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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키뉴 Oct 22. 2022

트릭 오어 트릿

이태원은 이토록 태원(太遠)한 곳이라 하여 그런 이름을 하고 있는 걸까? 손가락으로 꼽으라면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이태원에 간 적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이태원을 지나칠 때면 오래전 그 날이 생각나곤 한다. 아마 이태원이라는 곳을 처음 가는 날이었을 것이다.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긴 머리의 한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묶음 머리를 했고 누런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있었다. 오래 전 일이니 그게 버버리 남방일 수도 있겠다. “뭐라고요?” 나는 이어폰을 빼며 물었다.


그의 입이 움직였다. 아랫니엔 치석이 쌓여 있었다. 지금이라면 마스크 때문에 그런 걸 알 수 없었을 테지만, 그때는 그의 치석이 보였고 참으로 크고 누렇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주절주절 길게도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에 정신이 팔려 그의 말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요점은 놓치지 않았다. 대충 핸드폰이 없어졌다는 얘기였다. 그때도 핸드폰은 곧 지갑이라 할 만하니, 그건 곧 교통비 좀 달라는 얘기였다.


삼사 만 원 정도 달라 하겠지. 그전에도 언젠가 지갑을 잃어버렸다 하는 사람을 만난 적 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그것도 두 번씩이나. 삼만 원이 필요하다 했다. 모두 다른 사람이 지갑을 잃어버렸지만 신비롭게도 그 둘은 모두 차비로 삼만 원이 필요하다 했다. 나란 등신은 두 번 다 그렇게 돈을 줘버렸다. 그때는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여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군에서 막 휴가를 나왔거든. 병장 월급이 10만 원도 되지 않던 시절이다.


요즘 누가 그만큼 현금으로 들고 다녀. 딱 잘라 말하고 자리를 피해야겠다 마음을 먹는 그때, 그의 말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역에서 일하시는 분들한테 사정을 말했더니, 이 일회용 교통카드를 주네요.”


“그럼 그걸로 된 거 아니에요?”


“역에 내려도 집에 가려면 버스타고 한참 더 가야해요. 버스비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납득이 가는 말이다. 경기도에 산다는데, 그러면 그럴 수도 있지.


“이거면 되죠?”


지갑에 있던 현금 2천 원 모두를 꺼내 건네줬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했다. 고개를 숙여가며 고맙다고도 했다. 마침 기차가 왔다. 그를 뒤로 하고 나는 이태원행 기차에 탔다.


사흘 쯤 지났을까?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던 그와 마주쳤다. 지하철 안에서 우연히. 앉을 자리가 없어 서서 책을 읽고 있던 그때, 책 건너편으로 누런 체크무늬 셔츠에 묶음 머리를 하고 있는 그가 보였다. 전에 만난 그 모습 그대로다. 뭔가 대단한 도움을 줬다고 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저… 그때 집엔 잘 들어가셨어요?”


나를 보고 갸우뚱한다.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다.


“그때 그… 그… 지갑 잃어버리신 분 맞죠?”


“네?”


“그때 지갑 잃어버리셔서 저한테 돈 받아가신…”


“네? 아니,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가 언성을 높였다. 분명 그 사람인데…. 내가 잘못 봤던 것일까? 그 앞니의 치석은 여전히 크고 누랬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높아진 그의 언성과 사람들의 시선에 내 확신은 의심으로 변해갔다. 빠른 속도로. 당황한 마음에 입에서는 아무말이나 튀어 나오려 하였다. 정신을 다시 붙들어 맨다.


“아, 죄송합니다. 사람 잘못 봤네요.”


창피했다. 쥐구멍에라도 숨는 심정으로 들고 있던 책에 얼굴을 파묻었다. 괘씸하단 생각도 들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고작 2 원이라지만 그래도 그에겐 내가 은인이라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한동안  보는 시늉을 하다, 그의 동태를 살피려  너머를 힐끔 처다 봤다. 그는 없었다. 주위를 둘러 봤지만, 역시 그를 찾을  없었다.


친구는 ‘긴 머리 치석맨’ 이야기를 듣는 내내 입을 씰룩거렸다.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있는 눈치다. 이야기가 끝난 듯하니 친구가 끼어들어 말했다. “당한거야.” 그렇게 천 원, 이천 원 하는 돈을 달라고 하는 게 그놈들 전략이라나 뭐라나. 친구는 그렇게 돈을 주는 사람이 자기 주변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치석맨의 ‘일진’을 내가 망쳐버린 거라고도 했다. 유감이군.


돌이켜 보면,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모르는 사람한테 돈을 준 적이 많다. 한때는 분당선 지하철을 타야할 일이 많았다. 그때도 그랬다. 요즘도 그럴려나 싶지만, 그때는 앞 못 보는 할아버지가 한 손에는 지팡이를, 다른 손에는 바구니를 들고 기차 안을 지나다녔다. 듣기만 해도 눈물나는 노래를 튼 채로, 그것도 아주 천천히. 책을 보느라 못 봤다고, 이어폰을 꽂고 있느라 못 들었다고 하면 그만이겠지만 그게 나에겐 쉽지 않았다. 지폐 몇 장 바구니에 넣겠다고, 굳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앉곤 했다. 그게 그 사람을 돕는다 생각하여 그랬나 보다. 길에서 주는 전단지도 다 받으려 했다. 멀리서부터 손을 내밀며 다가가기도 했으니까.


한동안 서울을 벗어나 살아 그런 건지, 그래서 그러한 습관이 사라져 그런 건지, 요즘은 낯선 사람한테 돈을 주고 그러진 않는다. 요즘은 카드만 들고 다니니까, 현금을 들고 다니진 않으니까. 도움을 주고 싶다면 근처 은행에서 돈을 인출해 오면 될 일이지만 그만한 수고를 더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모르는 척 가던 길을 간다. 전단지를 주는 사람도 외면한다. 코로나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러는 듯하다. 전단지를 받고 나서 휴대용 세니타이저로 손을 다시 소독하면 될 테지만, 가방 앞주머니에 있는 그걸 꺼내려 가방을 다시 벗고 싶진 않다. 그럴 때 쓰라고 넣어둔 게 바로 그 세니타이저이겠지만 그런 건 쉽게 생각나지 않는다. 이태원 치석맨 때문에 상처받아서 그런 건 아니고.


그나저나, 사람들은 그게 거짓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떤 친구가 그렇게 말했다. 영화를 정말 많이 보면 몇 분짜리 예고편만 봐도 그 전체가 보인다고. 그런 것처럼 사람들은 치석맨 같은 일에 이미 수없이 속아 본 것일까? 왜 아무도 그런 경험담을 이야기해 주지 않을까? 재밌는 건 나도 좀 알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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