배의 방식이 낡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면으로 부딪히기보다는, ‘다른 접근도 고려해 보면 어떨까요?’처럼 제안형 어조로 풀어내는 게 좋다. 선배는 자존심이 아니라 경험의 무게를 지키고 싶은 것이다. 그걸 건드리지 않으면서 새 길을 제시할 줄 아는 사람이 결국 현명한 중간자라고 볼 수 있겠다.



2. 후배사원은 지켜봐 주기

중간자의 가장 큰 착각은 “이제 내가 가르치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후배는 지시보다 지지를 원한다. 소위 말하는 '90년대생' 후배들은 효율적인 가르침만큼이나 존중받는 느낌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들 하는데, 생각해 보면 그건 선배-후배의 관계를 떠나 인간으로서 당연한 거 아닐까 싶다. 무언가를 가르칠 때도 상대에 대한 존중이 우선해야 법이다. 내가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상대보다 우위라는 생각을 들게 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윽박지르면 안 된다고. 특히 요즘은 채찍보다는 당근이 더 필요한 세상이 아닌가 싶다.


후배를 이끌 때는 감정의 언어로 접근하고, 논리의 언어로 마무리하는 게 좋다. “이 부분 좀 부족했어” 대신 “이런 부분은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아”라고 말하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같은 내용이라도 다르게 들린다. 물론 처음에 답답할 수도 있고 사람마다 배움의 속도가 다르니까 그 부분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나와 함께 일하는 후배라면 후배가 얼른 성장해 주는 게 내게도 좋으니, 초반에는 인내심을 가지고 일을 진행함에 따라 피드백을 주고 그걸 반영하는 과정에서 후배도 나도 성장해 나가는 게 느껴질 것이다.


또한 중간자라면 후배의 ‘시도’를 막지 말아야 한다. 리스크가 있어 보여도, 직접 부딪혀보게 하는 게 가장 큰 배움이다. 물론 시켜놓고 나 몰라라 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의 가이드와 코칭은 필요하겠다. 때로는 잘 안될 것 같아 보이는 일인데 후배가 의욕을 보인다면, 당장 우리 팀에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의 스케일 선에서 후배가 직접 해보고 어느 지점에서 실패를 해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도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불안한 시선으로 보지 않는 것. 그런 경험이 사람의 멘털과 맷집을 키우고, 이 팀에서라면 내가 열심히 하다 실패하더라도 나를 버리지 않겠구나 하는 팀에 대한 애착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더 도전적인 업무에 대해 덤빌 수 있는 배짱도 생기고. 다만 그 과정에서 생길 불안은 선배들이 다독여줘야 한다.



3. 리더에게는 먼저 말 걸고 자주 보고하기

팀장 혹은 리더와의 관계에서 중간자가 가장 자주 하는 실수는, “팀장이 다 알고 있겠지” 혹은 “이건 말해봤자 바뀌지 않겠지”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리더는 생각보다 많은 걸 몰라서 놓친다. 그렇기 때문에 바쁜 리더에게는 상황 공유를 넘어서서 판단의 재료를 제공하는 게 좋다. “이건 문제입니다”로 끝내는 게 아니라, “이건 이런 이유로 어려운데, A안과 B안 중 어느 쪽이 좋을까요?”처럼 제안형으로 말하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건 ‘보고의 타이밍’이다. 리더가 바쁜 걸 배려한답시고 늦게 보고하면, 그건 배려가 아니라 폭탄을 던지는 행동일 수 있다. 중간자는 언제 보고해야 할지, 어떤 포맷으로 보고해야 부담을 덜 줄지 생각해서 적시에 전달해야 한다. 팀장 일정이 종일 회의로 꽉 차 있다면, 9시 전이나 6시 이후라도, 정 안되면 자세한 내용은 메일로 정리해 보내놓고 메신저로라도 보고 하는 게 좋다. 팀장이 좋든 싫든 일단 나의 상사인 만큼 팀장의 평탄은 우리 팀과 내게도 은은하게 작용한다. 특히나 연차가 어느 정도 찬 사원이라면 내 일을 하는 것뿐 아니라 리더를 업무적으로 보좌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고 생각하자.



4. 에이전시와 '함께' 일하기

중간자는 내부 팀뿐 아니라 외부 파트너, 특히 에이전시와도 긴밀하게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관계는 가장 섬세한 조율이 필요하다. 에이전시는 ‘을의 위치’에 있지만, 실제로는 브랜드의 손발이자 아이디어의 원천이기 때문에 그들을 단순한 ‘외주’로 대하면, 결과도 외주 수준에서 멈춘다. 좋은 중간자는 에이전시를 감독하지 않고 동행한다. 일정을 관리하되 통제하지 않고, 요구사항을 던지되 맥락을 공유해서 이 일을 하는 목적을 확실히 알고 일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의미를 알고 움직이는 파트너는 훨씬 주도적으로 일한다.


또한, 피드백은 ‘지시’가 아니라 ‘조율’의 언어로 라는 것이 좋겠다.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대신 “이 방향이 브랜드 톤엔 조금 어긋나니, 이렇게 수정해 보면 어떨까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두루뭉술하게 피드백하면 상대도 정확한 요구사항을 알아내기 어렵고 그러면 일이 겉돌아 시간과 공수만 더 잡아먹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수정 요청이나 피드백은 최대한 명료하게 하는 게 낫다. 말투 같은 부분도 은근히 중요한 게, 에이전씨와 일할 때 갑-을 관계처럼 구는 사람들도 있는데, 같이 일하는 동료라는 생각으로 대해야 업무가 원만히 굴러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친근하게 굴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진행 상황이나 발생하는 이슈에 대해 바로 공유할 수 있을 정도로의 심리적 거리감을 만들어 두어야 큰 사고가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고운 법! 에이전씨 담당자도 나와 한 배를 탄 것이고 이 프로젝트가 잘 되면 에이전씨에도 득이 될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면(에이전씨 담당자들도 프로젝트를 잘 성공시켜서 그 실적으로 더 큰 회사로 이직하려는 커리어 욕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책임감도 올라가니 나로서는 득이된다고 생각하자.



*사진 출처 : https://kr.pinterest.com/pin/2603712282030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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