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어떤 행복에서 살고 있나
"행복"이라는 말은 왠지 "성공"이나 "사랑" 같은 단어에 비해 촌스럽게 느껴졌다.
성공은 반짝반짝 빛나고, 사랑은 열정적이면서도 사람을 들뜨게 하지만, 행복은 뭔가 잔잔하고 소박한 느낌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찬란한 순간도 아니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일도 아닌, 그저 내 안에서 부드럽게 차오르는 잔잔한 만족감 같은 것이다. 행복은 마치 순한 맛 라면 같은 느낌이다. 도파민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자극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영화 아멜리에는 일상 속 작은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주인공 아멜리의 엄마는 외출 전 핸드백을 정리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하나하나 물건을 꺼내고, 가방을 털어 깔끔하게 비운 뒤 다시 정성스레 물건을 넣으면서 느끼는 만족감. 아멜리는 자신만의 작은 비밀처럼 가게의 곡식 포대에 손을 찔러 넣고 감촉을 느낄 때 작은 쾌감을 느낀다. 이처럼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감정을 느슨하게 해주는 어떤 감각이나 행동에서 시작된다.
예전 강의에서 만난 한 신사분은 밤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와중에도 가족들이 모두 평안히 잠든 걸 확인할 때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나 역시도 내 아이가 내가 해준 밥을 먹고 만족스러운 듯 엄지를 척 들어 보일 때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이럴 때면 행복이 사랑하는 이들의 평온과 안전에서 오는 것임을 느낀다.
스무 살 때까지만 해도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행복하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그날은 아이와 손을 맞잡고 동네를 산책하던 날이었다. 막 걸음마를 떼고 나의 손을 잡은 아이는 한 발 한 발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뱃속에서 느껴지던 작은 발길질이, 이제는 내 손을 잡고 함께 걸으며 그 발걸음으로 세상을 탐험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그때 느낀 행복은 훗날 아이가 네 살이 되어 변덕을 부리더라도 그것을 이해하고 웃어넘기게 하는 큰 힘이 되어 주었다.
행복은 과정이 있는 여정이다. 행복은 성공과 사랑과 달리, 좌절과 실패를 마주해도 우리 마음속에서 따스하게 살아 숨 쉬며 버티게 해주는 긴 심호흡 같은 것이다. 촌스럽지만 나만의 익숙한 잠옷처럼 나를 지탱해 주며, 삶을 더 단단하고 여유롭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행복이다.
행복을 사전에서는 "복된 운", "충만한 만족감"으로 정의한다.
대한민국 헌법에서도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하며, 자유, 존엄, 가치 실현이라는 상태를 뜻한다. 행복은 각자가 자신의 만족과 자유를 느끼며, 존엄을 누리고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는 상태에 있다.
행복의 감정은 개인적/내면적, 사회적/외부적으로 나눠볼 수 있다. 가장 단순하면서 개인적인 행복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나 책 냄새를 맡을 때 느끼는 감각적 자극에서 온다. 두 번째는 직업, 인간관계, 건강, 재정 상태 등에서 오는 삶의 만족감에서 생긴다. 세 번째로 감각적 행복의 경험들이 쌓여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며 느껴지는 웰빙감과 자존감이 주는 행복이다. 긍정적 사고와 감사하는 마음은 이러한 행복감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심리적 행복은 자아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실현해 나가는 상태에서 나온다. 또한 타인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삶의 의미를 찾으며 내면의 평안을 느낄 때 찾아오는 행복이기도 하다. 사회적 행복은 친구, 가족, 동료와 함께하며 그들과의 유대감에서 오는 만족감이다.
행복은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인 감정이기에 어느 한 가지로 규정짓기 어렵다. 그래서 행복은 단순히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닌, 일상 속에서 다양한 차원에서 꾸준히 실천하고 경험하며 찾아가는 여정이다.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인공 소피는 마법의 저주로 인해 갑자기 노인이 된다. 하지만 소피는 그 어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내 저주를 푸는 여정을 떠난다. 드라마 밤과 낮이 다른 그녀에서는 백수로 자존감이 바닥에 있던 청춘이 낮에는 나이 든 여성으로 변해 인턴으로 일하며 새롭게 자신을 발견해 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단순히 젊음을 유지하는 대신, 인생의 여정 속에서 자신을 되찾고 자신의 행복을 쫓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성들이 소피처럼 반짝이는 눈망울로,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가길 바란다. 자신을 바라보는 용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도전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국 여성의 연령별 행복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 여성 중 30대는 결혼과 육아로 인한 부담감으로 인해 행복도가 가장 낮았다. 반면, 20대와 60대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안정감으로 인해 행복도가 높게 나타났다.
나 또한 아내와 엄마로 살아가며 느끼는 무거운 책임감 속에서도 행복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반대로, 그 역할 속에서 오는 충만한 행복 또한 컸다. 아이가 눈물을 닦아주며 나를 안아줄 때, 남편이 언제나 내 곁에서 나를 응원해줄 때, 나는 더욱 강해질 수 있었다.
행복지도를 그려본다는 것은 지금이 불행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행복을 음미하고 내가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행복을 위한 길을 계획하는 과정이다.
이제 나는 마흔이 넘었지만,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남았다. 조바심 대신 지금의 행복을 천천히 음미하며, 원하는 행복의 모습을 만들어 가고 싶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소홀히 하지 않고, 현재의 행복을 가꾸며 미래로 나아가는 것. 그 과정이 바로 행복의 여정이며, 행복지도를 사용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