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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효진 Jul 14. 2017

사진공간 빛타래, 빛으로 채운 공간

공간의 브랜드 자산


 내 글의 큰 제목이 '작은가게, 문화공간 만들기'이므로 문화공간 이전에 작은 가게로서의 특징에도 관심을 가진다. 예상하는 대로 '작은가게'와 '문화공간'의 간극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 작은가게가 수익을 기반으로 지속할 수 있는 자생력을 갖추는 것이 제1 관심사라면, 문화공간은 경제적 가치보다는 기쁨이나 즐거움, 창조 같은 삶의 가치 육성에 더 목적이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 이 두 가지 관점은 모순 관계는 아니라고 본다. 전자에 무게를 두고 후자를 끌어들이는 경우도 있고, 빛타래처럼 후자에 방점을 두고 그 브랜드 가치를 다른 방식으로 돌려받는 방식이 있다.  


운이 좋았다. 2012년 3월 빛타래가 처음 문을 여는 순간 문래동에 있었던 것이. 


 케이채 작가과 송광찬 작가의 열정이 없었더라면 그 공간은 작가의 사적인 작업 공간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공간은 옆 공간을 터서 확장하더니 다른 문화공간과 교류를 엮어 내며 문래동에서 없어서는 안 될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당연히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고 매체를 통해서도 여러 차례 알려졌다. 


 이런 세간의 이목을 끌 수 있었던 것은 케이채 작가와 송광찬 작가가 지켜왔던 운영 원칙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문래동에서도 찾아가기도 힘든 골목 안쪽 그것도 2층, 넓지도 않았지만 찾아가는 수고로움이 헛되지 않도록 늘 정해진 시간에 문을 열고 닫는 것을 제1 규칙으로 삼았다. 제2 규칙이라면 실력 있는 신진작가들에게 대관료를 받지 않는 대신 그들의 가능성을 샀다는 것이고, 제3 규칙을 찾아보자면 공간의 일상에 향기와 운율을 더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커피와 음악적 취향은 평균 이상이었다.(직접 원두를 갈아서 내려주거나 좋은 스피커를 자랑스러워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도 그들의 이야기는 조곤조곤하고 선명하였다. 물론 어떤 날에는 이열치열의 무대뽀로 무장한 듯 강력하기도 하였다. 


케이채 작가와 송광찬 작가 다른 두 사람이 공유한 공간은 이렇게 생겼었다. (출처: 빛타래 페이스북)



5주년을 코앞에 두고 2016년 겨울, 35번째 전시를 끝으로 문을 닫았다.


 그랬던 완소 공간이 5주년을 코앞에 두고 2016년 겨울, 35번째 전시를 끝으로 문을 닫고 말았다. 예전 홍대 앞 '음주가무연구소'라는 작은 펍이 폐업 선언을 한 이래로 가장 아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빛타래의 그 시작을 목격한 사람으로서 누구보다 그 공간을 먼저 알아보았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공간의 성장과 그 속을 채운 다양한 사람과 작품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가끔씩 생각나는 엄마의 두부찌개처럼 정겹고 그리운 그 무엇인가였다.  


 사진이라는 예술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빛타래라는 네이밍이 좋았다. 금빛 실로 둘둘 감은 실타래의 모습을 한 빛타래 간판의 노랑 불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철강소들이 일과를 마친 쓸쓸한 저녁의 노랑 불 아래 빈 창가를 찍은 사진을 볼 때마다 내 하루를 돌아보던 때가 종종 있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빛타래는 작은가게는 아니다. 따지자면 예술가들의 비영리의 문화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애당초 공간을 운영하는 목적이 작품활동 외의 부수적 수익을 바랐던 것이 아니었다. 전시된 작품의 판매나 케이채, 송광찬 작가의 엽서나 사진에세이 혹은 사진으로 만든 컵등의 제품을 판매하기도 했지만, 신진작가들의 신선한 작품을 전시하고 그들의 전시를 즈음하여 인디밴드의 공연으로 공간을 꽉 채웠다.


전시와 공연 (출처: 빛타래 페이스북)



 빛타래가 만는 브랜드 자산은 작가의 퍼스널 브랜딩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빛타래는 '작은 가게'보다는 '문화 공간'에 치중했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브랜드 자산은 굳이 '작은 가게'의 경제적 수익으로 연결시키지 않았다. 커피를 내리되 카페가 되지 않았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진열되었지만 적극적인 소품 편집샵이 되지 않았다. 사진작가라는 그들의 주업에 집중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빛타래가 가지는 브랜드 자산은 (동의할 지는 모르겠지만)이들 작가의 퍼스널 브랜딩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고, 그들의 대외적인 활동이 빛타래라는 구심점을 통해 지속적으로 빛을 엮어 낼 수 있게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빛타래라는 공간은 사진을 위한 공간이라는 단순 명료한 정의에 부합하도록 사진만 전시하고 사진에 관한 것들에만 집중했으며 사진을 찍는 이들이 그들의 현재진행형의 작업을 동반했기에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를 흉내내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같은 위치에서 같은 구조의 공간을 사진이라는 같은 주제를 가지고 운영을 한다하더라도 '이들'이 주체가 되지 않으면 더이상의 '빛타래'는 없는 것이다.


 사진 찍는 재주 외에도 트위터나 페이스북, 블로그 등의 SNS의 활용에 능한 작가들의 개인 플레이도 탁월했다. 각자의 작품활동에 있어서 굳이 빛타래에만 집중하지 않는 전방위적인 전시 등의 활동이 그들의 '멋'이라는 것이 폭발하도록 부추길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들은 빛타래라는 물리적 공간의 운영에 대한 고민과 어려움이 충분이 있었음을 고백하였고, 더이상 그들 스스로 물리적 공간을 지키고, 채우고, 이야기를 만들어 낼 물리적 시간이 허락하지 않음을 아쉬워 하며 안녕을 고했다.


빛타래 공간의 내부, 나무 창틀이 마음에 들어 선택한 공간은 두 작가의 손길이 안닿은 곳이 없다. (출처: 빛타래 페이스북)



 나처럼 공간에 애정을 가졌던 이들이 적잖을 것이다. 이런 공간이 자취없이 사라지는 것이 어쩌면 빛타래를 아는 이들에게는 문화적 손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런 공간이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이기적일 수도 있다. 작은 가게들이 엉덩이 가볍게 원하는 것을 소소하게 꾸려나가며 그 가능성을 찾아보기가 쉬운 반면, 그 지속동력을 찾고 공간의 가치를 아카이빙하기 힘들다는 것이 큰 단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아마 빛타래의 불빛은 수억년을 타고 우리에게 오는 별빛처럼 지금 눈앞에 없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이 조금은 오래 남아, 다른 이들에게 또다른 빛타래를 만들 수 있는 동력이 되기를 희망한다. 



빛타래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bittar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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