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엄마랑 아빠, 지난 주에 유럽으로 여행을 가셨거든요? 오시면서 파스를 하나 사 오셨더라고요. 독일에서 샀대요.
나: 엥? 독일이 파스로 유명한가? 일본 동전 파스는 들어 본 거 같은데.
제이: 저도 그건 잘 모르겠어요. ‘악마의 뭐시기’랬는데.
나: 아, 파스 이름이?
제이: 네. 아아. ‘악마의 발톱’이다. 파스 이름이 ‘악마의 발톱’이래요.
나: 이름 웃기네. 써 봤어요?
제이: 안 그래도 요즘 좀 목이 뻐근해서 어제 그걸 목에 발라 봤거든요?
나: 으~ 그러면 큰일날 텐데. 안 아프셨어요?
제이: 와… 화끈거리는 게… 죽는 줄 알았어요.
나: 그니까. 그거 완전 타들어 간다니까? 저도 전에 목에 맨소레담 발랐다가 소리지를 뻔. 그거 바르자마자 너무 뜨거워서 바로 샤워기로 씻어냈어요.
제이: 저도요. 샤워 끝나고 발랐다가, 샤워실 다시 들어갔습니다.
나: 그렇다니까?
제이: 왜 이름이 ‘악마의 발톱’인지 알겠더라고요. 악마가 발톱으로 긁는다는….
나: 크크. 그렇네요. 맨소레담도 엄청 아픈데, 그건 오죽했을까. 아 근데, 맨소레담 하니까 생각나는 게… 혹시, 병아리 키워 보셨어요?
제이: 키워 봤죠.
나: 닭 될 때까지 키워 봤어요?
제이: 허허. 아니요.
나: 나도 닭 될 때까지 키워 본 건 아닌데. 그래도 제법 덩치도 커지고, 벼슬도 좀 났어요. 근데….
제이: 잡아 먹었어요? 히히.
나: 아니라고. 닭 될 때까지 키운 거 아니라니까? 벼슬 나고 좀 컸을 때 죽었지. 고양이가 잡아 먹었거든요. 초등학교 1학년 땐가, 2학년 땐가… 여름 방학이었던 거 같은데 가족끼리 여행을 갔거든요? 계곡으로 간 거 같은데. 그때 내가 병아리 데리고 간댔는데 아빠가 안 된다 했었나, 데리고 갈 생각 자체를 아예 안 하고 있었나, 그건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아무튼, 그래 가지고 병아리를 할머니댁에 맡겼거든요? 근데, 그쪽 할머니는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할머니는 진짜 완전 촌놈이에요. 정말 시골에 살기도 하시고. 병아리를 집에 들일 생각 자체를 안 하신 거지. 할아버지도 뭐 마찬가지고.
그래서 걔를 그냥 마당에 뒀대요. 그 위에를 망 같은 거? 쇠로 된 망, 뭐 그런 거로 덮어서. 근데 그게 구멍이 꽤나 큰 망이었던 거지.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대체 어따 쓰는 물건일까 싶네요. 아무튼. 그기가 아무리 시골이라 해도, 그기에도 도둑 고양이는 있잖아요? 그때 들은 얘기로는, 우리가 맡기고 떠난 그날 밤부터 마당에서 고양이들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들렸대요. 가끔 꽥꽥거리는 병아리 소리도 들리고. 한 4일인가 5일인가 떠나 있었으니까, 그동안 걔는 계속 고양이들한테 시달려야 했던 거지.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미안한 일이에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그러다 그게 우리가 돌아오기 전날 밤에, 꽥 소리가 나더니, 한 번 크게 꽥 소리가 나더니 그 후론 조용했대요. 그러고 그 다음 날 가 보니까 병아리가 없었다 하더라고.
제이: 아, 고양이가 낚아채 간 거예요?
나: 그러지 않았을까요? 할머니 할아버지도 참. 첫날 밤부터 꽥꽥 소리가 났으면 집에 들일 생각을 했어야지. 동물을 집에 들일 생각을 아예 못 하신 거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니면 주무시느라 정말 못 들었을 수도 있고. 시골에는 밤이 짧다 뭐 그러잖아요. 나도 그게 슬픈 일인지는 몰랐던 것 같아, 그땐. 꽤나 오랫동안은, 그냥, 병아리를 닭이 되기 직전까지 키워 봤다 하는 자랑거리 정도로만 그 친구를 기억하고 있었던 거 같네요.
아, 왜 갑자기 병아리 이야길 꺼냈냐면요. 생각해 보면, 그래도 내가 걔를 꽤나 잘 키운 거 같아요. 강아지마냥 산책도 시키고 했으니까. 아파트 앞에 풀 숲에 데려 갔더니 잘 놀더라고요.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안 도망가는 거 보면, 그래도 나랑 있는 게 썩 불편한 건 아니었던 거지 않을까요, 헤헤.
땅에 숨어 있던 지렁이는 또 어찌나 잘 찾던지. 약간, 고기 파티 하는 그런 느낌? 콕콕 하기도 하고, 호로록 호로록 하기도 하고. 푸드덕이었나? 독수린 줄 알았어. 아무튼. 그 모습이 보기에 뿌듯했나 봐요, 나는. 그 뒤론 꽤나 자주 데려간 거 같아요. 아니 몇 번 안 갔는데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근데, 하루는… 그날따라 손 위에 앉아 있는 그 친구가 귀여워 보였는지, 누구랑 산책간다는 기분에 나도 들떠 그런 건지, 그 친구를 괜히 어깨에 올려서 가고 싶더라고요?
제이: 그, 뭐냐, 앵무새 같이?
나: 그렇지, 그렇지. 남들 보기에 뭔가 훌륭한 조련사 같은 느낌도 들고. 그 정도로 이 친구랑 잘 지내고 있다는 걸 다른 사람들한테 자랑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그냥 그런 내 모습에 만족스러웠던 건지. 아무튼 그래서 어깨에 올려 봤어요. 버틴다고 하는 게 맞을 듯. 그 친구는 버티고 있었어요. 아슬아슬하게. 그거 있잖아, 병아리 가느다란 다리가 부들부들거리면서 서 있는, 뭐 그런. 근데, 걔가 그러고 있는 걸 봤으면 그만 내려 줘야 할 텐데. 올린 채로 한 번 걸어 봤다? 그러다 걔가 중심 못 잡고 떨어진 거지. 엘레베이터 바닥으로. ‘꽥!’ 하면서.
제이: 죽었어요?
나: 아니, 죽은 건 아까 고양이 때문에 죽은 거라고, 이 양반아. 아무튼 그렇게 떨어져 가지고, 아이고, 어머나 어머나 막 이러면서 얼른 다시 손 위로 주워 올렸거든요?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길래, 휴, 다행이다 막 이러면서 엘레베이터 내려 가지고 풀 숲에 갔죠. 자, 지렁이 먹어라! 뭐 이런 심정으로 걜 바닥에 내려 줬거든요? 아! 절뚝이더라고. 다리가 부러진 건지, 그냥 삔 건지, 그땐 그런 게 궁금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냅두면 그래도 지렁이 찾아 다니지 않을까 해서 내려 줬는데, 뭔가 시원찮더라고? 좀 보고 그냥 안 되겠다 해서 집으로 데리고 왔어요.
집에 올라 와 가지고, 마루 바닥에 걔를 내려 놔 봤거든요? 여전히 절뚝이나 싶어서. 방금 절뚝였으면 당연히 지금도 절뚝이는 건데. 그 있잖아요. 계속 확인해 보는 그런? 지금 잘 걷는 걸 봐서 마음이 좀 편해지고 싶은 그런? 근데 역시나 절뚝절뚝 하더라고요.
근데 내가 그때 뭘 생각해 낸 줄 알아요? 맨소레담. 그때의 나도 이미 언젠가 발목을 접질려 본 거죠. 어? 이러면 내가 그때 열 살은 되었을 거 같은데. 언제 처음 발목 삐어 봤는지 기억이 안 나네. 아무튼. 그때 뭐, 침도 맞고 해 본 거 같은데, 한 번은 엄마가 발목에 맨소레담을 발라 줬거든요. 근데, 이게, 엄마 손이 약손인 건지, 그냥 젊은 맛에 빨리 나은 건지, 아니면 둘 다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금방 나았어요. 그때 그게 기억이 난 거죠.
그래서 후다닥 안방으로 가서 구급 상자 찾아 가지고 맨소레담을 꺼내 왔어요. 가운데 검지 한 마디 정도 조금 안 되게 짜 가지고 그 친구 다리에 발랐죠. 왼쪽인지 오른쪽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무튼 다리라고 할 만한, 아무튼 닭발 위쪽에 길게 펴 발랐어요. 엄마도 내 발목 발라 줄 땐 넓게 펴 바른 다음에 그 하얀 거 안 보일 때까지 문질러 줬던 거 같은데. 뭐, 마사지 같이. 그때 그게 기억이 났나 봐요. 그래서 나도 그렇게 했죠. 그 가느다란 다리 탈날까 조심해 가면서 위로 아래로. 하얀 게 다 없어질 때까지.
그러고 이제 좀 낫나 싶어서 봤어요. 근데, 이 친구가 잘 걷는 거야. 안 절뚝이더라고? 그때 잠깐 그랬던 거도 아니고, 그 후로 계속 잘 걸어다녔던 거 같아요. 난 그때 내가 걔 다리를 낫게 한 줄 알고, 사실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지만, 나는 후에 의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뭐 그런 꿈을 잠깐 꿨던 거 같아요.
근데 ‘악마의 발톱’ 얘기랑, 나 옛날에 목 아파서 맨소레담 목에 발랐다가 엄청 뜨거워서 화장실 달려갔던 거 생각하니까, 이건 진짜 소름끼치는 일인 거죠. 그 친구가 말을 못해서 그렇지, 엄청 소리지르고 싶지 않았을까요? 으아아아악! 인간이 바르라고 만든 약을, 우리처럼 인간도 때론 버티기 힘든 그런 약을 주먹보다도 작은 그 째끄마난 친구한테 발라 줬으니, 얼마나 아팠을까 싶은 거죠. 뭐, 우리 조카 같은 경우도, 걔가 완전 애기일 때 콜란가 사이단가 아무튼 탄산 음료 처음 마셨다가, 목 따갑다고 몸을 부르르 떨었던 걸 봤어요. 뭐 그런 거랑 같은 거겠지. 뭐, 물론, 그 친구는 맨소레담 발랐을 때 삐약거리진 않은 거 같은데. 어쩌면 찍 소리 못 할 정도로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아이, 또 미안하네.
제이: 거의 뭐 태워 죽이셨네요.
나: 아, 그러지 마. 더 미안해지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