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MAP의 구성요소들
아이를 낳고 얼마간은 1m짜리 사슬에 묶여 있는 기분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하루 24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었다. 공부를 하거나 능력을 발휘해 돈을 벌 수도 있었고, 내가 하는 일들이 가치 있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갓난아이를 돌보는 엄마가 된 후로는 내 시간이 사라진 듯했다. 하루 대부분이 단순히 아이가 먹고 자고 씻고 깨끗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데 쓰였고, 하루를 쏟아 부어도 한 바퀴 돌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아침이 오면 또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이걸 대여섯 번씩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끝나 있었다. 아이를 낳고 난 내 몸은 변했고, 바쁘게 묶은 머리는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있었다. 백일쯤 지나면서 머리카락까지 빠져서 거울에 비친 내가 대머리 독수리가 된 듯해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과연 세상은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스쳤다.
몸은 무기력해지고, 마음은 더 단순해져 갔다.
사람은 누구나 대화가 통하는 누군가를 원한다. 아직 말을 못하는 아기와는 내 속마음을 나눌 수도, 내 욕구를 채울 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종이책은 부피가 커서 불편했고, 아이가 잠든 어두운 방에서 펼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운동을 해보려 해도 아이를 봐줄 사람이 있어야 가능했고, 내가 운동하러 가는 게 남편과 아이를 위해 헌신하지 않는 엄마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직접 모유 수유를 했기 때문에 아이가 이유식을 먹기 전까지는 모든 수유가 내 몫이었다. 샴쌍둥이처럼 아이와 늘 붙어 있어야 했고, 옷차림도 수유하기 편한 것만 입게 되었다. 매운 음식이나 커피, 술도 멀리했다. 밤중 수유로 남편과 교대할 수도 없었고, 몸과 마음이 지쳐만 갔다. 그렇다고 아이를 돌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의 일상은 아이의 생존에 필요한 일들로만 채워져 갔다.
아이를 돌보며 집안에만 있는 엄마의 외로움과 무기력은 종종 남편에게로 흘러갔다.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온 남편도 피곤할 텐데, 무기력한 나를 보면 안쓰러우면서도 동시에 그가 좀 더 알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나도, 남편도 처음 엄마 아빠가 된 입장에서 서로의 피곤함을 이해하면서도 가끔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 부모로서의 신고식을 고되게 치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절이 영원할 것 같던 시간도 조금씩 흘러가고, 지나고 보니 그 모든 게 추억이 되고 있었다.
1년쯤 지나 마치 웅녀처럼 어느 날 밖으로 나와 세상을 다시 마주했다. 모유를 먹이는 과정은 ‘물을 데우고 분유를 계량하고 먹인 뒤 젖병을 씻고 소독하는’ 일을 ‘먹이고 트림시키기’로 간소화해 주었고, 여름에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고 수유하며 그 작고 고운 얼굴을 가까이서 보는 것도 꽤 귀한 경험이었다. 이 시간은 길어야 1년 정도밖에 주어지지 않기에 가치 있는 일이었다는 걸 그제야 느꼈다. 아이 덕분에 배달 음식과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덩달아 살도 10kg 넘게 빠졌다. 배달 음식을 줄이면서 돈도 절약되었다.
그리고 주말에는 짧게나마 혼자 나와 동네 카페에 가는 작은 외출이 생겼다. 고작 두어 시간 남짓이었지만, 아이를 잠시 두고 다른 어른들을 마주하는 시간은 그야말로 소중했다. 이 시간을 모아 브런치 공모전에 글을 썼다. 아이를 낳기 전 작은 문화 공간을 운영하며 느낀 경험들을 정리해 나갔고, 그때의 기억을 하나하나 되살려 썼다. 운 좋게도 공모전에서 금상을 타게 되어 작은 성취감을 얻었다.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장효진으로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가 돌 무렵, 작은 마케팅 회사에 취직해 다시 사회로 나갔다. 아침 일찍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강남으로 한 시간 넘게 걸려 출근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다 먹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작은 외출, 나만의 시간이 주는 의미를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만약 수유를 직접 하지 않거나, 글쓰기로 목표를 정해 도전하지 않았다면, 나는 다시 사회로 나와 내 능력을 펼치기까지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이 시기를 지나며 자연스레 내가 좀 더 나은 엄마,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 전문가들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을 이룬 엄마들 중에는 재테크에 능한 사람도 있었고, 다이어트를 성공하며 체력을 관리하는 엄마들도 있었다. 한 엄마는 아이와 함께하는 짧은 운동 시간을 잘 활용해 더 건강해졌고, 다른 엄마는 재테크로 경제적 안정과 가족 행복을 동시에 이루었다. 이들의 조언을 통해 엄마로서도, 여성으로서도 다양한 가능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나의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관계 속에서 살아갈지 고민해 보고 있다. 내 경험을 담아 ‘비로소 행복지도(HAPPYMAP)’라는 이름으로 8가지 키워드를 정리해 보았다. 이 행복지도는 건강, 인간관계, 커리어, 자기 계발, 시간 관리, 가사, 가족 관계, 재정 관리의 8가지 요소를 담아 앞으로의 삶을 더 주체적으로 그려나가려 한다.
앞으로 이 글을 통해, 아이와 가족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사회와 연결되어 있는 나로서 더 단단한 나를 만들기 위한 여정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